특집: \"러시아 민족정책과 한인\" : 소비에트 극동지역에서 농업발전의 문제(1920-1930) -소비에트 한인들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3.01 |등록일 2014.07.24 | 최종수정일 2014.09.08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1페이지 | 가격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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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수선사학회 수록지정보 : 사림(성대사림) / 46권
저자명 : 송잔나 ( Сон Ж. 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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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이 글의 목적은 1920-30년대 소비에트 극동지역의 농업, 그 중에서도 벼농사의 발전에 끼친 한인들의 영향을 밝히는데 있다. 소비에트의 한인들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작물인 벼를 극동지역에서 재배함으로써 소비에트 사회의 경제 상황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벼농사는 러시아 영토로 이주한 한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1913년부터 한인들은 벼의 파종 및 파종과 관련된 관개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벌였다. 처음에 한인들은 중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가지고 온 볍씨를 직파했다. 이를 통해 당시 논의 면적이 급격히 증가했다. 1925년까지 러시아 주민들은 벼농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유럽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 압도적 다수였던 극동의 러시아 인들에게 벼농사는 매우 낯설었다. 이러한 새로운 농업 분야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유발되었다. 1925년 소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극동지역에 있는 벼농사 이권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소련정부는 농업에서 벼농사라는 새로운 분야를 조직하는 일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논농사를 위한 특별 관개시설이 갖추어지기 시작했으며, 논농사 면적이 확대되고, 조직적인 볍씨 조달이 증가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사회경제 발전이 소련과 일본이라는 두 국가의 지위 및 상호관계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잡한 소일관계가 극동지역에서의 농업 발전에 일정한 형태로 영향을 끼쳤으며, 그와 동시에 이성적인 국가정책, 시민사회 등의 부재로 인해 극동지역 주민 대부분이 겪은 힘든 경제적 상황은 한인들로 하여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훌륭한 벼농사 전문가들로서 수요가 있었던 한인들은 다른 소련 지역에서의 벼농사 발전을 위한 개척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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