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 일본 사료해석을 통한 울릉도,독도 연구 -기봉행소(崎奉行所), 대마번(對馬藩)에서의 안용복의 진술을 중심으로-

저작시기 2013.01 |등록일 2014.07.24 | 최종수정일 2014.09.08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6페이지 | 가격 7,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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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온지학회 수록지정보 : 온지논총 / 37권
저자명 : 원연희 ( Yeon Heui Weon )

없음

한국어 초록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어렵을 하다 일본인을 만나 충돌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울릉도에서 독점적인 어렵을 하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어렵을 하고 있었던 조선인을 자주 만나자, 어획량이 줄어든 것을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선인이 울릉도에서 어렵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돗토리 번주가 조치를 취해주기를 원하여서, 안용복 일행 중에서 안용복과 다른 한 명을 납치하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안용복의 납치사건은 그 후 朝·日 양국의 울릉도·독도에 관한 영토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어 ‘竹島一件’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 한·일간 독도에 관한 영토문제가 주목받으면서 안용복의 사건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1693년 안용복이 납치되었을 때, 나가사키 봉행소와 쓰시마번에서의 진술이 위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에도시대 쓰시마번사가 쓴 『竹島紀事』에 있는 안용복의 진술을 통해 그의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竹島紀事』와 조선의 사료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안용복은 일본인과 울릉도에서 만나기 이전에도 동해의 항로를 잘 알고 있었다. 동해에 있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은 6세기 우산국 때부터 시작되어 고려에서 조선의 안용복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나가사키 봉행소의 진술에서는 울릉도의 방향을 말하지 않았지만, 쓰시마번의 진술에서는 방향을 동쪽이라고 했다. 이 사실은 울릉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증하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어렵을 하였던 안용복이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는 기존의 견해는 타당하지 못하다.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며 어렵을 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영어 초록

In 1693, An Yong-Bok, who was fishing and hunting in Ulleungdo, had a conflict with Japanese. The Japanese wanted to fish exclusively around the island. But meeting frequently people from Joseon who was fishing there, they were anxious due to decreased fish catch. Thus, wanting Tottori feudal domain to take action to the people not to fish, they kidnapped Mr. An Yong-Bok and one of his company. This abduction grew into territorial dispute of Ulleungdo and Dokdo between Korea and Japan and ended in ``One Takeshima Dipute``. The dispute being the issue recently, the abduction has been being very important. Meanwhile, Japan asserts that An`s statement at Nagasaki magistraite`s office and Tsushima feudal domain in 1693 (when he was kidnapped) is perjury. So this paper examines the An`s awareness of Ulleungdo and Dokdo, through his statement in 「Takeshima Report」 written by Tsushima feudal retainer in the Edo era. The result of reviewing 「Takeshima Report」 and historical records of Joseon tells us that An Yong-Bok had already known the course of the East sea well before he met Japanese at Ulleungdo. The awareness of Ulleungdo and Dokdo in the East sea arose from Woosanguk in 6th century and have continued to Goryeo and An`s awareness. Futhermore, his statement at Nagasaki magistraite`s office doesn`t refers to the direction of Ulleungdo, but his another statement at Tsushima feudal domain tells us that the direction is east. This proves that An Yong-Bok was well-known about Ulleungdo and he didn`t commit the perjury.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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