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연구 논문,109 : 만청(晩淸) 북경시사(北京詩社) 용희사(龍喜社)와 한중 문학 교류

최초 등록일
2014.07.23
최종 저작일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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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국문학회 수록지정보 : 국문학연구 / 28권
저자명 : 허방

한국어 초록

용희사는 중국 호남성 선화현 출신 문인들이 주로 모이는 북경의 선화회 관에서 창설되었다. 용희사는 19세기말 조선사신이 중국 문인들과 교류하 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청말 민국초의 여러 시화집 등의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용희사의 구성원들은 매우 많은데, 지금까지 확인 된 인물만 해도 40여 명이 넘는다. 그 중 兪明震은 연암 박지원과 교분을 맺었던 兪世琦의 증손이기도 하다. 용희사의 문인들은 1887년에서 1894년까지 조선 사신들과의 시문 창화 활동을 지속하였다. 창화시집으로 『강정집』, 『지북집』, 『용희사해동심시 집』, 『소해집』, 『헌관영춘집』 등이 있다. 양국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 으로 『송균아집도』, 『강정도』, 『용희도』 등이 있다. 그 중 1894년(光緖20) 李正魯가 동지정사로 북경에 체류했을 때 용희사 문인들과 창화한 시문들 을 편찬한 『獻館泳春詩冊』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을 통해 당시 문학 교류 의 활약상을 알 수 있다. 본고는 황응의 『전해금언』을 통해 선행 연구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양국 문인들이 공유한 시대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19세기 말의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서 황응과 조인승이 어떻게 사고하고 시국에 대처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영어 초록

十九世紀的韓中文學交流具有鮮明的時代特色。如果說十八世紀的兩國交 流還停留在個人交流層面上的話,十九世紀便逐步昇華爲文人集團之間的交 流。仔細考察陶澍、董文渙、黃膺等人與朝鮮使臣進行的詩文唱和活動,就 能구淸석地把握這一時代趨勢。特別是以黃膺爲中心結成的龍喜詩社,在十 九世紀末韓中文學交流史上留下了濃墨重彩的一筆。 龍喜社具有鮮明的地方特色。其地點設在北京宣武門外的湖南善化會館 內,詩社成員也大部來自湖南省。光緖年間湖南文人與朝鮮使臣的交流始於 周壽昌,徐樹銘與黃膺則繼承了這一傳統,幷且通過龍喜社的集會使兩國文 人交流達到了一個前所未有的高度。 龍喜社的參與人員至少在四十人左右,幷且進行了頻繁的詩文創作活動。 詩社或將唱和作品結集刊行,或形成書作以供收藏。現在可知的便有作品集 五種、書作三種。其中《龍喜社海東尋詩集》更是不止一次印行出版。 本文通過歷史文獻輯錄出龍喜社唱和詩集《獻館泳春詩冊》,幷對其主要 內容、參加人員、收錄作品進行了詳細介紹。光緖甲午年(1894)所進行的 這次文人集會具有其特殊的歷史意義,因爲宗藩關係的結束與國際關係的急 劇變化都使這種朝鮮燕行使臣與中國文人的交流形式走下了歷史舞臺。 中國湖南圖書館所藏《塡海禽言》是龍喜社主黃膺的重要作品。此書首先 回顧了作者與曹寅承的交往,幷通過曹寅承門人的講述記載了朝鮮王朝末期 政壇的動湯,以及曹寅承欲拯救國家於水火之中的雄心壯志。但是由於準備 不周與倉促行動,導致事未成而身先死。黃膺十分敬慕曹寅承的愛國之情, 特意創作了《塡海禽言》來紀念這位愛國志士。此書內容後來廣爲流傳,成 爲十九世紀末韓中交流的一個標誌性事件。黃膺日後也積極投身於維新變法 活動,參與創辦南學會,爲變法維新而奔走。 十九世紀後期的韓中交流發生於特殊的歷史條件之下,故此在對這一時期 進行硏究時,有必要與之前的歷史時期進行區別與比較。不但要從中發現歷 史傳統的繼承,也要조出新的時代條件下的創新與發展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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