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경 오악과 (소)금강산

저작시기 2014.02 |등록일 2014.07.22 | 최종수정일 2018.11.14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1페이지 | 가격 6,000원
다운로드
장바구니관심자료
상세신규 배너

* 본 문서는 배포용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서지정보

발행기관 :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수록지정보 : 신라문화 / 43권
저자명 : 김병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건국기의 육산과 중대의 신라 오악
Ⅲ. 중악 낭산과 중고기의 왕경 오악
Ⅳ. 북악 (소)금강산과 왕경 오악
Ⅴ. 맺음말
[참고문헌]

한국어 초록

신라는 건국 전후 시기부터 고유하게 경주 주변의 6촌 시조의 탄강처 6산을 신성시하였다. 이후 6촌 집단의 성쇠 및 석씨 등 신흥 집단의 유입 그리고 천하를 4방으로 보는 보편적 공간 관념에 따른 사악 숭배가 출현하였다. 이후 중고기 말인 선덕여왕대 자장에의해 불교적인 오방 관념의 전래를 계기로 낭산을 불교적 세계관의 중심인 도리천으로 삼아 중악으로 설정하며 왕경 오악이 성립되었다.
더불어 북악인 금강산의 본래 명칭은 금산가리촌 촌장의 하강처인 ‘금산’이었으나 불교수용 이후 전래된 대표적 불교 경전인 ?『금강경』과 연계되어 개명되며 이차돈 순교와 관련된 불교 성지로 자리 잡는다. 이외 신라인들은 동의 토함산과 서의 선도산 남의 남산 등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 고양을 통해 오악이 위치한 왕경을 신성공간으로 구축하였다. 이러한 왕경에 대한 신성 공간의 구축은 골품제도의 운영상 비왕경지민과 차별적인 왕경민만의 특권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에서 마련된 장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진덕여왕대로부터 문무왕대에 이르는 시기 삼국통일이 이룩되고 당례가 수용되었다. 이에 통일신라의 강역관에 입각한 신라 오악이 왕실 제례의 중사로서 정착되었다. 그러므로 통일 이전 왕경 오악의 마지막 주자였던 중악의 존재감이 약화되며 왕경 오악은 제도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왕경 오악은 중대 이후 신라 오악으로 변화내지 대치된 것은 아니다. 제49대 헌강왕의 앞에 남산 산신과 금강산 산신이 출현했다는 기록은 중고기 성립된 왕경 오악이 멸망기까지 유지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신라의 뿌리 깊은 골품제와 연계된 왕경민들의 지역적 특권 의식이 꾸준히 존재한 결과였다.

영어 초록

From the time of the Kingdom’s foundation, the Silla people deified the six mountains around the capital, to which the founders of the six tribes came down from the heaven. However, since the ebb and flow of the six tribes and the new rise of the Seok tribe, and due to the influence of the four directions idea, the belief on the six mountains turned into the one about four mountains.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善德女王), the Buddhist belief of five mountains was introduced to the Kingdom and it caused the five mountains belief in the capital with the Nangsan mountain as its center Tr?yastri??a(?利天).
The northern mountain Geumgangsan(金剛山) was originally called Geumsan(金山) and it was where the leader of Geumsangari tribe was descended from the heaven. But after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in the Kingdom, it was re-named after the representative Buddhist sutra Geumganggyeong(金剛經, the Diamond Sutra) and was regarded as a sacred place in connection with Yi Cha-don. The Tohamsan mountain in the east, Dorisan mountain in the west, and Namsan mountain in the south were also recognized as a sacred ground. Through the medium of the belief, the capital surrounded by the five mountains became a holy place. This belief on the capital was devised to strengthen the bone rank system by discriminating the capital dwellers from the rest of the people.
But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by Silla during the reigns of Queen Seondeok and King Munmu caused the introduction of the institution of Tang to the Kingdom. At around this time, the traditional belief on the five mountains became a part of the royal rites. This shift weakened the status of the center mountain and the belief on the five sacred mountains in the capital failed to settle as an institutional custom. However, the failure does not mean that the belief was replaced by an expanded belief on the five sacred mountains of Silla. The fact that the deities of Namsan and Geumgangsan mountains appeared in front of King Heongang suggests the persistency of the belief and the existence of the deep rooted sense of superiority of the capital dwellers till the end of the Kingdom.

참고 자료

없음
  • 구매평가(0)
  • 구매문의(0)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4. 지식포인트 보유 시 지식포인트가 차감되며
         미보유 시 아이디당 1일 3회만 제공됩니다.
      상세하단 배너
      우수 콘텐츠 서비스 품질인증 획득
      최근 본 자료더보기
      상세우측 배너
      상세우측 배너
      신라의 왕경 오악과 (소)금강산
      페이지
      만족도 조사

      페이지 사용에 불편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