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 현대일본문학에서 모성과의 격투

저작시기 2011.01 |등록일 2014.07.18 | 최종수정일 2014.09.12 파일확장자어도비 PDF (pdf) | 32페이지 | 가격 6,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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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발행기관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수록지정보 : 감성연구 / 3권
저자명 : 오다이라마이코

없음

한국어 초록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모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라는 점을, 일본의 페미니즘은 비판적으로 지적해 왔다. 아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어머니상의 규범화나 전체주의화는, 여성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고 심신의 왜곡을 초래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여성들은 국민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병사의 어머니 되기를 자처했고, 국가의 방침이나 천황제에 크게 협력하기도 했다.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학문으로서의 젠더론에서는, 모성 개념을 제도적인 것으로 자각하려는 움직임이 주류가 되어 왔다. 모성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 발표에서는 크게 다음과 같은 테마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여성 자신에 의한 어머니체험의 언어화와, 억압된 어머니의 섹슈얼리티 탈환이다. 두 번째로, 어머니와 딸의 관계성 개선이다. 실현불가능한 이상적 ``모성``이 여성에게 강요된 결과가 왜곡된 어머니이다. 그리고 그 왜곡이 딸의 건전한 발달을 방해하기 때문에 개선코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모성을 성만의 문제에서 떼어내고 남성과 공동의 문제로 설정하여 보다 미분화된 권력 구조의 해명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이것들을 실천한 세 개의 소설을 소개하겠다. 이토 히로미(伊藤比呂美, 1955-)는 『영토론1(テリトリ一論1)』(사조사, 1985)이나 『영토론2(テリトリ一 論2)』(사조사, 1985) 등의 시에서, 모성을 칭송하는 문화에서 숭고하게 여겨지는 임신체험이나 출산을 가장 저속한 배설행위에 비유했고,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완벽한 어머니상``에 저항했다. 발표 당시에는, 여성의 체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으로 이야기 되었지만, 사실 이것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에서의 가족 이야기를 비판한 것이다. 내러티브를 중시한 프로이트는 남성/여성, 페니스/질, 있다/없다, 능동/수동 등 여러 이항대립을 복잡하게 포개어 놓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서 여성의 신체는 늘 남성에 비해 결여된 것이고, 남성에게서 씨(아이)를 받아서만 결국 그 결여를 메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정상적인 발달``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 사회적인 가족모델에 근거한 것이지, 보편적인 것일 수는 없다. 이토는, 항문으로부터의 분만이나 아버지에 의한 ``나``의 분만을 읊고 있는데, 이것은 성숙한 신체와 자립한 정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여성``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쇼노 요리코(笙野賴子, 1956-)의 『어머니의 발달(母の發達)』(가와데쇼보, 1996. 「어머니의 축소(母の縮小)」,「어머니의 발달(母の???」,「어머니의 대회전 선창(母の大回轉音頭)」을 포함한다)은 모녀관계를 묘사한 것이다. 「어머니의 축소」에서 주인공 여성인 ``나``는 무얼 해도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못하고, 게다가 도망칠 수도 없는 폐색(閉塞)상황을 살고 있다. 이윽고 시야에 이상이 생겨 어머니가 작아져 보이게 되고, 그와 함께 어머니의 성격도 직업도 각양각색으로 변해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나``에 의해 창작된다. 환상적인 작풍이며, 또한 어머니의 과도한 간섭은 일견 불합리하게도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어머니 자신의 문제가 깔려 있다. 어머니는 남자들의 방해에 부딪혀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머니는 남성의 방침에 의해 주부의 자리로 떠밀려져 있는 자기 자신을 혐오했고, 거기에서 빠져 나가기를 꿈꾸며 딸에게 그 꿈을 의탁한다. 그러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남성처럼 일하는 것이며, 완벽하지 못하다면 행여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이류의`` 직업에 불과해진다. 그런데 그러한 규범에 편승해서 주부라는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어머니의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여자의 영역을 지키기만 하면이 사회에서는 오히려 대우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에서 손을 뗄 수도 없다. ``나``를 향한 어머니의 지시는 이렇게 어머니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면서 긍정하라는 식이어서, 어느 쪽을 택해도 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없다. 이 시스템의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지만, 앞서 말한 남녀의 역할분업에 따라 가정은 어머니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집안의 문제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는 은폐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은 박탈된 일과 동등한 성취감을, 육아를 통해 얻고자 하므로, 아이가 자기 기대대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러한 폐색적인 상황으로부터의 ``나``의 도피, 혹은 상황의 개변이 바로, 어머니가 변형되어 보인다는 환각으로 나타난 것이다. 「어머니의 발달」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변하여 일반적인 어머니의 이미지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낸다. 이 이야기들은 황당무계하게 보이고 꽤 길지만, 이 장황함이야말로 중요하다. 즉, 근거가 없다는 의미에서, ``모성``이 ``신화``인 것은 페미니즘 내에서 분명해졌다. ``나``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러한 근대 가부장제에서의 모성 신화에 별도의 이야기를 덮어씀으로써 해체하고 위치를 바꿔 버리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신화 만들기는, 말의 주박으로부터 개별자로서의 어머니를 해방시키고, 동시에 딸이 불행한 어머니에게 속박되지 않고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 1965-)의 「우리들 고양이 아이(われら猫の子)」(『신조』2001년 1월)를 다룬다. 나루코토 나루코(ナルこと成人)와, 마사코고토 마사코(マサコこと眞佐子)라는 결혼한 커플이,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하는 과정을 그린 단편이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일본 황태자인 히로노미야 나루히토(浩宮?우?와 황태자비 마사코(雅子)의 이름을 연상시킨다. 나루토(成人)와 마사코(眞佐子)는, 일견 부모 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일이나 자기 인생을 우선시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러한 존재 방식만을 자립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은 여성의 자기결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낳거나 낳지 않는 것은 내가 정한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것은, 남녀 양성의 합의가 없을 경우, 아이에 관한 모든 선택이 여성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귀속될 위험을 내포한다. 또, ``결정할 수 있는`` 것을 자립의 증거로 본다면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은 자립도가 낮다고 여겨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불임인 사람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하겠지만, 자립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인공수정 등의 생식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심각해질 뿐이다. 사실 마사코(眞佐子)는, 자신이 불임일지도 모른다고 공포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굳게 믿으려 한다. 바로 거기에 이상의 문제들을 검토할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 동성애자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다. 작품에는 남성 동성애자인 류이치(龍一)가 등장한다. 동성애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자연``이라면,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것도 ``자연``이다. 불임 여성과 동성애자는, 생식에 관해서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단, 류이치(龍一)가 연애 대상이 아닌 여성에게 인공수정을 부탁하는 대목에서, 아이 낳는 성(性)에 대한 착취도 발생한다. 이것은, 동성애자도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휴머니즘의 맹점을 논한 것이다. 앞의 두 사람과 달리, 메이저리티라고 할 수 있는 나루토지만 그도 문제를 갖고 있다. 그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인생이 리얼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이름에 빚지고 있는 나루히토(德仁)(=成人)는 황족의 존속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선택지는 택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아이를 만드는 일은, 자신의 그런 공허를 해결하지 않고 지속시키는 것일 뿐이다. 결말에서 나루토는 이러한 상황을 끊어내기 위해, 아이를 갖는 것을 스스로의 의사로 단념한다. 이것은 ``인간적``이라고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천황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간선언``을 했으나 여전히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 그러므로 그 자손의 존속을 끊어내는 것만이 ``인간적``인 행위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말의 허구성을 최대한 이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모성이 자연스러운 성질이 아니라 구축된 개념이라는 전제에 서서, 언어를 사용하고 표현하는 문학이 그것들로 환원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 방법이 모색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론에서는, 모성개념에 비판적인 작품만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일본의 현대 문학 전체의 경향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이 첨예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각 시대마다 현실사회에서 모성개념의 주박이 여전히 강력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단, 비판이란 반드시 퇴폐적?자멸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한 인간관계를 위한 발전적 고찰이기도 한다. 이토 히로미(伊藤比呂美)의 시에서는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받고 있고, 여성끼리의 유대가 목표가 된다. 또한 어머니 죽이기를 말하는 「어머니의 발달」에서도, 사회와언어의 시스템 개선의 끝에는, 어머니와 딸의 새로운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다. 또, 작품에서처럼 어머니라는 말의 정의를 확대한다면, 사람은 자기가 낳은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어머니가 될 수 있어서, 인간관계의 존속은 긍정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 고양이 아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에서는, 경제상황의 변동과 악화로 인해, 가족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 작품 속 존재 방식이 이젠 사치스럽게 보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가족관이 다시 보수화되고 있다면, 이들 작품의 의의를 재확인해두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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