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현장을찾아서)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 아래 문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 (전체만점: 3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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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정보
학과 | 일본학과, 관광학과, 문화교양학과 | 학년 | 1학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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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명 | 역사의현장을찾아서 | 자료 | 9건 |
공통 |
※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 아래 문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 (전체만점: 30점)
1. 교재에서 다룬 현장; 가급적 내용이 교재와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서술할 것. 2. 교재에서 다룬 주제...
※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 아래 문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 (전체만점: 30점)
1. 교재에서 다룬 현장; 가급적 내용이 교재와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서술할 것. 2. 교재에서 다룬 주제를 활용하되 대상을 달리하는 방법; 가령 대전, 인천, 대구의 근대화 사례처럼 자신의 거주지역의 근대화 사례, ‘대학로와 방송대’처럼 자신의 소속 지역대학 주변 등. 3. 그밖에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는 역사 현장을 선택할 것. |
소개글
과목명: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주제: 역사현장을 찾아 현장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역사성을 찾아볼 것. 아래 문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 (전체만점: 30점)
목차
Ⅰ. 서론Ⅱ. 본론
1. 서대문 형무소의 연혁
2. 서대문 형무소의 구성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예전부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서대문 형무소로 갈 계획을 짰다. 부끄럽게도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늘 가슴속에 독립운동 하셨던 분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그 현장에 가보지도 않아서 더 늦기 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차장도 구비되어 있고 입장료도 성인 3000원으로 저렴해서 자동차를 운전해 가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 국토 자체가 감옥이고 모든 조선인이 죄인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에게 형무소란 일본 지배층에 저항하는 독립 운동가를 합법적으로 구속 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조선 놈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고, 명태는 두들겨야 맛이 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의 형벌은 잔인무도했다. 가기 전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인데 서대문 형무소에 독립 운동가만 투옥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의병활동을 했던 분들의 수감 수도 많았다. 또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하던 국회의원이나 양심수의 수도 상당했다고하니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전후의 우리 역사를 품은 장소이다.
Ⅱ. 본론
1. 서대문 형무소의 연혁
지금은 서대문 독립공원이 된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가 건설했다. 1908년 10월 21일 경성 감옥이라는 명칭으로 완공된 것을 보면 1907년 때부터 지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통감부가 전국의 의병들의 수감을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당시 화폐 5만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어 완성했다. 총 560평 규모로 수용인원이 500명이었다는데 당시 전국에 총 8개였던 감옥의 각 수용인원이 300명 정도였다고 하니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준공한 셈이다.
그 뒤 1912년 9월 3일 서대문 감옥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1923년 5월 5일에는 서대문형무소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감옥의 ‘옥(獄)’자는 개 두 마리가 인간의 입을 지키는 모양이라 자유를 억누르는 모습이라 하여 부드럽게 바꾼다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김상웅.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일제시대편. 나남. 2000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