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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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관리 및 자기계발
    ----------------- 자기 관리 ------------------------------------------영어로 self- discipline [디서프린]제가 처음으로 발표할 내용은 자기관리에 대한 내용 입니다. 제가 자기계발 단원 보다 먼저 자기관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자기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사람이 자기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자기관리란 무엇일까요? 자기관리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즉, 시간, 목표, 꿈, 돈, 건강, 인간관계 등을 자신 스스로 관리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들 중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도 자기관리 해야 하는 말만 했지 실천에 옮긴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책 내용 중 사소한 일에서 부터 감사할 일을 찾아보자 라는 주제가 있었는데 읽은 후 “아! 그래 나도 낼부터 저렇게 해야지.”이러고 나서는 또다시 생각만 하고 있더군요. 이번 계기로 좀 고쳐 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여기서 자기관리 방법이나 또 자기관리에는 무엇이 있는지 대해 중요한 몇 가지만 집고 설명 하겠습니다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가 좋든 뭐다 좋든 간에 건강이 뒷받침이 되어 주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그래서 첫째로 정한 것이 건강관리입니다.이 건강관리에는 영양소가 충분히 들어있는 음식을 먹고, 저녁6시 이후엔 왠만하면 먹지 않고, 군것질을 줄이고, 그다음엔 운동을 하는데 굳이 돈을 들여서 헬스장이나 스쿼시 등을 하지 말고 모든 수업이 종료가 되면 여유로운 시간이 생깁니다.그 시간에 mp3를 귀에 꽂고 노래를 흥얼대며 집 앞을 산책 한다던가 무심천에 가서 자전거를 탄다 던가 뛴다던가 하는 운동을 즉 건강관리를 하라는 것입니다.이 건강관리를 함으로써 내 자신의 건강과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콘트롤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건강을 찾음으로 내 눈앞의 미래를 그리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둘째는 꿈 그리고 목표다니면서 지식을 쌓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만의 샵을 운영하면서 점점 키워서 화장품 기업 겸 체인점을 내면서 중간 중간 시간을 쪼개서 대학원 단계 밟아 박사 석사학위를 딸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난 한국 최고의 사업가 겸교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저의 목표를 밟고 나가면서 꿈을 이루게 하는 단계입니다. 이정도면 꿈과 목표관리에 이해가 가십니까?그럼 셋째로 넘어 가겠습니다.셋째는 인맥관리입니다.인맥관리가 왜 필요한지는 다들 알고 계실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간단히 얘기 하자면 당신 성공의 길에 발판이 되어주고 힘들 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인맥관리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혼자 힘으로 성공 하기란 어렵습니다.그러면 인맥관리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첫 번째일단 자신의 인맥들을 쭉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학교 친구들,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 등 이렇게 써보고 그다음 관계별이나 친분 별 등 나누어 정리를 해보십시오.두 번째는정리 후에 부족한 부분의 인맥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부족한 인맥을 모임을 만든다거나 위의 인맥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조금씩 주면서 인맥을 넓히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세 번째는너무 성급하게 판단 마십시오.저도 이런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득도 안 되면서 자꾸 피해만 주는 것 같아 그리고 성격도 맞지 않아 이러면서 친한 사람들을 뚝 잘라버리든지 아니면 떼어 내 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지금 깨달은 것이지만 정말 내가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에 받을 수 없었던 일이 생기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 사귐에 조급히 맺지 말고 최소 상대방에게 1년 이상을 투자하고 격어 본 후 신중이 판단하여도 될 것입니다.네 번째는인맥관리에 현대 기술에 적극 활용해 보세요.이 말은 우리가 잘하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도 있고 MSN 또는 네이트 온 메신저도 있잖아요. 이것을 활용 한다던가 일주일에 한번 또는 한 달에 한번 정해서 1시간정도 시간을 쪼개어서 전화나 문자 또는시오.차라리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명함은 그 사람의 얼굴인데 그것을 간직하고 기억해 달라는 뜻으로 전해 준 것인데 무참히 버린다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다섯번째인맥을 업데이트 하는 것입니다.최소 6개월에 한번은 인맥별 정보를 업데이트해서 추가된 인맥들이나 기존 인맥들을 다시 살피고 정리하는 것도 중요 합니다. 그 정리 하는 시간이 1시간 이상이 걸리더 라도 그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인맥이라는 것은 나를 성공의 문턱 앞까지 다다를 수 있게 도와주는 그런 사람들 이므로 인맥관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되지 맙시다.지금도 가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아쉬 울 때만 전화하거나 문자하는 사람. 여러분도 공감할 내용 일 것입니다. 그렇게 연락 한번을 안 하다가 자기가 아쉬워서 부탁을 하면 아무리 착하고 좋은 사람도 흔쾌히 받아 줄 수 있을 까요?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맥관리 소홀히 하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계발 -------------------------------------그 다음 두 번째 단원인 자기계발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자기계발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계발한다.즉, 성공을 향해 자기관리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으로써 나의 지식을 높이고 발전시켜 나감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그리고 더 일찍 성공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요즈음엔 외국어 3개 정도 하고 토익공부 열심히 해서 점수관리 하거나 자기 적성이나 능력이 필요한 부분은 그 적성분야 학원에 다니거나 세미나 또는 자격증 따는 등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학 전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 도대체 방학동안 뭐했지?’ ‘내가 해 놓은 게 뭐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한숨만 나오더군요.길지만 실습3주로 인해 짧아 보았던 방학.그러나 개학 후 아이들은 외국어 학원을 다녔거나 미용학원에서 테크닉을 더 배워 왔다던가 아니면만의 발전과 관리가 있어야지 성공이 쉽습니다. 뭐 돈이 많거나 대기업회장 자식이라면 성공이 쉽지 몰라도.... 관리나 계발 정말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 쉽게 부자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최선을 노력한다면 우리도 CE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계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텐데 계발하는 방법은 많지만 그중 몇 가지만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1.책을 많이 읽으십시오.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난 다독가입니다.책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의 생각이나 나의 일에 지침서가 되기도 합니다. 책을 읽은 후 나에게 맞도록 바꾸어 흡수 시키고 그 흡수 시킨 것들을 일상생활이나 나의 일에 적용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뿐만이 아니라 큰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설득의 심리학처럼 그 내용을 적용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 중 대조효과라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먼저 비싼 정장을 보여준 후 저렴한 스웨터를 보여주는 것과 저렴한 스웨터를 보여주고 비싼 정장을 보여주는 것의 차이에서 정장을 보여준 후 스웨터를 보여주고 판매한 것이 많이 구입하고는 한다. 이 내용은 저렴한 옷을 보여준 후 비싼 것을 보여주면 더 비싸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저도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시절까지는 책글씨만 봐도 졸렸는데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처음엔 만화책 그다음 인터넷소설 그다음 김진명 소설 그다음 자기계발에 관한 책, 경제에 관한 책 이렇게 흥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싫어하던 내가 책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고 다 읽은 책은 소장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책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제테크 방법이나 자기계발이나 사람과의 관계유지를 알게 되었고,새로운 것들을 상대방에게 적용하고 있더군요.(제테크 : 용돈 줄이기, 통장 관리 하기 등.사람과의 관계: 칭찬 끝에 토 달지 말라. 예를 들면 살 마니 빠졌네 그런데 말이야 얼굴 살은 그니다. 그러면 나중에 만약 자기 샵에 외국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돌려 보내 시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제가 배운 지식으로 원하는 것을 상담해 주면서 우리나라의 다른 곳에서는 많이 답답했을 법한 것들을 지식으로 원하는 것을 상담해 주면서 이해시키고 관리함으로서 외국인 손님의 만족감과 내가 외국손님을 충족시켰다는 만족감으로 흐믓해 할 것입니다.그 외 배울 것들은 여러 사람을 접함으로써 나의 테크닉을 만들고 다른 원장님들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테크닉만으로 관리를 해준다면 그 사람은 발전이 없이 그 자리만 맴돌 것 입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 학교에서 열리는 교육을 가서 배우고 그 배 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더 많은 능력과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요즈음 모든 것이 컴퓨터하나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른다면 교육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될 것 입니다.3.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키운다.커뮤니케이션 능력, 특히 프리젠테이션이야 말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에 든 것은 많은데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식과 경험들로 가득 차 있지만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고 표현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그만한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떨림과 공포를 극복하고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기회를 자주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솔직히 저도 아직까지 이 기술이 약합니다. 말을 하면 이야기가 꼬여서 상대방이 내가 말하는 요점을 몰라 되물어 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정말 내 자신이 창피하기까지 합니다. 일단 능력을 키우려면 자신감부터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부담 없는 자리(가족들 앞이나 친구들 앞)활용하고 남들 발표를 잘 들으십시오 .그리고 제가 약한 부분인데 마지막으로 기록을 외워서 하는 연습을 가지면 조금 더 능력이 올라간다고 합니다.이상 방법은 여기까지 하고 성공 자질 테스트를 한번 해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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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17 | 7페이지 | 3,000원 | 조회(2,302)
  • 한국의 신화 줄거리 요약
    Ⅰ. 신화의 이해1. 신화의 성격가. 신화의 정의신화는 ‘신성시(神聖視)되는 이야기’ 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신화는 신성시 되고, 신성시 되지 않는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다. 신성성은 현실적으로 존재 했거나 존재하는 것을 포괄적, 규범적 의의를 갖도록 차원을 높여 나타내는 현상이다. 그래서 신화의 신성성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이한 요소들을 통해 띠게 된다. 신화는 일상생활의 보편적인 경험을 특정한의미가 두드러지도록 집약화해서 이야기로 만든 것이 신화이며, 일단 성립된 신화는 행동의 규범이나 당위로써 간주된다.나. 신화가 전설, 민담과 다른 점전승자의 태도에서 신화는 진실되고, 신성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반면에 전설은 전승자가 신성하다고 여기지는 않으나 진실되다고 믿고,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또한 민담의 전승자는 민담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진실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시간과 장소에서 신화는 태초의 일, 신성한 장소를 무대로 삼는다. 하지만 전설은 구체적으로 제한된 시간과 장소를 갖는다. 또한 민담은 시간과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다.신화의증거물은 매우 포괄적이지만 전설은 특정한 개별의 증거물을 가지며, 민담은 이야기 그자체로 완결되어 증거물을 가지지 않는다.주인공 및 그 행위에서 신화의 주인공은 신이 지닌 신이한 능력을 발휘하는, 보통사람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신성한자가 등장하게 된다. 전설의 주인공은 한정될 수 없는 특정한 인간이고, 민담의 주인공은 일상적인 인간이 된다.전승의 범위에서 신화는 민족적 범위에서 계승된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진실성과 신성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전설은 증거물의 성격상 대체로 지역적인 범위를 r갖는다, 하지만 민담은 지역적인 유형이나 민족적인 유형은 있어도, 어느 지역이나 민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기능면에서 신화는 전승집단의 신앙을 요청하며, 그 집단 단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설은 일정한 지역을 발판으로 하여 그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적인 유대감을 타고 있던 말이 큰 돌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굴려 보니 그 곳에서 금빛을 두른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나왔다. 왕은 이를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고 그 아이의 이름을 금와라 짓고 고이 길렀다. 부루가 돌아간후 금와가 대를 이어 왕이 되었고, 다음 왕위를 태자 대소에게 전했으나 이후 고구려왕 무휼에 의해 대소가 죽으니 나라가 망했다.4. 동명왕과 유리태자동부여의 금와가 왕위에 올랐을 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금와는 그 여자에게 이 곳에 온 까닭을 물었더니, "나는 하백의 딸로, 이름은 우화입니다. 여러 아우들과 놀러 나왔다가 자칭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라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나를 웅신산 밑 압록강가에 있는 집으로 유인하여, 정을 통해 놓고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중매 없이 남을 따랐다 책하며, 저를 여기에 귀양 보낸 것입니다." 금와가 이상히 여겨 유화를 집에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 몸을 피해도 쫓아가며 비추었다. 이로 해서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다섯 되들이나 되었다. 왕이 버려서 개,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으며, 길에 버리면 소나 말이 피해 가고, 들에 버리면 새와 짐승이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해도 깨어지 않으니 도로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니가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기골이 영특하고 기이하여 7세에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게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하였다. 속담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기 때문에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금와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다. 항시 주몽과 같이 노는데, 그 재주가 주몽을 따르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가 왕께 아뢰었다.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닙니다. 만약 일찍이 조처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왕은 이 발을 듣지 아니하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고, 이는 조금씩 먹여 여위게 하고, 노마는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위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법도를 모르고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소. 하루 바삐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나라를 창건하여 도읍을 세우도록 합시다."이에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남쪽 양산 기슭 나정 우물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모양은 마치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그리로 달려가보니 자주빛의 큰 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 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알을 조심스럽게 쪼개 보았다. 아이의 몸에서는 광채가 나며 임금의 위용을 드러내었다. 새와 짐승들이 모여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게 빛났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했는데, 이는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말이다.혁거세왕은 맨 처음 입을 열어 스스로를 '알지거서간'이라 했다.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을 '거실한' 혹은 '거서간'이라 하게 되었다. 여섯 촌의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들의 소원을 듣고 임금님을 내려준 것을 소리높여 칭송하며, "이제 천자님이 세상에 내려왔으니 덕있는 여식을 찾아 배필을 정할 일만 남았구나" 하며 환호했다.그런데 바로 이 날 정오 무렵이었다. 사량리라는 마을의 알영 우물가에 계룡 한 마리가 나타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자태가 매우 고왔다. 그러나 오직 입술만은 닭의 부리처럼 생겨서 보기가 흉했다. 사람들은 신기해 하기도 하고 애석해 하기도 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월성 북쪽 시내로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켰다. 그런데 목욕을 끝내고 보니 어느 사이에 부리는 떨어지고 앵두같이 예쁜 사람의 입술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그 시내를 부리가 빠졌다 해서 발천(撥川)이라 부르게 되었다.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하늘이 내려준 신령한 두근자에 서쪽바다에서 자줏빛 기운이 상서롭게 서리는 것을 보시고 신의 아들 세사람이 장차나라를 열고자 하나 베필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세 공주를 데리고가라 하셔서 왔읍니다. 부디 짝짓는 예를 올리고 대업을 이룩하소서”하고 홀연히 사라졌다.세 신인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고하고 그녀들과 결혼하여 활을 쏘아 땅을 정하니 고을나가 사는 곳은 제1도(第一徒), 양을나가 사는 곳은 제2도 (第二徒),부을나가 사는 곳은 제3도(第三徒)라 하였다. 이로부터 오곡의 씨를 뿌리고 목축을 시작하니 날로 번성하여 인간의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11. 연오랑과 세오녀157년(신라 아달라왕 4) 동해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던 연오랑은 어느날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 남편을 기다리던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남편과 해후하게 된다. 그 후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으므로 점을 쳐 본 결과 연오랑과 세오녀의 일에 원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사자를 보내 귀국을 종용하였으나 연오랑은 이를 듣지 않고 세오녀가 짠 세초를 주어 사자를 돌려 보냈다. 이 세초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이에 그 비단을 국보로 삼고 세초를 둔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제사지낸 자리를 도기야(都祈野)라 하였다.12. 검은 옥대와 만파식적31대 신문대왕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동해가에 세웠다. 그 이듬해 5월 동쪽 바다에서 조그마한 산이 나타나 감은사를 향해 물결을 따라 왔다갔다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일관에게 점을 치게 했다. 일관이 말하기를 선왕(문무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계시며 또 김유신공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대신이 되어, 이 두 성인이 덕을 함께 하여 이 성을 지킬 보물을 지려고 하오니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로 가시면 반드시 값비싼 큰 보물을 얻을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은 기뻐하여 해번으로 나가자 과연 산이 있었다. 급히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게 했더니 산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는 한 그을 듣고 활 쏘는 사람 50명을 선발하여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에 이르자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 양패공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 "섬에 신지(神地)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했다. 이에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치솟았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공에게 말하기를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오." 했다. 양패공이 잠을 깨어 그 일을 좌우에게 묻기를 "누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겠소"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나무 조각 50개에 저희들의 이름을 각각 써서 물에 가라앉게 해서 제비를 뽑으시면 될 것입니다." 했다. 공은 이 말을 따랐다. 군사 거타지의 이름을 쓴 나무 조각이 물에 잠기었으므로 그 사람을 남겨 두자 갑자기 순풍이 불어 배는 지체없이 나아갔다. 거타지가 수심에 쌓여 섬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오더니 말하기를,"나는 서해약(西海若)(서쪽 바다의 신)이오. 중 하나가 해가 뜰 때면 매양 하늘로부터 내려와 타라니의 주문을 외면서 이 못을 세 번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물 위에 뜨게 되오, 그러면 중은 내 자손들의 간을 빼어 먹고 오직 내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겨 놓았소. 내일 아침에도 또 반드시 올 것이니 그대는 활로 쏘아 주시오" 했다.거타가 말하기를 "활 쏘는 것은 나의 장기이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했다.노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 속으로 사라지고 거타지는 숨어서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와서 전처럼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중은 바로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쓰러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와서 치사하기를 "공의 은덕으로 내 생명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아내로 삼기 바라오." 하니, 거타가 말하기를 "따님을 나에게 주시고 저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원하던 바입니다." 했다.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 꽃으로 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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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31 | 20페이지 | 2,000원 | 조회(734)
  • 회심한 바울의 생애
    회심한 바울-목 차-Ⅰ.서론Ⅱ.배경① 생애② 시대적 배경③ 사상적 배경Ⅲ.적용① 사도 바울이 되기 전② 바울의 회심사건③ 바울의 회심에 대한 신학적 의의④ 선교여행(전도여행)Ⅳ.실제① 교훈 및 영향② 바울에게서 배울점Ⅴ.결론※참고자료Ⅰ.서론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임명한 일꾼으로 이루어진 후 변화된 사람이다. 그 후 사도로서의 삶을 평가하려고 한다. 사도바울이 회심 이후와 이전을 비교하며 살펴보고, 전도여행에 대하여도 자세히 살펴 볼 것이다. 바울은 내가 존경하는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구원의 역사를 목회 적이고 선교 적으로 탁월하게 이룬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목회자들이 꼭 본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역자이기에 의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모습 속에서 지금도 구속사의 역사를 지금도 이루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Ⅱ.배경① 생애출생 : 사도행전 22장 3절에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다.”하였다. 연대는 주후 1년경이라고 한다.다소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주전 800년경 앗수리아의 샬만넷셀이 정복 중에 다소의 이름이 기술된 것을 보면 매우 일찍이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 같다. 또한 다소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많은 학자들이 있어 다른 도시에 비하여 학구열이 컸었다. 특히 “스도이고” 학파 철학자들로 유명하였다. 그러므로 다소에는 “스도아” 철학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컸고, 그들의 사상적 영향은 일반시민에게 까지 미쳤다.감수성이 예민한 바울은 이러한 학문적 풍토 속에서 넓은 시야로 인류의 세계를 보았으며 세계의 끝까지 진출하려는 꿈을 키웠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유대주의나 율법에 국한된 사고를 벗어나 당시 세계를 풍미했던 “노스틱” 철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후에 그가 선교활동을 하기 전 다소에 머물러 있을 때 이러한 사상과 기독교 내지는 유대교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자기 출생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잡혔을 때 “나는 유대인이라의 회심32-35년 나바테아 아라비아에서 바울의 초기 전도 사역35-36년 회심이후 바울의 최초의 예루살렘 방문36-45년 바울이 수리아/길리기아에서 사역한 ‘침묵의 기간’45-46년 수리아 안디옥에서 바울 사역의 시작46년 회심이후 ‘기근해소를 위한’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47-48년 구브로와 남갈라디아에서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48-49년 바울의 가라디아서49년 예루살렘 공의회를 위한 바울의 회심 이후 세 번째 예루 살렘 방문49-50년 소아시아를 통과하여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로 향한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50년 바울의 데살로니가전후서50-52년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사역52-55년 바울의 제3차 선교 여행과 에베소에서의 사역55-56년 바울의 고린도전후서57년 바울의 로마서, 바울이 회심이후 바울의 다섯 번째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57-59년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투옥됨59년 바울의 로마행 ‘제4차 선교여행’이 시작됨60년 바울이 로마도착, 바울의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62년 바울이 가택연금에서 해제됨63년 바울의 다섯 번째 선교여행(그레데, 니고볼리, 에베소, 마케도냐, 고린도, 밀레도를 방문)63년 바울이 두 번째 체포되어 로마에서 두 번째로 투옥됨65년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함② 시대적 배경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던 당시의 상황은 유대나라가 로마에 점령됨으로써 인하여 그 민족은 인근 각처 각국에 흩어져 있던 시기였다. 유다인은들은 동양, 애굽,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의 로마 등지로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유대교에 깊이 뿌리박고 또 다른 동교에 편견이 많았던 유다인들이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접하게 됨으로 인하여 그들의 사고가 훨씬 자유로워지고 또 편협 된 마음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교가 변화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가서 사는 곳곳마다 유대교 회당이 건립되었고 유일신 하느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던 바울로 사도에게 유리했던 돈시대,(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계시를 주신 사건을 기점으로 한) 율법의 시대, 메시야 시대, 이 세 시기가 다 지나가면 영원한 안식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법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율법은 메시야 시대가 동터 오기까지만 지속되는 한시적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바울이 이 시기 구분법을 받아들이도록 교육 받았다면, 그는 메시야가 오셔서 새로운 질서로 율법을 대치하시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주장하듯이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메시야라는 것은 바울에게 재고의 가치도 없는 엉터리 같은 주장이었다. 예수의 사회적 지위, 경력, 가르침은 바울이 생각하고 있던 메시야의 사회적 지위, 경력, 가르침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예수는 왕궁 출신은 커녕 존재도 없는 곳에서 태어났고 군대도 없었으며 종종 물리적인 폭력을 경멸했다. 그가 스가랴의 예언 성취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는 로마인들에 대한 승리가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손에서 수모와 죽임을 당하는 전주곡이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바울이 확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바울에게 확실한 것은 단지 이것이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야라는 것은 말 자체가 모순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든가 사법상의 실수라고 말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논쟁이었다. 핵심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따라서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는 신명기21:23에 선포된 말씀에 해당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메시야라는 말을 공연히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바울이 취할 태도는 분명했다. 그들은 신성 모독죄를 범했고, 따라서 그에 걸 맞는 벌을 받아야 마땅했다고 바울은 생각한 것이다.제자들의 활동과 가르침은 율법과 규례들, 조상의 유전 등 유대교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위태롭게 하였다. 이 점 때문에 반감이 자랐고 이 반감은 근본적인 대수술을 불렀다.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삶자신이 쓴 서신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전설적이고 객관적인데 비해, 바울 자신이 쓴 서신( 갈1:15-16; 고전9:1-2; 고후4:5-6)에는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바울의 회개의 계기는 바로 바울 자신의 주관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이방에 복음을 전파할 주의 사도로 쓰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역사였다고 하는 편이 올바른 해석이 될 것이다.그리고 바울의 신앙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자기의 잘못된 신앙관을 깨닫고 회심한 후 그의 신앙은 180도로 변한 철저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말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것이다"고 믿었다.바울은 회심 전에 하나님을 섬기던 율법적인 신앙관을 바꾸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확신하였다. 이러한 확신을 그는 그리스도가 그에게 나타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택정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바울의 전 생애를 영광가운데 인도하셨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오심과 자기의 성별은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라 했다.) 바울의 이 같은 확실한 신앙은 마침내 자신을 이방인들을 구하는 복음의 사도라는 불같은 사명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④ 선교여행(전도여행)1차 전도 여행(1) 이방인 선교의 일을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특별히 부르심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을 부르신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아,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의 항구 도시인 실루기아로 여행하였고, 거기서 배를 타고 150여 마일을되, 다른 임금 곳 예수 라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면서 바울 일행을 체포하려한 것은,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길한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었다. 아덴의 마르스 언덕, 바울이 이곳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이란 설교를 하였다.(3)빌립보에서는 로마의 관헌에 체포되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주었더니 그 주인이 수입이 끊어지는 까닭에 군중을 충동시켜 소송하였다. 그러나 밤중에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송 할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들은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전도하고 이튿날 풀려 나왔다.이렇게 1년 반에 걸친 고린도 전도 후 바울은 고린도에서 얻은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에 데리고 배로 에베소에 건너가 거기에 이 부부를 남겨두고 그와 실라 일행은 일단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안디옥으로 돌아갔다.3차 전도 여행(1)제3차 전도는 제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다. 제 2차 때 성령으로 금지되었던 소아이사 전도, 특히 에베소 전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중심적 대도시의 중요성에 유의하여 그 전도를 꾀하였으나, 이때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겨우 다년간의 그 숙원을 이루게 된 바울은 약 3년 동안이 도시에 머물렀다.(2) 3차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고,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 전도에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눈길은 더 서쪽인 로마와 이서의나라에로 돌려졌다. 그리하여 여러 해전부터의 숙원이 이루어지려는 찰라에 우선 로마교회에 자기의 계획을 말하고 그와 동시에 전부터 품고 있던 소신을 밝혔던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로마서이다.Ⅳ.실제① 교훈 및 영향행함과 믿음 : 믿음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바울로는 항상 복음을 받아들이는 통로로서의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며, 이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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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3 | 14페이지 | 1,000원 | 조회(989)
  • 영어 공용화에 대한 반대
    영어공용화, 획일화에 대한 경계원시적 농업시대에 곤충은 농부들의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정작 곤충으로 인해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농업이 본격화 되어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런 경작 방식은 특정 곤충 개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자연은 생태계에 다양성을 선사했지만 인간은 이를 단순화 시키는데 모든 열정을 쏟아 붇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생태계뿐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인구 중 약 20억 9천만 명(세계 인구의 1/3이 넘는다)이 영어에 노출되고 있다.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는 복거일씨에 의해 촉발된 영어공용화론에 동조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영어로 인한 획일화 가능성, 이것은 우리의 현실문제다. 도대체 영어공용화론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거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일단 논의의 명확함을 위해 영어공용화론의 범위를 복거일씨가 주장한 내용으로 축소시키고자 한다. 이는 자칫 영어공용화의 정의(definition) 문제로 인해 논의 전체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우선 복거일씨의 영어공용화론은 크게 세 가지 개념을 제시한다. 첫째는 현재 성기게나마 지구 제국(혹은 지구 공동체)이 형성되어 가는 중이며, 그 중심은 미국이라는 점, 둘째는 (국가적 차원에서) 닫힌 민족주의를 버리고 경제적 마인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 마지막으로 언어는 단순히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논리적 맥락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영어를 공용화해야 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여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궁극적으로 영어를 모국어화 해야 함을 강조한다.우리는 이에 대해 여러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가 말한 ‘지구제국’에 관한 의문이다. 물론 복거일씨 역시 지구제국에 대한 정의를 분명하게 내리지는 않았다. 단지 역사상 로마와 같은 제국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아니며 비록 그 실체를 규정하긴 어렵지만 전 지구가 하나의 지역구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구제국의 정의가 아니라 그 중심에 미국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임을 분명히한다. 그 실체조차 불분명한 ‘지구제국’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자칫 비생산적인 담론을 생산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있다. 거시적으로 역사를 바라봤을 때 그 어떤 나라도 세계 최강의 지위를 몇 세기 동안 유지하지는 못했으며,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미국 역시 예외일 수 없음이 그것이다. 즉 지구 제국의 등장 여부 혹은 지구제국이 무엇이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이 향후 몇 세기를 지금과 같은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로마 제국 시대에 로마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하지만 로마는 멸망했고, 역사는 절대적인 강자도 절대적인 약자도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두 번째로 언어는 과연 수단인가에 관한 의문이다. 복거일씨는 언어가 수단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합리적인 선택은 경제학적으로 접근해야 가능하며 영어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역시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득(得)과 실(失)을 따져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에게 득이 된다면 택하고 그렇지 않으며 행하지 않는 것은 전혀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해야 할 사실은 경제학적 마인드는 시장 가치로 평가되는 지표, 즉 객관적 자료에는 유리하게 적용될지 모르나, 인간다움, 민족정체성과 같은 정신적 산물을 다룰 때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언어에 우리가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면 그의 영어공용화 주장이 갖는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게 될 것이며 더욱이 합리적인 선택도 아니게 된다. 독일의 언어학자 홈볼트(Humboldt)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만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하늘에 떠있는 별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우리는 북두칠성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그 별에 의미를 부여한다. 명명을 통해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단순히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게다가 세상을 언어화하는 방법은 민족마다 다르며 거기에는 그 민족의 세계관, 문화, 민족정신이 깃들여 있고 이 역시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평생 눈과 함께 살고 있는 에스키모들은 눈을 “내리는 눈”, “쌓여있는 눈”, “집짓는 눈”등 여러 가지로 나누고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들에게 “눈”은 삶의 일부분이었고, 언어는 자연스레 이를 반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벼농사가 발달한 우리나라의 경우 한 가지 식물에 대해 “볍씨, 모, 벼, 쌀, 밥” 등의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영어권 사람들은 이를 모두 “rice”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식물을 세분화 하고 있는 반면, 영어권 사람들은 한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만 살펴보아도 언어를 수단으로서 바라보는 그의 논리는 분명 논리적 모순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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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5 | 2페이지 | 1,000원 | 조회(776)
  • 청각장애의 원인
    청각장애의 원인★ 소리의 전달 과정????귀는 외이와 중이, 내이로 나누어집니다. 외이는 소리를 모으는 파라볼라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외이도를 따라 전달된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킵니다. 고막에 붙은 중이의 작은 뼈들은 내이의 액체로 채워진 달팽이관으로 소리의 진동을 전달합니다.이것으로 액체 안에서는 파문이 일어나고 이것은 청신경세포를 자극합니다. 청신경세포의 흥분으로 전기적인 신호가 발생하며 이 신호는 청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됩니다.< 귀의 구조>(1) 외이 : 외이는 귓바퀴와, 외이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2) 중이?① 고막 : 외이와 중이의 경계에 있고, 소리를 받아들여 진동하는 얇은 막입니다.② 청소골 : 고막의 진동을 크게 증폭시켜 내이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③ 유스타키오관 : 중이 속의 압력이 외부와 같게 조절(3) 내이① 반고리관 : 몸의 회전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회전감각)② 전정기관?: 청사가 감각 세포를 자극하면 감각 세포는 중력 자극을 받아들여 몸이 기울어 지는 것을?느낍니다. (위치감각)③ 달팽이관 : 중이로부터 온 소리의 진동을 받아들임, 속에는 청세포가 있고 청세포의 흥분은 청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합니다.< 청각의 전달 경로>음파 - 귓바퀴 - 외이도 - 고막 - 청소골 - 달팽이관 - 청세포 - 청신경 - 대뇌??? 귀의 구조??1. 유전성 난청과 선천성 난청유전성 난청⇒ 유전자에 의해 규정된다.선천성 난청⇒ 출생 이전에 원인이 있다.1) 가족 내이성 난청① 출생할 당시에는 청력에 이상이 없다가 자라면서 난청이 되어 진행하는 유전질환으로 일가족 중에 발생하기 때문에 가족 내이성이라고 함② 난청의 발생이나 진행이 완만함(2~3세, 학령기, 17~18세에 발생함)③ 유전형식은 염색체 우성유전-난청인 부모의 자식 중 반수가 난청이 되는 것이 원칙④ 일반적으로 유전성 난청의 청력도는 좌우가 정확히 일치하며, 동일 가계내의 난청자의 청력도가 일치되는 경우가 많다.⑤ 진단에는 임상증상과 가계도 검색이 필요함, 난청이 경도인 시기에는3) 유전성 난청 증후군유전성 난청 중에는 난청과 동시에 동반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후군(Waardenburg 증후군, Usher 증후군, Treacher 증후군, van der Hoeve 증후군, Alport 증후군, Pendred 증후군)4) 청기 기형▶선천성 외이도 폐쇄증⇒ 외이도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대개는 귓바퀴의 형성 이상을 동반한다. 편측성과 양측성이 있으나 양측성이 10% 적고, 여자보다 남자에게 많다. 외이도가 없고 고막과 중이강의 이상을 동반하며 내이는 이상이 없다. 기도청력은 완전소실로 50~60dB의 수평적 장애를 보이며, 골도청력은 정상이다. 내이기형을 동반하여 농이 된 경우는 수술로도 효과가 없다.▶중이 기형⇒ 중이, 특히 이소골에만 변형이 나타나는 경우다.변형의 종류에는 침골, 등골의 변형이나 고착, 그 사이의 관절의 섬유화나 분리, 등골과 전원창과의 고착 등이 주요 병변이다. 대개 30~50dB의 전음성 난청이 나타난다.임피던스 청력검사가 진단에 도움이 되고, 고실성형술로 청력 개선이 가능하다.▶내이 기형⇒ 내이의 형성 이상으로 고도 난청이 됨. 임상적으로는 측두골 X선 단층촬영으로 진단 가능하며, 골미로의 형성 이상에 국한한다.? 내이의 발육이 완전 결손된 상태? 와우회전이 태생 6개월에 발육이 정지되어 골미로와 막미로의 부분적 발육 부전으로 와우는 회전만 형성되고 전정이 확장되어 있는 상태? 골미로는 정상이고 와우와 구형낭의 상피구조에 국한된 형성 이상을 가진 경우5) 이경화증? 골미로 뼈의 흡수와 재생의 조직학적 병변이 계속되어 형성됨, 유전성 요인이 크다.? 병변은 전원창 부위와 골미로의 모든 부위에서 나타남.? 등골판과의 골 유착이 생겨 운동장애에 의한 전음장애가 생긴다.? 전원창 부위 이외의 병변은 무증상 또는 내이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백인에게 잘 생기고 유색인종에게는 드문 것이 특징이다.? 여성에게 잘 생기며, 사춘기를 전후하여 발병하여 임신으로 악화되는 일이 많다.? 증상은 진행성 난청으로 이명을 동 일으켜 나타나는 난청? 원인 : 모체의 감염과 모체에 투여된 약물에 의한 것(예방이 가능, 감소 추세)? 선천성 풍진 증후군? 선천 매독, 모체의 매독균에 의한 난청? 임신중 약물에 의한 난청② 주산기 난청 : 임신 후기에 있어서 조산이나 출생 시 태아의 문제 등과 관련됨.미숙아는 2,500g 이하로 출산 시 가사나 간장, 뇌, 장의 장애가 있을 수 있다.2. 약물에 의한 난청? 중추신경계 전반에 걸친 신경독이 청각에 작용하는 것의식장애, 광범위한 신경증상으로 난청, 이명 ⇒ 일산화탄소, 수은? 청신경 영역만의 단독장애 ⇒ 아미노글리코사이드계 항생제, 아스피린 이뇨제이독성(ototoxicity)-약물에 의해 청기에 특별히 장애작용을 일으킴? 청각장애를 일으키는 요인-대량투여, 배설불량, 개체의 감수성 이상3. 음향에 의한 난청1) 강대음에 노출됨으로 해서 급격히 발생하는 난청① 급성 음향외상 : 어떤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상생활에서 듣지 못했던 강대한 소리에 노출되어 청각이 손상되는 경우(예, 귀 근처에서 총기류의 폭발, 리시버로 교신 중 전선에 낙뢰됨) 청각장애는 내이의 나선기의 물리적 파괴로 인한 것, 장애의 정도는 고도에서 경도까지 일반적으로 고음장애형, dip형이 있으며, 감음성 난청은 조기 치료하면 어느 정도 개선됨② 강대음의 단시간 노출에 의한 급성 음향성 난청 : 의식적으로 듣고 있던 소리로 단번에 내이가 파괴되는 소리가 아닌데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노출된 후에 난청이 되는 경우(디스코텍 음악, 음악 콘서트--전기적으로 증폭된 소리)장애의 형태는 장애 부위가 내이이며, 장애 정도는 고도부터 경도까지 여러 가지이다. 청력도는 수평형, 고음장애형, dip형이 있다. 예후는 급성 음향외상과 같으며, 치료에 의해 회복되기도 하고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③ 소음성 돌발성 난청 : 오랫동안 소음이 있는 작업장에 종사하면서 전혀 귀의 증상을 호소하지 않던 사람이 같은 소음하의 작업장에서 갑자기 한 쪽 귀가 고도의 난청이 되는 경우서의 소음 노출의 구체적 상황에 의해 좌우된다.소음성 난청을 일으키는 직업⇒ 군인, 포수, 광산, 철도, 기계공장, 금속공장, 방직공장, 제철소 등(소음 레벨이 70~100dBdml 범위)하루 중의 노출시간과 소음의 주파수 특성등으로 종합 평가②청각장애의 특징 : 감음성 난청이며, 청력도는 좌우 대칭성 고음 장애형이다.초기에는 dip형 또는 급추형에서 점차 점경형으로 된다.청력장애의 정도는 60dB정도이며, 장애 부위는 내이의 모세포이다.③예후 : 난청의 발생과 진행은 비교적 초기에는 현저하며, 10~20년 후에는 소음에 계속해서 폭로되어도 진정화되어 그 후의 발현이나 진행은 연령 변화와 같다.일단 발현한 난청은 치료에도 개선되지 않으며, 소음성 직장을 떠난 후에도 진행된다. 소음성 직장에 있을 때는 난청이 없다가 떠난 다음에 발현하여 난청이 진행되기도 한다.4. 외상에 의한 난청1) 중이, 내이의 직접적 외상① 고막 손상 : 고막 손상에 의한 난청은 경미하며, 2차 감염만 없으면 외상에 의한 천공은 곧 폐쇄되어 치유된다. 중이에 감염되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함② 이소골 손상 :귀이개 같은 것으로 이소골에 직접 닿게 되면 이소골 골절이나 관절의 탈구를 초래함.외상성 고막 손상-- 10dB 전후의 난청, 이소골 손상-- 20dB 이상 50~60dB의 청력 손실이 온다. 이소골 손상은 수술로 회복 가능하고 청력도 정상으로 회복 가능함.외력이 내이의 조직에 직접적 송상을 일으킬 경우--이명, 난청, 현기증, 안구진탕골도청력이 약화되는 감음성 난청, 혼합성 난청, 농(난청은 조기치료로 개선되나 농은 어려움)2) 기압 외상① 고막 파열 : 외이도 내의 급격한 기압 변화에 의해 고막의 파열, 고막의 간접 천공진단은 이경검사로 볼 수 있으며, 내이의 손상이 없으면 10~20dB의 전음성 난청을 나타낸다. 감염만 없으면 1~2주 만에 천공이 막히게 되고 청력도 정상으로 회복된다.② 내이의 기압 외상 : ? 기압 변화의 폭이 클 때 기압 변화가 지속되는 경우,내이에 기압변화가 외상의 양자가 혼합된 형태의 장애가 나타남? 경도에서 중등도의 감음성 난청 또는 고도 난청, 혼합성 난청 등을 나타냄? 노출 직후는 청력이 다소 회복 보일 때도 있지만, 고정되거나 진행성 난청이 됨3) 두부외상 : 머리의 타박상에 의한 청각장애.측두골에 골절이 생겨 청각경로가 손상을 받음, 두부타박 후 내이성 난청인 내이진탕에 의함, 일종의 뇌전탕증의 형태로 후미로 중추의 청각경로가 손상되어 나타남4) 경부외상목 뒷부분에 강한 타박이나 충동사고 등으로 인한 손상에 의해 일어나는 청각장애내이장애나 후미로성 난청을 나타내며, 증상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5. 메니에르병(Meniere병)과 돌발성 난청1) 메니에르병? 메니에르에 의해 1861년 1월 8일 파리의 의학회에 내이의 병변으로 갑작스런 현기증, 구토, 이명, 난청이 온다는 것을 처음 발표함.? 지금까지 건강하고 귓병도 없었던 사람이 예고적인 전구 증상 없이 심한 현기증을 느끼는 것? 현기증이 심하지 않으면 귀에 이명이 있고, 귀가 안 들리게 되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명과 난청을 수반함? 40대 중반기에 잘 생기며 성별의 차이는 없음2) 돌발성 난청? 건강하고 귓병의 경험도 없던 사람이 이유 없이 돌연히 한쪽 귀가 들리지 않거나, 메니에르병과 같이 회전성은 심하지 않으나 어지러움을 호소함? 장년기에 많고 소아나 고령자에게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30~59세의 예가 3/4정도이고 성별의 차는 없다.? 원인불명이나 전날의 음주나 감기기운, 육체적 정신적 피로 등? 감음성 난청이며, 장애부위는 내이, 편측성, 고도? 청력형은 농형, 수평형, 점경형 등이고, 60dB, 중등도 또는 경도? 예후는 발병후 2주 이내에 치료하면 가장 좋다고 하나, 고도 난청이거나 현기증 같은 전정증상을 동반하면 예후가 나쁘다. 자연 치유되는 예도 있다.6. 노인성 난청과 원인불명의 감음성 난청1) 청력의 생리적 연령 변화? 청력의 악화는 전 주파수에 걸쳐 볼 수 있으나, 고음역에서 현저하며 저음역에서 경미함.? 20세~50세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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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4 | 7페이지 | 1,500원 | 조회(541)
  • [교회사]미국의 복음주의 운동
    ※ 미국의 복음주의(evangelicalism) 운동 ※1. 복음주의의 의미복음주의는 교회사에 나타난 여러가지 신학적 현상과 부흥운동의 총칭을 말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역사를 볼 때 이단적인 것이나 로마 가톨릭 교회적인 것에 반대하여 일어난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나타났고 형식주의에 반대하여 청교도주의나 경건주의 운동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19세기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대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교리/형식주의자유주의 운동신복음주의 운동근본주의/세대주의영미 대각성부흥 운동종교개혁 운동청교도/경건주의 운동가톨릭현대에 들어와서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18세기 대 각성운동으로부터 일어난 신앙전통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좁은 의미에서 그 하부 그룹인 ‘신복음주의자’들에게 사용되는 명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의 차별을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1942년 미국에서 오켄가의 지도로 조직된 전국 복음주의자 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NAE)의 창립을 통해 공식화되었다. NAE는 엄격한 근본주의자들보다 오히려 온건한 복음주의자들 단체로 헤렐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 주도했는데 새로운 형태의 복음주의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극단적 근본주의자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란 용어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신복음주의란 용어 대신, 간단히 복음주의란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2.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20020043 소완영 20050002 고보성 20050023 박한빈복음주의는 성서의 메세지로부터 유래한 신학체계인 동시에, 기독교에서 일어난 경건하고 헌신적인 신앙 운동이다. 종교개혁 운동, 경건주의 운동, 청교도 운동, 대각성 운동, 부흥운동, 근본주의 운동, 오순절 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복음주의의 역사적 뿌리가 되는 4가지 운동인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부흥운동 등이 지금의 복음주의 운동에 어떠한 영만 종교개혁 운동이야말로 복음주의 운동의 근원과 근간을 제공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들인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의 원리가 복음주의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복음주의의 초점과 표준이 되었다.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이 교회 개혁에 주 관심이 있었던 것에 반하여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복음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제한적이었다. 반면 현대 복음주의는 교회 개혁보다는 회심과 복음전도에 더 관심이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죄와 용서’라는 법적인 면에서 이해한 반면에,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을 통한 내적 변화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둘 수 있겠다.2) 청교도 운동복음주의의 두번째 역사적 원천은 17세기 청교도 운동이다.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은 청교도 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현대 복음주의자들 역시 청교도들의 후예들이다. 청교도 운동은 영국교회 갱신운동이었다. 청교도들은 영국의 종교개혁이 불완전하다고 평가하고 온전한 개혁을 추구했다.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고 신약성서적 교회의 회복을 추구하였다.청교도 운동은 건전한 신학과 윤리적 삶에 관심을 두는 이론적이고 도덕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최근 청교도들이 종교적 감정과 경험을 강조했다는 사실들이 연구로서 나타나면서 이러한 점에서 복음주의가 신앙의 체험적 측면을 강조하며, 그것이 그 중요한 특징이 된 것도 청교도 운동의 영향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청교도 운동은 복음주의에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기독교 국가 건설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와 18세기에 요나단 에드워드의 저서와 대각성운동 등으로 미국을 청교도 운동의 중심지로 만들며 또한 복음주의 운동의 큰 족적을 남겼다.3) 경건주의 운동복음주의의 세번째 원천은 경건주의 운동이다. 독일 경건주의는 어떤 사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부흥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17세기 정통주의 개신교가 종교 개혁의 신앙을 상실하고 형식스게이트 체험은 경건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을 강조한 전형적 실례이다.경건주의는 기독교가 한 신념 체계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삶이라는 진리를 재발견하며, 형식화된 정통주의 기독교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공헌했다. 그것은 생명력 있는 개인적 종교에 대한 욕구를 육성했다.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은 18세기 영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곧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으로까지 계승되어진 것이다.4) 부흥운동종교개혁청교도/경건주의신복음주의현대 복음주의의 또 다른 원천은 부흥운동이다. 부흥운동은 독일의 경건주의,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 운동 및 각성 운동 등에 의해 18~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신앙운동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적 신앙을 강화하는 영적 각성 물결이었다. 부흥 및 각성운동의 특징은 회심 체험, 경건하고 성결한 삶, 교회갱신, 노예제도 폐지와 인권향상 등 사회개혁, 봉사와 선교 등을 강조한 것이다.17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 1차 각성운동은 1740년대 에드워드와 휫필드의 설교를 통해 그 절정에 달했고 영국에서는 웨슬리 형제를 통해 영국교회 갱신운동이 일어났다. 제 2차 각성운동은 18세기 말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찰스 피니 등의 주도로 미국에서 일어났다.현대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청교도 운동, 경건주의 및 부흥운동의 산물이다. 이 운동들은 복음주의에 근본 토대와 기반을 형성했다. 한편 복음주의 운동은 현대 초기에 태어나 20세기 중엽 성숙에 이르렀다. 복음주의는 과학적 사고, 경험적 접근 및 상식주의와 같은 현대의 도구를 항상 사용하고 있다.3. 미국 복음주의 운동1) 신학적 배경19세기 미국 기독교가 직면했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학적인 것이었다. 유럽으로부터 건너온 다윈의 진화론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론과는 상치되는 것이었음으로 일반인들 사이에 커다란 소동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신학자들 중에서는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러한 사상들의 구조 속에 기독교를 집어 넣으려고 하는 자유주의나이아가라 폭포 집회에서 다섯가지 근본이념을 정의하였는데 첫째로 성경의 무오성, 둘째 예수님의 신성, 셋째 동정녀 탄생, 넷째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육체적 부활과 임박한 재림 등이다. 이러한 운동이 바로 ‘근본주의’였다.① 근본주의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20-40년대 사이에 프리스턴 대학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일어난 신학 운동이다. 그것은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의 도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정통주의 기독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재천명한 것이다. 근본주의의 주 관심사는 신앙의 ‘근본’과 바른 교리, 즉 성서 무오설을 변론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리 중심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적인 흐름을 차단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는데 크게 공헌했는데 특히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학습을 금지시키고자 자유주의자들과 맞섰고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성경의 역사 비평적 해석에 응전하여 새로운 형태의 성경 해석을 창출하였다. 이들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소위 ‘세대주의자’들이다. 반면에 근본주의자들은 사회적 비전을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며, 반지성적, 비교화적이라고 하여 기독교 지식인들로부터 흥미를 끌지 못하였다.② 복음주의(또는 신 복음주의)1940년대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신복음주의’다. 미국의 근본주의 안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성적 표현을 추구하는 젊은 지도자들이 나타났으며 헤롤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다. 그들은 개신교 정통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졌던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 신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주류의 입장을 회복하면서 특히 세상을 긍정하고 문화를 포용하는 복음주의적 비젼을 지니고 있었다. 신복음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에 대한 비젼을 제점과 해외 선교에 눈을 뜨게끔 했다는 것이다.① 금주운동과 노예제도 폐지제 2차 대각성 운동 중에 설립된 단체로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던 ‘아메리칸 식민협회’와 금주 운동을 벌였던 ‘미국 금주협회’가 그것이다. 그리고 금주 운동에 있어서 여성들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는데 미국 여권 운동의 뿌리도 제2차 대각성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인권에 대한 높은 관심은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게 했는데 이는 19세기 남북 전쟁이 북측의 승리로 결말 짓게 만드는데 공헌하였다.② 도시 인구 문제와 복음 전파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회적 경제적 긴장 관계는 계속 증가했다. 남부는 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며 반지성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고 북부에서는 밀려드는 이민들과 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따라 이주해온 흑인들 때문에 도시 인구가 급증해 사회 문제를 낳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가 도시민들을 위해 설립된 ‘기독교 청년회(YMCA)’와 ‘기독교 여성회(YWCA)’와 같은 단체들의 설립이었다. 그리고 ‘주일학교’의 시작은 쇠퇴해가는 성경공부에 대응책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주일학교는 대각성 운동 중에 주최되었던 ‘천막 집회’를 새로운 상황에서 부활시켜 부흥회가 도시지역 종교 생활에 중요한 요소가 되도록 하였다. 이 운동 초기에 활약한 복음전도자로 ‘찰스 피니’와 ‘드와이트 무디’가 있다.③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이와 다른 도시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교파가 생기게 되는데 감리교가 초기의 모습에서 벗어나 빈민층 구제에 무관심해지자 성결교회와 영국에서 창설된 구세군은 도시 빈민들의 영적, 육체적 복리를 위해 활약했다. 이중 성결교회는 방언, 신유,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런 현상이 1906년에 일어난 ‘아주사 거리 부흥’에서 ‘오순절의 불길’로 미국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④ 식민지 확장과 세계 선교또 복음주의는 식민지주의와 경제적 제국주의라는 기틀 아래에서 19세기 초 복음 전파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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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6 | 6페이지 | 1,000원 | 조회(924)
  • 스파르타의 교육에 관하여 -
    Ⅰ.서론- 스파르타의 교육의 특징과 문제점을 제시하고, 논점을 밝힌다.오늘날에도 스파르타식 교육이란 말을 많이 쓴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엄격하고 가혹한 교육 훈련의 대명사다. 스파르타 교육은 7세부터 20세까지 아고게(agoge)라는 공교육 기관의 집단생활에서 이루어진다. 그에 앞서, 아기가 태어나면 반드시 원로회의에 보내 비정상적이거나 튼튼하게 자랄 가능성이 없으면 구덩이에 갖다 버렸다. 아고게 교육의 목적은 단 하나, 용감한 전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쾌락을 경멸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들은 머리를 깎지 않고, 옷도 입지 않았으며, 식사는 극히 소량만 하며 야수처럼 길러졌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인내와 충성과 겸손이었다. 고된 신체 훈련 중에 음악, 춤, 시, 설화 등을 배웠다. 스파르타 교육의 특징은 어른들이 남의 아들도 자기 아들과 똑같이 훈계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말은 아주 짧게, 의미심장하고 아름답게 하도록 교육받았다. 고학년이 되면 영예는 용기에서 생기고, 용기의 보상은 행복이란 점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교육기간 중 잘못을 했을 경우의 벌은 채찍질과 굶기기였다. 이런 엄격한 분위기에서도 특이하게 용서받는 두 가지가 있었다. 음식물 훔치기 행위와 동성애였다. 훔치기를 용인한 것은 극한 상황에 대비한 생존 훈련이었다. 동성애는 '동성이라도 바람직한 인품에 반해 사귀면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음식물을 훔치다가 붙잡히면 수법이 서툴다고 벌을 받았다. 아고게를 졸업하고 나서도 30세까지는 중앙기숙사 생활, 다시 60세까지는 공동식사제도 등을 통해 국가의 통합을 유지했다. 서기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무찌른 저력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스파르타의 교육의 문제점은 강압적 이였고, 인간적인 면이 전혀 없었으며, 인성교육부분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강인한 군사만을 목표로 하여, 아동을 교육하였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특징을 가지고 받쳐야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스파르타인은 전형적인 고대 시민이었고, 실제로 고전 고대의 국가 가운데서 의무 교육을 시행한 곳은 이 스파르타뿐이었다. 스파르타 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관장했던 공교육으로서, 교육의 단 한 가지 궁극적 목적은 덕을 겸비한 '용감한 전사'를 배출해 내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기하고 국외적으로는 국위를 선양한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민 수가 훨씬 적었으므로 국가 존속의 문제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스파르타 시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국가의 철저한 감독 하에 특히 14세부터 20세까지는 장차 완전 중무장 보병이 되기 위한 엄격한 교육과 군사훈련을 받았다. 스파르타에서 중장보병은 귀족의 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스파르타는 BC 7세기에 이미 특히 뛰어난 중장보병 국가로 발전하였다.ⅱ. 스파르타 여성의 역할과 특징스파르타에의 교육의 목적을 살펴본 결과 강력한 군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파르타의 여성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르타 여성의 주된 역할은 다음 세대의 전사가 될 남자 아이들을 낳는 일이었다. 스파르타 소녀들은 옷을 만드는 등의 궂은일은 모두 노예에게 맡기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충분히 섭취한 후 남자들처럼 나체로 달리기, 씨름, 막대 던지기, 창 던지기 등의 체육을 하여 신체를 단련하였다. 나중에 그녀들이 임신하게 되면 태아는, 강건하고 활발한 신체에서 영향을 취하고 태어나게 되며, 또한 생식률도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소녀들은 설사 나체를 드러내더라도 조금도 수치스러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경기는 유희와 놀이로 충만해 있으며, 젊은이들의 방자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스파르타 처녀들의 의상은 그리스 세계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류의 것이었다. 아테네 등의 다른 나라에서 처녀들은 보통 발밑까지 내려오는 긴 치미를 입었는데 반해 있는 구덩이 처럼 생긴 아포테타이(Apothetai)라 불리는 곳에 내다버리게 했다. 그러나 만일 아기가 기형이거나 신체가 허약하다고 생각되면 스파르타의 아버지들도 그리스의 다른 지역처럼 원로원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그 아이를 내다버렸다. 자가검사는 갓난아기를 포도주 속에 넣어 그 체질을 검사 하는 것이었다. 간질병이나 다른 병이 있는 아기는 포도주 속에 넣으면 놀라고 졸아드는데 반해 건강한 아이는 오히려 더 튼튼해진다는 이치에서였다. 신생아의 검사에서 통과되면, 아이들은 7세가 될 때까지 집에서 부모나 유모가 양육하였다.부모 밑에서 자란 소년은 7세가 되면 집을 떠나 아고게(agoge)에 들어가 공교육 제도하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의 후계자들은 아고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애초부터 장차 왕이 될 사람과 일반 시민이 될 사람을 격리시켜 후일 왕의 위엄을 지키려 한 데에 연유하였다. 아고게의 교육기간은 7세부터 20세까지의 14년간이다. 그들은 14세부터 군사훈련에 들어갔으며 특히 19-20세에는 실전을 방불케하는 훈련을 받았다. 군사훈련이 시작되는 14세에서 20세까지의 소년들은 총칭하여 에페베(ephebe)로 불렸다. 아고게의 교사는 단 한명인데, 그를 파이도노모스(paidonomos)라 불렀다. 그는 고위관직을 차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전국적으로 가장 현명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해서 선발되었다. 파이도노모스는 아고게에 입교한 소년들의 교육을 책임진 훈육관으로서 학생들을 통솔하고 상벌을 내릴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고게의 소년들에 대해서는 절도가 용인되었는데 그 이유는 소년들이 훗날 전투 중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훈련의 일환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성인 남자와의 동성애도 허용되었는데, 스파르타에서는 성인 남자와 소년 간에 다만 도덕적 관계를 중시하는 동성애가 교육적 견지에서 좋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아고게에서 교육과 훈련을 마친 청년들은 30세가 될향으로 선택형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개인차를 고려한 수준별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교육제도의 폐쇄성과 비효율성이다. 이것은 학교계열의 다양성이 부족함을 말하고, 공립과 사립, 문과와 이과,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자율학교 등 다양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평가는 매우 획일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학교운영과 경영에 있어서 자율성과 책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로 행정지원체제의 부족으로 교육투자의 영세성과 획일적 통제와 지시, 명령을 통한 관료주의적 행정, 즉 상하교류의 경직성을 들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학생의 소외와 부적응 문제인데, 학교폭력과 청소년 비행문제, 교실과 학교 내의 입시위주문제(성적)로 인한 것이다. 여섯 번째는 교사의 지위와 교권의 약화이다. 교사의 지위가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약해졌고,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중한 업무부담도 문제이다. 일곱 번째는 교육시설과 환경의 낙후로, 35명으로 감축되었으나 여전히 과대학교, 과밀학급의 문제가 있고, 급식 등 복지시설과 위생시설의 문제, 그리고 도서와 교수매체, 실습실 등 장비부족의 문제도 크다.현대의 교육에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중심으로 봐야 할 것은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이다.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는 과열(과다)경쟁을 유발하여 사회문제화 되고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2003년에는 대학정원이 수험생의 수보다 많아지면서 대입정원 역전의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열경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입시제도에 있다. 입시제도는 학생선발과 학교운영방식(교육내용, 방법), 사회의 발전,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준다. 학부모들은 입시를 상류계층 이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기고, 교사는 교수 결과의 평가로 생각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학력과 학벌 위주의 인식이 문제이다. 입시제도의 본질적 기능은 선발기능으로 학교는 학생을 선발하고 학생은 학교를 선택하며 국가는 필요인력을 선발하고 배치하는 것이다. 교육적 기능으로는 하급학교 교육의 운영과 내용, 방법에 영향을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고, 현대에 와서는 일류대학으로 가기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즉, 스파르타와 현대의 교육에서의 교육목적은 교육을 수단으로 여겼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교육 목적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스파르타에서 교육의 목적이 국가의 존립을 위한 국가 차원의 것이었다면, 현대에 와서는 개인의 발전을 위한 개인적 차원이라는 것이다.다음으로 스파르타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특징을 현대와 비교해 보겠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의 의무는 강인한 아이를 낳는 것이었고, 그에 부합하는 교육을 받았고, 그에 따른 생활을 영위해 나갔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여성을 강인한 아이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여긴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반에 우리나라의 현대 여성들의 교육을 생각해보면, 스파르타와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갑오개혁 이 후, 내외법이 폐지되면서 교육 기회가 부여된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오늘날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교육 기회가 부여되고, 교육을 통해 사회의 여러 분야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스파르타의 여성들의 지위와 교육방법, 목적에 있어서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마지막으로 교육내용과 과정의 비교이다. 스파르타의 교육내용을 보면 군사훈련에 필요한 것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고, 미적, 조화적 발전은 고려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연장자는 아동의 재치 있는 대답과 임기응변의 담화능력 시험하였고, 읽기, 쓰기는 최소의 필요에 의해서만 실시하였다. 또한 합창무도나 종교의식 통해 음악을 가르쳤고, 청년훈련의 경우 경쟁, 높이뛰기, 투원반, 투창, 권투, 합창무도와 결합한 군사훈련, 특히 씨름을 교육 내용으로 하였다.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아기를 레스케라 불리는 곳으로 데려가서 신생아 검사를 받았다. 신생아 검사에서 통과하면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부모 밑에서 자란 소년은 7세가 되면 집을 떠나 아고게에 들어가 공교육 제도하에서 집단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14세부터 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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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6 | 9페이지 | 1,500원 | 조회(565)
  •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설명과 비판
    1. 서론한일 양국의 관계사 비교해 보면 두 나라는 너무도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일본의 역사 왜곡이 너무도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역사가들의 최대 쟁점이라고 하면 아마도 임나일본부설이 될 것이다. 일본사학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화하여 국사교과서에 상세하게 기술해 놓고 있는 반면 한국사학에서는 임나일본부설 자체를 부인하고 국사교과서에는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2. 임나일본부설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태고부터 외세의 간섭과 영향을 받아 타율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면서 임나일본부설을 제기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 근대화의 기점인 메이지유신 초기 분출되었던 정한론(조선을 정복하자는 논의)과 그 맥락을 같이하여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임나일본부설에서 말하는 임나일본부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4세기경에서부터 7세기 중반에 걸쳐서 대화지방에 존재했던 야마토정권(대화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 것을 목표로 어느 시기에 임나 지역에 설치했던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의 기구만을 의미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야마토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구라는 의미로서 이 경우에는 야마토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측의 주장은 바로 후자를 지칭하고 있으며 '남선경영론'이라고도 한다.임나일본부설은 1720년에 완성된 《대일본사》에서 그 최초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서기》의 임나 관련기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신공황후 때 삼한과 가라(加羅)를 평정하여 임나에 일본부를 두고 삼한 또는 한국을 통제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에도시대의 모토오리 노리나가와 같은 국학자들의 '조선경영설'을 거쳐, 근대 일본이 천황주권국가를 표방하던 20세기 초에 스가 마사토모, 쯔다 소우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등에 의하여 확립되고, 1943년도 검정필 신일본사(삼성당)의 '조선반도 진출'이란 항목에는AD 3세기경 조선반도 남부에는 그 무렵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韓)민족이 소국가군(小國家群)을 만들어 마한, 진한, 변한의 세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일본의 통일을 전후하여 4세기 전반 경에는 마한과 진한이 각기 백제와 신라라는 두 개의 한 민족 국가로 통일되었다. 4세기에 들어오자 야마토정권의 세력은 조선반도에 진출하여 아직 소국가군 상태에 있었던 변한을 영토로 삼고, 이곳에 임나(미마나)일본부를 설치하였으며, 391년에는 또다시 군대를 보내 백제, 신라도 복속시켰다. 조선반도 남부에 지배력을 구축한 야마토정권은 조선반도의 부와 문화를 흡수하여 그 군사력과 경제력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국내 통일이 크게 촉진되었다. 조선반도 북부에서 만주에 걸쳐 일찍이 퉁구스족이 세운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어 낙랑군을 병합하여 세력이 강했다. 391년 일본의 조선 출병(出兵)은 지금도 중국 동북부에 남아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호태왕)비에 씌어져 있다. 이 비에 따르면 일본군은 조선반도 중부까지 북상하여 신라를 구하기 위해 남진한 광개토왕 군대와 싸우고 있다. 이 '지배와 출병'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사료가 바로 한국인 선조가 직접 쓴 금석문, 광개토태왕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3.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자료1)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조 49년 등의 기사.2)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신묘년 기사.3) 칠지도 명문.4) 송서(宋書) 왜국전에 나오는 왜왕의 작호 기사.임나일본부설(쓰에마츠의 남선경영론)은 1960년대까지 고대한일관계사의 통설적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었으나, 위 4가지 근거 자료의 신빙성 및 해석에 대한 의문점 제기가 활발히 진행되자 그 생명력을 잃었다.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에 대해서 일본 학자 자신들도 많이 인정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교과서가 있고, 모든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는 '고대 한국지배에 대한 임나일본부설'이 굳어져 있어 '한반도는 아주 먼 옛날부터 일본이 지배해 온 나라'로 인식되 우라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4. 임나일본부설 비판1) 일본사기, 신공황후의 신빙성 문제일본서기의 사료로서의 약점은 우선 편찬목적이 순수 역사서가 아니라 일본왕가를 미화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조작이 가해졌다고 보이며 일본 학계에서도 5C이전의 기록에 대해서는 사료로서의 자격이 부적합함을 인정하고 있다.첫 번째 문제로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의 평정을 완료하였다고 하는 4세기 중반 당시엔 해외지역을 평정할 만큼의 강력한 군주가 일본서기를 제외한 사서에는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한 나라가 자기 나라 외에 다른 영토에 식민지를 두었다면 자랑스러운 역사일 텐데 일본사기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는 사실에 의문이 간다.두 번째 문제는 신공황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신공황후는 일본학계에서 실질적으로 최초의 '왜' 지배자로 인정받는 응신천황의 어머니이다. 이 신공황후의 실존자체가 의심 받는 이유는 어머니와 아들인 신공황후와 응신천황의 시간 공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신공황후의 재위기간도 비정상적으로 길다. 뿐만 아니라 응신천황을 최소 100살은 넘어 낳았다는 비상식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신공황후의 존재 시기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로 신공황후조 52년에 등장하는 '칠지도'는 그 명문에 나타난 '태화 4년'이라는 연호가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현재의 주장으로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3세기의 위(魏)의 연호이고, 또 하나는 4세기의 동진(東晋)의 연호이며, 마지막으로 재야사학계에서 주장하는 백제의 연호이다. 현재 일본 측에서는 '태화 4년'을 동진의 연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신공황후의 4세기 임나정벌을 뒷받침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세기의 동진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근초고왕의 백제가 그 연호를 빌려와서 칠지도에 새겨줄 만큼 강력한 국가가 아니었다. 백제가 연호를 사용했음을 증명할 길이 없으니 접어두기로 하면 가장 신빙성 있는 주장은 3세기의 위의 연호로 볼 수도 있다.세 번째 , 고고학적으로는 한반도와 거의 백년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5세기 이후에는 그 변화가 뚜렷하여 일본열도 내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할 뿐이다. 또한 일본 최초의 중앙집권정부인 야마토정권은 6세기에 들어서야 등장하며, 내란도 정립되지 못한 나라가 해외 원정을 계획하여 성공한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712년 편찬된 고사기는 원래 고대의 신화, 영웅전설, 민간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정한기사(征韓記事)를 보면 그 신빙성을 쉽게 알 수 있다."황후(신공)는 신이 지시한 대로 서정(西征)을 시작하였다. 바다로 건널 때 물 속의 크고 작은 고기들이 전부 모여 배를 떠밀고 항해하였다. 도중에 순풍이 크게 일어 배는 풍랑을 타고 전진하였는데 배가 일으킨 파도가 신라국의 국토를 절반이나 물에 잠기게 하였다"이런 황당한 신화전설을 바탕으로 하는 임나일본부설은 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일본 학자들도 고사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2) ‘왜 = 일본’이 아니다.광개토태왕비에 임나가야가 나오고 왜가 등장한다는 것이 사카와가 그려 온 탁본에 나타났는데 이것이 위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여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살려 줌과 동시에 한국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광개토태왕 당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었는데 어떻게 '일본부'를 세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이란 국호는 광개토태왕 시대보다 거의 300여 년이나 뒤인 7세기 후반에 가서야 쓰게 되었다. 여기에 대한 일본의 답은 왜=일본, 즉 광개토태왕비에 나온 왜는 바로 일본의 선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4세기 말 일본열도에서는 아직 통일된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다. 또 광개토태왕비에 나타난 왜는 해적처럼 한반도 남부를 침범한 세력이지 신라와 백제를 신하국가로 삼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3) 쟁점이 되는 광개토태왕비의 두 부분과 그 해석왜(倭)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백제)과 신라를 쳐부숴 신민(臣民)으로 삼았다.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渡海, 破百殘??新羅 以爲臣民나)영락 10년 (경자년, 400) 기사10년 경자년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서 신라를 구원하였다. 남거성을 지나 신라성에 다다랐을 때 왜병(倭兵)이 그 안에 가득하였으나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이 물러났다. ......(이하 원문 8자 훼손)...... 되돌아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까지 이르러 계속하여 성을 함락하니 성이 곧 함락하였다. 안라인(安羅人) 주둔군이 ...... 신라성 ...... ?성 ...... 왜(倭)가 가득하였다. 왜(倭)는 성을 무너뜨렸다.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來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拔 新羅城?城 倭滿倭潰城大......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두 가지 기사를 근거로 하여 첫째, 일본이 신라와 백제를 신민으로 삼았고 둘째, 임나에 일본 주둔군이 상주하는 일본부(日本府)가 있었다는 정설을 정립하여 한국을 침략하기 위한 정한론(征韓論)의 대의명분으로 삼았습니다.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군대조직과 관학에 의해 만들어진 이와 같은 역사 왜곡은 일찍이 구한말 우리나라의 선각자들에 의해 그 부당성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광무 9년(1905년) 황성신문에서는 5회에 걸쳐 일본의 광개토태왕비 해석을 해설하며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4년 후인 융희 3년(1909년)에도 서북학회월보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 35년간 우리역사를 말살하고 왜곡시킨 상황에서 연구가 진전될 수도 없었고 연구했다고 해도 발표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연구 성과는 일제 강점기 때 연구한 것을 해방 뒤 1955년에 발표한 정인보의 논문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인보의 업적에 이어 1963년 현지 조사를 실시한 북한의 박시형과 김석형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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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10.24 | 5페이지 | 1,000원 | 조회(578)
  • 그리스 신화를 통해 본 그리스 문화의 특징
    목 차인간중심생명의 중요시가부장제도운명론지혜의 중요시정치성질서? 인간중심그리스 신화를 보면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신화이지만 그 속에서 신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도 등장한다. 신들 역시 전지전능하고 완전한 모습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인간적인 (최소한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모습들을 보여준다.?올림포스 신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다. 늙지도 않는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먹고 마실 것에 대한 걱정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림포스 신들 역시 인간처럼 괴로워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불안에 떨고 기쁜 일에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다. 각자 자신의 직분에 벗어나는 일은 할 수 없다. 제우스마저도 자신이 정한 인간의 운명을 어쩔 수 없다?신들의 이런 인간적인 감정의 모습들은 데메테르 여신이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를 잃은 슬픔의 부분이나 아폴론이 다프네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슬퍼하며 월계관을 쓰고 다니는 모습 등에서 잘 볼 수 있다.신화 속 신들이 단순히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인간적인 모습을 띠는 것 이외에도 신들은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인간이 없는 올림포스 신들은 생각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제우스가 신들의 제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도 인간 헤라클레스의 참전 덕분인 것을 보아도 그리스 문화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 단순히 신의 꼭두각시 노릇만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는 올림포스 신들은 그렇지 않은 절대자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스 정신의 기본은 항상 인간 중심의 인도주의였다.?그리스 신화의 세계, p.358그리스 신화의 세계, p.40? 생명의 중요시신화 속에서는 신들도 생명을 쉽게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신의 명을 어기거나 신에게 도전한 자들에 대해중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부장제도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그리스의 가부장적 제도를 엿 볼 수도 있다. 그리스가 일찍부터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였지만 선거권이나 기타 정치 참여권이 남자들에게만 한정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사실 신화 속에서 여신들의 활약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아테나와 같이 화려한 전적을 세우는 여신도 있지만 대부분의 여신이나 여자들은 사랑 이야기에 국한 되어 등장한다. 아테나와 헤파이스토스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는데 제우스로부터 태어난 아테나는 완전한 모습의 여신이나 헤라로부터 태어난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의 장애를 가진 모습으로 태어난다. 즉 남성의 도움 없이 여자 혼자서는 불완전 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우스의 엄청난 바람기에도 절대 제우스에게는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그 대상 여자들과 자식들에게만 복수하는 헤라의 모습에서도 가부장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남편의 난봉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약하고 힘없는 첩만을 모질게 다루는 헤라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사회의 가치관을 가진 여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낮에는 바람을 피우는 남편 제우스에게 강짜를 부리지만 밤이면 제우스와 함께 다정하게 침실에 든다. 고대에 생명력을 상징하던 대지의 여신 헤라가 올림포스 시대에는 극단적인 가부장제도의 수호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틈에 헤라는 힘 있는 남편의 행위는 모두 정당하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 연약한 여자들만 죄가 있다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이중 가치관을 신봉하는 여신으로 변신하였다. 헤라는 끝에 가서는 다른 여인에게서 얻은 제우스의 자식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그렇게 미워하던 헤라클레스와도 결국 화해하고 자신의 딸 헤베를 아내로 주기까지 한다. 이런 점에서도 헤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도의 정실부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가장의 권한이 절대적이던 시절에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정실부인의 위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헤라의 질투를 우리의 운명은 신에 의해 정해졌고 그 정해진 운명의 순리대로 살아가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아마도 그리스 인들의 운명관을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이럴 것이다. 아크리시오스에게 내려진 외손자 손에 죽게 될 것이라는 신탁이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 등 이들에게 내려진 신탁은 이들이 그토록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침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루어지게 된다. 신화 속에서 흔히 영웅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 역시 그들에게 내려진 신탁이 있었다. 그러나 앞서의 인간들과의 다른 모습은 영웅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에 있다. 자신이 전사할 것을 알고도 트로이 전쟁에 참전해 트로이성의 함락을 목전에 두고 영웅으로서 전사하는 아킬레우스나 헤라클레스의 화살로서 트로이 성을 함락할 수 있다는 신탁이 있음에도 마지막 까지 지략을 짜내고 승리를 위해 노력했던 오디세우스 등의 자신의 운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리스인들의 운명론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지혜의 중요시그리스 신화에서는 지혜를 상당히 중요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힘이 센 자가 권력을 쥐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같이 겸비한 자라야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제우스가 지혜로서 크로노스로부터 권좌를 빼앗는 모습이나 같은 전쟁의 신이면서도 지혜를 겸비한 아테나에게는 절대 당하지 못하는 아레스의 모습을 볼 때에도 알 수 있다. 또한 신화속의 모든 영웅들은 단순히 힘이 세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 아니라 거기에 지혜까지 겸비해야만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그러기에 신화 속 모든 영웅들의 수호신은 아테나 여신인 것이다.?크로노스와 제우스 사이의 왕위 쟁탈전은 이미 우주의 생성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 자연의 무지막지한 힘과 이성적이고 보다 많은 지혜와 기술을 가진 자와의 싸움이다. 돌멩이를 갓 난 제우스로 알고 삼키는 장면에서 우리는 힘만 세고 우둔한 크로노스의 모습을 볼에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던 스파르타가 결국은 멸망하고 학문과 지혜를 중시했던 그리스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을 볼 때에 확실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아테나는 맹목적이고 무지한 폭력에 의지하여 천방지축으로 싸워 대는 아레스와 확연히 구분된다. 아테나는 아레스와 두 번의 대결에서 모두 이긴다. 아레스가 자신의 아들 퀴크노스를 죽인 헤라클레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덤볐을 때, 아테나는 헤라클레스에게 아레스의 방비에 빈틈이 있는 곳을 일러주어 찌르게 한다. 상처를 입은 아레스는 엉엉 울며 제우스에게 쫓아가 아테나에 대한 불평을 하지만 제우스는 힘만 믿고 싸움을 일삼는 아레스에게 핀잔만 준다. 아테나는 트로이 전쟁에서 아레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입힌다. 지하의 신 하데스한테서 빌린 황금 투구를 쓰고 자신의 모습을 아무도 볼 수 없게 한 아테나는 디오메데스 뒤에 숨어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덤벼드는 아레스의 아랫배를 찌른다. 살육하는 재미에 기세가 등등하던 아레스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이번에도 올림포스로 도망친다. 정확한 정보와 치밀한 적전에 의해 최소한의 피해로 상대방을 고통 없이 제압하는 아테나의 전쟁 기술은 힘만 믿고 맹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레스의 호전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도 효과적인 전쟁 기술과 전술 개념을 개발 했다는 점에서 아테나에게 장군학을 최초로 세운 공을 돌려야 한다??아레스는 아테나와 달리 목적도 이유도 없는 싸움을 즐기는 신이다. 그에게는 전술이나 책략과 같은 세련된 전투 기술이 없다. 무작정 폭력을 휘두르며 피를 보는 난폭한 악당이다. 합리적인 사고와 인도주의를 신봉하는 그리스 정신은 이런 아레스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아레스는 부모의 위세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부잣집 아들이 갖는 온갖 약점을 다 가지고 있다. 생각이 깊지 못하고 쉽게 감정에 휩싸이며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을 배우지 못해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한다. 호메로스심지어 부모에게 까지) 그리스의 지혜와 기술 중시 문화에서 볼 수 있다.그리스 신화의 세계, p.33 ~ 34그리스 신화의 세계, p.204 ~ 205그리스 신화의 세계, p.272 ~ 273? 정치성신화 속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정치는 아주 탁월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일찍부터 민주정치가 발달하게 된 그리스의 모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기간테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간 헤라클레스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나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메티스를 스스로 삼키고 테티스를 깨끗이 포기하는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제우스에게는 다른 신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기민함이 있다.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 정보를 적당히 다룰 줄 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의 자존심도 버리고 하찮은 존재인 인간의 힘을 빌릴 지혜와 현실적 감각이 잇다.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알아 사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정확하게 준비하는 제우스의 지혜는 다른 신들을 압도한다. 그가 인간들 뿐 아니라 신들의 지배자인 것은 이런 탁월한 정치 감각과 술책을 가진 덕분이다. 이러한 정치적 감각과 술책은 힘에 있어서 제우스보다 더 강한 티탄이나 기간테스, 튀폰에게 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미덕이다. 올림포스 신인 포세이돈 역시 물리적 힘에 있어서는 제우스와 맞먹지만 술책과 정치적 균형 감각에 있어서는 훨씬 못 미친다. 제우스는 또한 조직에 있어서도 달인이다. 그는 아폴론과 아테나를 자신의 좌우에 배치하고 헤르메스와 무지개 신 이리스를 전령으로 부리며 전 세계를 빈틈없이 다스린다. 그래서 신들은 제우스를 존경하고 두려워한다..... 지하의 신 하데스가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했을 때, 이를 제우스가 방관한 것도 세계를 다스릴 때 하데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포네는 제우스 자신의 딸이기도 하다. 패권을 위해서 딸의 행복쯤은 희생되어도 상관없었다. 제우스는 그런 정략가 이다. 제우스는 자신이 그토록 소유하기 바랐던 테티스가 아버지 보다 더 위대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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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09.01 | 8페이지 | 1,000원 | 조회(905)
  • [일본사회]일본의 니트-프리터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니트-프리터 문제에 대하여- 목차 -1. 개관2. 용어 정의 및 현황1) 니트와 프리터란 무엇인가2) 최근 일본의 현황에 대하여3. 발생 원인1) 경제적 및 사회적 원인2) 유형별 분류4. 문제점에 대하여1) 경제적 영향2) 사회적 영향5. 대책과 전망1) 대응 방안2) 한국의 상황과의 비교1. 개관실업자 문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고민거리가 되어왔다. 버블 붕괴 후 긴 불황을 겪어온 현재 일본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며, 그 중심에는 니트 및 프리터라고 불리는 계층이 자리잡고 있다. 니트-프리터 문제는 기존의 실업문제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에 새로운 방식의 이해와 접근이 요구되고 있으며, 유사한 문제 발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준비해야 할 대책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선 제반 현상을 해설하기로 하고, 유효할 것이라 예상되는 대응책을 제시함과 동시에 한국의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도록 하겠다.2. 용어 정의 및 현황1) 니트와 프리터란 무엇인가* 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영국의 블레어 정권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의무교육 종료 후 진학도 취업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들을 지칭한 말에서 유래했다.* 프리터 (フリーター)일본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어원은 Free와 Arbeiter를 합친 것. 주로 직장에 메이지 않은 채 자기가 편한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주로 20~30대가 기준이다. 80년대 말 아르바이트 정보지로 창간된 ‘프럼에이’ 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기준으로는 ‘학생과 주부를 제외한 15~34세 인구 중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거나 취업 의사를 가진 무직자’ 로 규정되고 있다.2) 현황* 니트족2002년 현재 일본의 니트족 - 약 84만7000명으로 조사 (2005년 5월 22일 일본 내각부)비구직형 - 1992년 25만 7천 명에서 65.8%(16만 9천 명) 증가한 42만 6천 명비희망형 - 1992년 41만 2천 명에서 2.2%(9천 명) 증가한 42만 1천NEET족 총수 - 26.8%(17만 9천 명) 증가한 84만 7천 명2015년에는 109만 3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터2004년 현재 일본의 프리타족 - 450만 명으로 추산일본 불황 초기인 1991년 당시 183만 명, 2001년 417만 명(이는 일본 젊은이 5명중 1명꼴에 해당된다)15∼34세의 인구 중 프리타의 비율도 10년 전 10.4%에서 2001년에는 21.2%로 상승2010년에는 476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3. 발생 원인1) 경제적 및 사회적 원인*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경기 악화, 기업의 고용구조 변화, 부적절한 학교교육, 현실과 괴리된 청년층의 취업에 대한 인식, 3D업종 기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니트와 프리터의 확산 과정은 아래와 같다.- NEET족1990년대 경제상황이 나빴던 영국 등 유럽에서 처음 등장 일본으로 빠르게 확산. 고용환경이 악화되어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실업자가 늘어나면서 니트족도 증가했다.- 프리타족일본의 경우 2000년 이후에는 임시방편으로 프리타가 됐지만 장기 불황에 따라 직업을 못 구하자 아예 프리타로 전업 해 버린 경우. 청년실업이 영구실업으로 이어지게 된다.2) 유형별 분류① 니트의 유형- 비행(非行)형: 반사회적이며 향락적. 지금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타입.- 히키코모리형: 사화와의 관계를 쌓지 못하고 틀어박히는 타입.- 자기실현추구 형: 취직을 앞두고 너무 골똘히 생각에 빠진 나머지 멈춰버린 타입. 대졸- 자신상실형: 한번 취직한 후 곧바로 퇴사하게 되어 자신감을 잃고 주저하고 있는 타입.② 프리터의 유형- 예능 계열로 진출하거나 전문기술을 갈고 닦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경우, 또는 사법시험 등을 준비하는 경우에 학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시적인 프리터 생활.- 정규채용지향형. 정규사원으로 채용될 것을 목표로 하여 해당직종에 프리터로 종사.- 도피성 연장형4. 문제점에 대하여1) 경제적 영향비취업인구의 증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측면에서 프리타의 경우에는 프리타 1명당 연간 소비액은 103만9천엔으로 정규사원의 282만9천엔을 크게 밑도는데 상대적으로 벌이가 적고 돈을 적게 쓰는 프리타의 급증으로 오는 2010년의 소비 감소액은 8조8천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하락폭도 심화될 것으로 분석되며 나고야 상공회의소 관계자에 따르면 “프리타는 실업문제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활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한다.니트족 또한 소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NEET족의 증가는 이른바 빈곤형 기생독신자(Parasite Single)를 증가시켜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떨어뜨리고 국내총생산도 감소시키는 등 경제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2) 사회적 영향과거 일본은 중산층의 기반이 탄탄한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과거 1억명의 중산층을 자랑하던 일본은 이제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 국가 중 소득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다.OECD에서 행해진 조사에 따르자면 일본 내에서 소득이 전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인구의 15.3%에 이르는데, 이는 OECD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며 덴마크나 스웨덴 등의 국가의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5. 대책과 전망1) 대응 방안① 교육 시스템에서의 대책* 대책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과정장래의 니트-프리터 후보군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 과정에서의 대책이 절실하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참여를 유도하기 용이하며, 졸업 전후의 짧은 시기에 집중된 취업 활동을 보다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업과 직업의 연계 및 흥미와 동기 부여취업 문제에 대하여 보다 실제적으로 접하게 하면서 흥미를 유발시키고, 조기에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 학습의욕 고취로도 연결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해외 사례 - 영국의 교육과정 평가원 (QCA) - 2004년 9월 학기부터 14세 이상 중등학교 고학년생을 대상으로 ‘직업 연계 교육’을 실시② 사회 시스템에서의 대책* 현재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니트 문제가 현재진행형인 국가에 있어서는, 당장 학교를 졸업한 상태로 실업상태에 있는 젊은이들을 구제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부분에 해당한다.* 참여와 자립의 단계를 나아가기- 참여: 1차적으로 대상자들이 의욕을 갖고 취업 활동에 필요한 능력을 배양하도록 하는 과정. 니트를 발견하고 참여의 장으로 유도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자립: 참여 단계에 안주하지 않고 실질적인 취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적극적이고 실무적인 지원이 필요.③ 가정 내에서의 대책과보호를 지양하고 자립심을 길러주는 교육 태도가 필요하다. 동시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대화 소통을 활발하게 해야 한다.④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청년층이 최종적으로 자립하는 단계에 있어서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체이다. 이는 일본의 지방형 니트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2) 한국의 상황① 현상과 전망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니트족의 수는 18만 7천여명으로 0.39%에 해당하며, 10년 뒤에는 1.71%인 85만3900여명으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② 유사점과 차이점- 유사점: 일본의 경제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만큼, 한국의 니트-프리터 문제의 현황은 다른 나라보다 일본을 많이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악화, 기업의 고용구조 변화, 부적절한 학교 교육, 현실과 괴리된 청년층의 취업에 대한 인식, 3D업종 기피 등이 원인이라는 점 또한 공통적인 면을 보여준다.- 차이점: 문화적 특성 때문인지 히키코모리형과 같은 형태의 니트는 비교적 소수를 점하고 있다. 또한 일용직 급여의 차이로 인하여 프리터의 유형 또한 일본과 차이가 난다.③ 앞으로의 대책현재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책의 시행 착오 과정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나, 사회문화적 환경의 특수성을 이해한 능동적인 수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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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09.05 | 6페이지 | 1,000원 | 조회(934)
  • [일본문화]일본인의음주문화
    일본인의음주문화*목차-Intro-즐겨찾는 술집-즐겨먹는 술-즐겨먹는 안주-해장법-술자리 예절-Conclusion.Intro.......일본인도 한국인처럼 술을 좋아하고 자주 연회를 벌인다. 이런 일본의 음주문화를 알려면 4월 초순의 동경 밤거리를 걸어보면 안다고 한다.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남자, 여자, 노인, 젊은이 할 것 없이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또한 술값은 기본적으로 참석한 사람의 수대로 나누어서 계산한다.*술 마시는 이유기 타조금 호화로운기분을 맛보기위해친교를위해취해서 즐거운기분이 되기위해술맛을즐기기위해식욕을 증진시켜식사를 맛있게하기 위해도 쿄4.6%2.9%34.8%15.7%18.1%23.9%뉴 욕1.0%4.0%22.4%8.2%30.2%34.2%*술 마시는 스타일-샐러리 맨 :술자리에서 마시는 것을 즐기는 타입. 상사를 받들고 부하가 편안해지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며 술의 선택을 통해 즐겁게 마시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술이나 술자리 등에 대한 자신 나름대로의 강한 취향도 나타낸다.?주부들 :주부의 음주 스타일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음주기회의 넓은 폭과 그 목적의 다양함이다. 남성의 경우, 회사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안에서 마시는 것 자체가 목적화 되어 있는 것에 반하여, 그녀들은 술을 마시는 방법, 그것이 인생의 윤택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대학생 :대학생이 술을 마시러 가는 상대로서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써클의 동료이고 음주패턴에 있어서도 소단위 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들에게 있어서 술은 커뮤니케이션과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이다. 일본 여대생의 경우에도 남학생들의 음주행동과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거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음주문화에 접하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다..(참고문헌 : '음주문화에 대한 고찰' - )DETAIL.......1.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술집은?-이자카야: 일본 사람들에게 대폿집과 같은 곳이 있는데 바로 '이자카야' 이다. 우리나라에는 '로바다야키'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것이 들어왔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로바다야키보다는 이자카야라 고들 한다. 이자카야는 아주 대중적인, 우리의 호프집과 민속주점 혹은 소주방을 섞어 놓은 듯한 곳이다 이자카야에는 병맥주, 생맥주, 청주, 소주, 화인 등 술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안주 또한 수십 종에 달해서 일본 사람들 특히 직장인들은 보통 이곳에서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갖곤 한다. 그러니 이자카야에 가면 웬만한 일본 음식은 거의 다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서민적인 공간이니만큼 가격도 저렴해서 더욱 좋다. 일본어 못한다고 걱정할 것도 없다. 메뉴에 실물 사진이 친절하게 나붙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니 맘에 드는 것을 손가락으로 짚기만 해도 되고, 아니면 옆 테이블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가리켜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자야카는 사무실 밀집 지역이나 대학가 주변, 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전철역 근처에는 몇 집 건너 한 집 정도는 있다. 하지만, '천구'나 '무라사키'와 같은 이름으로 전국을 커버하는 체인점을 찾는 게 낯선 외국인들에게는 수월할 것이다.-로바다야끼퍼브 : 해산물과 손님이 보는 앞에서 요리해주며 때로는 긴 삽처럼 생긴 숟가락으로 요리를 손님접시에 얹어주는 것이 흥미롭다.-아카쵸오칭 바 : 입구에 달린 붉은 초롱불의 이름을 딴 술집으로 갖가지 주류 및 일품요리를 제공하고 있다.?야카토리야 : 닭고기나 기타 야채 등을 재료로 한 꼬치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 술집이다.-스나구 : 스나구에서 파는 술은 거의 일제 위스키이거나 외제 위스키이다.위스키를 한 병 사면 술병에다가 스티커로 손님 이름을 써서 붙여놓거나 이름 목걸이를 달아놓는다. 스나구에서 위스키 한 병을 사놓고 대여섯 번에 걸쳐서 그 바에 찾아와서 곶감 빼먹듯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마신다. 일 년 만에 그 스나구에 찾아가더라도 바의 여자들은 귀신같이 그 손님의 술병을 찾아내어 준다고 한다. 스나구의 안주는 쵸코볼이나 아이들이 먹는 과자 따위이다. 가끔씩 간단한 밑반찬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 김치를 안주로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2.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술은?- 청주 (사케) : 사케의 사전적인 의미는 ‘술’이지만 일반적으로 청주를 뜻하는데,일본인들은 청주를 니혼슈라 부른다. 일본에는 수백 종류의 사케가 있다. 교토에서 생산되는 청주의 숫자만도 수십 가지가 넘는데, 그중 ‘월계관’이나 ‘백만불’은 일본 시장에서도 유명한 청주들이다. 그러나 역시 일본에서 제일로 치는 청주는 물이 좋은 니이가타나 아키타 산의 사케다. 한국에서는 청주를 정종이라고 하는데, 이는 실은 일본에서 파는 사케의 한 종류이다. 정종이라는 하나의 상표인데, 일제시대 우리나라에서 마사무네라는 일본 사케가 잘 팔리다보니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술하면 사케니 청주니 하는 것 보다 정종으로 통한다. 일본에서도 ‘마사무네’라면 통하기도 한다.-소주 : 소주도 사츠마의 소주, 어디의 무슨 소주하는 식으로 각 지방의 소주가 있다. 일본인들은 소주도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맥주 : 맥주는 일본의 가장 일반적인 주류로 술통꼭지에서 바로 꺼낸 생맥주나 병맥주로 제공된다. 병맥주는 대, 중, 소로 각각 330ml, 500ml, 633ml의 규격으로 생산된다. 대부분의 술집에서는 소 혹은 중 규격품이 공급된다. 생맥주는 맥주 집에서 조끼에 놓아 갖다 주며, 여름철에는 옥외나 백화점 옥상에 맥주시음장이 마련되어 맥주애호가들로 북적인다. 맥주의 가격은 술집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다. 보통 소, 대 사이즈가 400엔에서 900엔 정도이다. 호스티스클럽의 맥주가격은 이와는 달라 엄청나게 비싼 경우도 있다.-아즈깡 : 전통 일본 곡주를 따뜻하게 데운 것으로서 우리나라에 있는 일식집에서도 따뜻하게 데운 정종을 팔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겠지만, 본고장에서 맛보는 전통 일본 술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아쯔깡'운 '독구리'라고 하는 앙증맞게 작은 자기 술병에 담겨 나오는데, 술이 아주 부드럽고 역한 냄새도 없어 목에서 감기듯 넘어간다.-위스키 : 국산위스키와 수입위스키의 가격은 마시는 곳의 타입에 따라 매우 다르다. 보통 국산위스키 한 잔은 500-700엔 정도이며, 수입위스키는 600-800엔 정도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미즈와리'라고 하여 얼음과 미네랄워터에 희석해서 마신다. 위스키의 미각을 더해준다는 비싼 빙하의 얼음이 요사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와인 : 서양요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에서는 국산과 외국산 와인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산 '라오츄'는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마실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좋은 와인과 알맞은 안주를 제공하는 격조 있는 와인바 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지자케 : 각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청주를 지자케라 한다. 중소의 관리자에 의해 양조되어 판매 지역도 한정되어 있는 술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토속주와 같은 의미. 일본각지에 약 2천의 양조원이 있어 직접 술을 판매하고 있는 곳도 있다.3.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안주는 ?-모츠나베(일본식 전골요리) : 모츠나베는 우리의 전골요리와 비슷하나 얼큰함이 없는 일본식의 고소함이 특징이다.-우나기(장어요리) : 바다장어에 다레를 묻혀가면서 숯불에 서서히 익힌 것으로 고급 술 안주이다. 우나기를 도시락 밥위에 올려놓은 것을 “우나쥬” 라고 하며, 일본사람에게는 최고의 보양 식이라고 알려진 정도. 기름기가 많으므로 김치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한 번에 많이 못 먹는다.-사시미: 일품요리로 일찍부터 지역적인 특성으로 어패류 먹는 방법이 발달하여, 풍미나 촉감이 각기 다른 요리가 발달하였다. 조리법도 다양하여, 비스듬히 포를 뜬 것, 흰살생선을 써는 곤부시메쓰쿠리(소금을 뿌리고 다시마에 싸서 써는 조리법), 생선을 썰어 얼음물에 씻어 지방을 뺀 것 등 다양하다.-아게다시 : 기름에 살짝 튀긴 두부. 일본에서 주로 술안주로 먹는다.-이 밖에도 지리. 어묵. 주먹 밥, 조개요리, 닭꼬지, 일본김치, 생선구이, 소고기 조림, 감자튀김, 참치회, 연어알. 새우회 등 수많은 것들이 안주로 쓰이고 있다.4. 해장법은 ?-한국의 콩나물 해장국처럼 대표적인 숙취해소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과 매실을 절인 우매보시가 그래도 사랑받는 해장 법 중 하나다. 일본에서 사케를 너무 마셔 속이 울렁거릴 때는 콩나물국만 찾지 말고 우매보시 한 덩이를 뜨거운 물에 떨어뜨려 들이켜 마시곤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라면을 먹는다. 라면 종류는 미소 라멘 (된장라면) 쇼유 라멘 (간장라면)돈코츠 라멘 (돼지뼈국물 라면) 챠슈 라멘 (족발같은 고기가 얹어져 있는 라면)등을 먹으며 속을 푼다.5. 일본의 술자리 예절-한손으로 따르고 계속 첨잔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잔에 술이 조금 남아 있을 때에 첨잔하는 것도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이야기에 열중하여 상대방의 잔을 빈 채로 오랫동안 놔두어서는 눈치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다. 첨잔은 한국에서는 금기이지만, 일본에서는 미덕이다.-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실 때에는 한국과 달리 여자쪽에서 상대방 남자에게(비록 연인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경우라 할지라도) 술을 따라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자가 남자짝의 술잔을 앞에 두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으면 둔하고 무신경한 여자라고 오해받기 쉽다.-대개 잔돌리기란 없다.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수단으로는 첨잔 밖에 없다. 상대방이 술을 따라 주면 자기도 곧 상대에게 따라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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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09.05 | 7페이지 | 1,500원 | 조회(892)
  • 디워와 진중권사태에 대한 사견
    D-WAR를 보고담당교수: 진중권사회문화론연세대학교 경영대학200789106심형래디워를 보고요즘 우리 사회를 강타한 영화 디워에 대한 대중적 논란은 막상 디워를 보고나니 그 본질적 의미에서 상당히 비켜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디워를 영화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화 한편을 놓고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침소봉대되어 영화 자체에 대한 해석의 본질을 외면한 사회적 논란의 문제로 비화되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디워는 영화적 가치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본다. 여기에 어떠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서는 안된다 본다.영화 디워에 관한 느낀점을 간단하게 적어 본다.이미 알고 있듯이, SF영화의 흥행 성공 여부를 결정 짓는 SG기술은 허리우드 영화 못지 않는 뛰어난 영상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본다. 과거 영화 용가리에서 보여준 심형래의 수준이하의 모습은 찾아 볼수 없었다. 사람은 실패 속에서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디워는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다시 평가하는 듯 하였다.그러나 뚸어난 SG기술에 의한 재미 있는 영상 효과에 비하여 전체적인 시나리오 설정은 무난하였다 하여도 부자연스러움에 의한 비약적인 스토리 전개와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력은 영화 디워를 무엇인가 부족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한국의 자동차가 외제 자동차에 비하여 몇% 부족한 것 같이 무엇인가 모자람을 느끼게 하였다.제작비 700억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다. 영화 디워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점을 보여주는 면은 분명 있다 본다.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집념의 열정으로 인한 디워가 탄생했다는 것 나름대로 인정을 한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영화 제작비가 소요된 것을 생각한다면 최근의 한국 영화가 가지는 저력을 생각해 본다면 디워 정도의 영화 탄생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영화 디워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사회적 평가가 있었야 한다 본다.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하여야지 다른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어 영화에 대한 본질적 해석은 멀리하고 다른 논리에 의한 평가적 시도가 개입된다면 한국 영화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본다.결론적으로 영화 디워는 평론가 진중권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형편 없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영화 한편으로 인한 국가적 파시즘의 열광적인 집단적 지지에 의한 광기를 생산하려는 분위기 조장은 더욱더 아니라는 것이다. 시나리오의 전개과정과 배우들의 연기력 부분을 수정 보완을 하여 팬들에게 선사하였다면 정말 영화 디워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는 데 큰 역활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아쉬운 기대를 가져 보는 것이다.영화 디워를 재미있게 보고나서도 몇% 부족함을 느낀 것은 영화에 대한 사랑을 뛰어 넘어 한국 영화의 발전을 기대하는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심형래와 진중권에 대한 사견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는 특정한 무엇을 비판하면 다치는 이상한 풍습이 생겨났다. 비근한 예로 월드컵을 비판하면 다쳤고 줄기세포를 비판하면 다쳤다. 이것은 아마도 민주화 이후 대중이라는 개념 미상의 집단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심형래가 대표인 영구 필름이 만든 영화 디워는 개봉 열흘이 넘어가면서 한국 영화 관객 동원의 신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로 욱일상승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제는 영구를 비판하면 다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디워에 대한 소수의 비판자와 다수의 옹호파 중 어느 한 편에 가담하기보다는 이런 사태가 왜 빚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동아일보는 거의 전 지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흠집내고 있었다. 저녁에 인터넷을 점검해 보니,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역시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내 놓고 있었다. 다만 조선일보는 영화 디워 열풍을 보도하고 있었는데, 독자들의 눈에 아주 잘 뜨이도록 편집해 놓고 있는 점이 달랐다. 나는 이명박이 부동산 문제로 수세에 몰렸을 때 신정아 기사를 톱으로 뽑은 며칠 전 조선일보가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주말판 조중동은 일제히 디워 선풍과 논란을 큼지막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기사를 클릭하면 자동적으로 영화 예고편을 볼 수 있도록 장치해 놓고 있는 점도 같았다. 그런데 한겨레와 경향에는 디워 보도가 전혀 없었다. 프레시안과 오마이에는 디워를 조심스럽게 비판하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아울러 오마이는 다른 영화 '화려한 휴가'를 '기획적'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나는 며칠 전 동아일보가 '하필이면 왜 대선의 해에 광주 영화를?'이라고 제목을 뽑은 기사를 떠올렸다. 그러자 이어서 김대중 시절 추석 즈음에 '대구 부산에는 추석도 없다'라는 타이틀로 보도한 동아일보의 톱기사도 떠올랐다. 영화 디워의 시사회가 열린 것은 지난 7월 24일이다. 영화를 본 영화인들과 기자들은 나름대로 디워에 대한 평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디워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을 하는 블로그에는 대량의 정체불명성 안티들이 몰려 무지막지한 댓글들을 띄워 올린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영화를 본 네티즌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비슷한 인신공격성 글이 다량으로 뜨는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악플들은 하나같이 필자에게 자진 삭제를 요구했다. 이송희일 감독은 디워 비판자에게는 어김없이 가해지는 공격성 댓글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자신의 블로그에다 '디워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디워를 영화가 아닌 미국에서 70년대에 조립에 성공한 토스터기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끼적였다. 그의 글에는 심형래 감독이나 영화 디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황색 저널리즘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이 감독이 "디워는 영화가 아니다." "디워는 70년대 미국에서 조립에 성공한 토스터기'라고 말했다고 써댔다. (이만 하면 이것은 심각한 수준의 왜곡 기사라고 보아야 한다.) 마침 심형래의 학력 위조 문제가 불거졌다. 심형래는 누구나 돈만 내면 다니는 고려대학의 특수 대학원 과정을 6개월 정도 다녔는데 학부를 졸업한 것처럼 행세하고 다닌 것 같다. 그는 고려대학 동문 모임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형래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며 "밤새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충무로 영화인들에게 왕따 당하고 있는 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고, 아울러 디워 비판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혹독한 댓글들이 더 많이 뜨게 되었다. 그들은 이송희일 감독의 동성애를 까발겼으며, 이 감독을 두둔한 김조광수 감독까지 싸잡아 "넉 자 이름을 쓰는 놈들은 모두 매국노"라고 말했다. '씨네 21'에서 영화평 청탁을 받은 진중권은 뒤늦게 극장에 가 디워를 본 것 같다. 그는 인디펜던스데이와 주라기공원을 어설프게 모방 합성한 듯한 디워를 보고 적이 실망한 듯하다. 좋은 영화평이 나올 리가 없었다. 글이 실리자 그의 블로그에는 대량의 정체불명성 네티즌들이 몰려들어 악풀을 달면서 사과를 요구했다. 그들은 "네가 영화를 아니? 그럼 네가 한 번 만들어 봐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중권은 MBC 100분 토론에 나간 것이다. 그는 "디워를 비판하는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공격하는 네티즌들에게 꼭지가 돌아 영화평을 썼다." 고 말했다. 그러자 조중동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미운털이 박혀 있는 진중권에게 골탕을 먹이기로 작정을 했는지, "진중권 디워 팬에게 꼭지가 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네티즌들의 공격은 이제 진중권 하나를 표적으로 삼아 진행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진중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그가 대중을 모르며 영화를 모른다.'는 의견이 대부분 들어 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대중이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다중'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영화를 본 400만 대중을 무시하는 거냐?'고 항변한다. 그런데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이 저급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를 본 관객도 합쳐 2,000만이나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무 때나 대중을 남발하는 것은 오하려 대중을 욕먹이는 짓이라고 본다. 요컨대 대중의 이름을 지나치게 많이 팔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진중권이 영화를 잘 모른다는 주장에도 나는 찬성하기 어렵다. 진중권의 영화관은 월드컵에 열광하는 한국 다중의 영화관과 다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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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 | 2007.09.08 | 6페이지 | 1,000원 | 조회(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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