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정신과 봉사 나레이션 족보
- 최초 등록일
- 2021.01.18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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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계정봉 2 주차
계명의 탄생
이번 시간에는 격랑의 시기를 헤쳐 나가며 ‘계명기독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창학을 위해 힘쓴 분들의 정신과 의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명대학교의 역사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계명의 실질적인 역사는 19 세기 후반부터 태동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럼, 여기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다음 빈 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작성해 보세요. 한국은 1876 년에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맺고 개항을 하게 됩니다. 개항을 통해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전파되었고, 또 외국문물도 적극적으로 유입되었는데요. 특히 1884 년 9 월 2 일 호러스 알렌이 의료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를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 즉 기독교가 대구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1893 년입니다. 미국 북장로교회 배위량 선교사가 1890 년 부산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하다가 1893 년 4 월 22 일 조랑말을 타고 부산을 출발해 대구를 방문한 것이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때 배위량 선교사 일행이 대구에 머문 시기는 4 월 22 일부터 25 일까지 4 일간이었다고 합니다.
2 년 후인 1895 년 12 월, 배위량 선교사는 대구에 다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1 월에 대구 읍성 남문 안에 집을 장만한 후 4 월에 부인 안애리 여사와 아들을 데리고 대구로 이사를 하게 되죠. 하지만, 배위량 선교사는 1896 년 하반기에 서울에서 열린 선교사 연례회에서 서울지역 교육담당 고문으로 발령을 받게 되어, 1896 년 11 월, 대구의 선교업무를 그의 손아래 처남인 안의와 선교사에게 인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위량 선교사는 1897 년 활동 지역을 평양으로 옮겨 숭실대학교의 전신인 ‘숭실학당’을 창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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