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교류사 강의 자료 7
- 최초 등록일
- 2020.11.19
- 최종 저작일
- 2020.11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동서문화교류사 강의 자료 7"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윈강 석굴사원
위치: 산서성 대동시(大同市) 서쪽 16km에 있는 무주천武周川 북안
화북 최대 석굴
무주천 무주산의 사면 동서 1km의 사암 단애에 조성
총 석굴 수: 53(보존상태 양호한 것은 약 20개)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모태
동, 중, 서의 3구역으로 구분:
동쪽에서 서쪽으로 번호가 매겨짐
동부: 불탑 중심으로 ‘탑동(塔洞)’이라고도
중부: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 규모 최대, ‘담요 5굴’이라 부름(제16굴~20굴)
서부: 낙양천도(494년) 전후
최대석굴은 제 6굴(효문제 시기), 지면에서 천정까지 약 20m
최대 불상은 제 5굴의 높이 17m
작은 공간(소감小龕) 1,100, 대소 석조상 5만 1,000여체
10m 이상 대불상이 9개(최대 17m), 1~10m가 911개, 1m 이하가 48,170개
그 밖의 조상이 2,080개
모두 사암에 조각되고 소조 불상은 없으나 표현 형식이 소조적이며, 돈황의 소조불상에 가까움
개굴 배경
북위는 불교 국가
태무제의 불교 몰임: 화북 통일 후(439년), 양주(=무위, 북방 불교 중심)
평정하고 승려 3,000옮김(->당시 북방 민족의 불교 열정: 유명한 고승이 타국에 있으면 그 확보 위해 전쟁 불사)
북방 불교의 특징: 국가 불교=‘황제즉여래皇帝卽如來’(황제가 즉 부처님)
폐불 사건의 발생
한인관료 최호와 신천사도(新天師道)의 도사 구겸지가 합작해 태무제에게 도교 국교화와 불교 탄압 획책 -> 7년간 지속
문성제(452~464)의 즉위와 불교 부흥: 승려 담요의 요청 받아 참회 뜻으로 석불 제작 시작(460년) -> 그 결과물인 제 16굴~20굴을 ‘담요5굴’이라 부름
5굴 개굴은 이후도 효문제의 낙양 천도(494년)까지 계속
운강석굴은 모두 북위시대 것
담요5굴에 대하여
제16~20굴
가장 일찍 또 심혈 기울인 작품
북위의 5제帝에 해당한다고 함: 19굴은 초대 탁발규, 18굴은 제 2대 명원제, 20굴은 제 3대 태무제, 17굴은 태무제 아들로 죽은 경목제, 제 16굴은 재위 중인 문성제
->북위황제가 ‘여래불’의 화신임을 상징한 것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