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거란의 침입과 항쟁
- 최초 등록일
- 2020.04.26
- 최종 저작일
-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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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과 항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거란의 1차 칩입(993년)
2. 거란의 2차 칩입(1010년)
3. 거란의 3차 침입(1019년)
본문내용
소순녕은 전쟁의 명분을 거란이 고구려를 계승하였으므로 옛 고구려 땅을 돌려달라는 것을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하였다. 중국의 신당서에는 고구려도 고려라고 칭하고 있다. 태조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를 고려라고 칭하였다. 991년 거란은 1차침입전 압로강 부근에 성을 쌓고 있었다.(전쟁준비) 내원성 지역(압록강 요충지-의주인접, 도강지역)에 군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993년 안용진을 공격하였다. 고려는 건국 이후 최대의 국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소순녕은 80만대군(요사 – 80만 대군을 동원했다는 기록 없음, 약 6만 추정)으로 침략을 하고 거란에 평양 이북의 땅을 넘겨주고 항복할 것을 종용했다. 고려는 평양을 중시하고 있었으며, 왕을 100일이상 평양에 머물라 했다. (훈요 10조)
고려의 성종은 평양에 군량미를 대동강에 수장한 후 평양을 거란에 넘겨 주려 했다. 그때 서희가 외교론을 펼치며 이에 반기를 들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