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별곡 분석(작가 소개, 중요 포인트, 세부 작품 해석)
- 최초 등록일
- 2018.02.24
- 최종 저작일
-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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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 소개
2. 작품 분석 포인트
① ‘관동별곡’의 구성과 전개
② ‘관동별곡’의 표현상 특징
③ ‘산→바다’로의 공간 이동과 화자의 심리 변화
④ 화자의 내적 갈등 양상
⑤ 화자의 갈등 해결 방식
3. 실제 부분별 작품 세부 분석
본문내용
1. 작가 소개
조선 중기 때의 문신 · 문인. 서울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유배당하였는데, 그도 관북(關北) · 정평(定平) · 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그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 임억령(林億齡)에게 시를 배우고 김인후(金麟厚) · 송순(宋純) · 기대승(奇大升)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이이(李珥) · 성혼(成渾) · 송익필(宋翼弼) 같은 유학자들과 친교를 맺었다. 17세에 문화유씨(文化柳氏) 강항(强項)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다. 1561년(명종 16) 26세에 진사시 1등을 하였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첫 벼슬은 사헌부지평, 이어 좌랑 · 현감 · 전적 · 도사를 지내다가 31세에 이르러 정랑 · 직강 · 헌납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가 함경도 암행어사를 지낸 뒤 32세 해 이이(李珥)와 함께 사가독서하였다. 이어 수찬 · 좌랑 · 종사관 · 교리 · 전라도 암행어사를 지내다가 40세인 1575년(선조 8)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몇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43세 때 장악원정을 배수하고 조정에 나왔다. 이어 사간 · 집의 · 직제학을 거쳐 승지에 올랐으나, 진도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반대파인 동인의 탄핵을 받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참고 자료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한국사전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