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이해 요약정리
- 최초 등록일
- 2016.02.17
- 최종 저작일
-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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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5주차 강의 진압과 학살
1. 초토화작전 실시
1) 초토화 배경
-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 4.3사건을 완전히 진압해야한다는 생각에 미국의 원조를 받음. 미국은 제주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군에 지시. -> 미·소 냉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아시아에 공산주의로부터의 방벽을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반영.
-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
- 그런데 이 때 제주에 파견하려던 여수의 14연대 반기.
-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 선포.
- 9연대 송요찬 연대장은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 ->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진압작전 전개.
- 미군 정보보고서 -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택했다.
2) 초토화 작전의 전개
- 1948년 10월 말 ~ 1949년 3월 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혹한 집단 학살. -> 4.3 전 기간 동안의 희생자 수는 2만5000천~3만여 명으로 추정->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기 전인 1948년 9월말까지의 사망자 수는 대략 1,000명 미만.
-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을 격리시키기 위해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 마을로 강제 소개,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지름, 소개령이 내려졌는데도 병자, 노인, 어린이 등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했음.
- 이유 여하를 막론한 무차별 학살 자행, 소개령을 전달하지도 않고 방화와 학살이 이루어진 곳도 많음.
- 삼진정책 : 태워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앤다.
3) 초토화 작전의 결과
-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부터 1949년 봄까지 겨우 몇 달 사이에 군·경 토벌대의 진압 작전으로 수만 명의 인명 희생. 130여 마을이 소개령 등으로 초토화되어 제주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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