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국주의화
- 최초 등록일
- 2015.10.22
- 최종 저작일
-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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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은 미국의 페리제독의 강요로 강제로 개항이 되었다.
원래 일본은 청나라나 조선보다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유럽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고 산업화와 근대화에 성공한다.
<사 진 - 이와쿠라 사절단>
중국이나 조선은 서양의 첨단 문물에 대해 천시했지만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활발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민족이 정신적 승리에만 도취되어있을 때 일본은 꾸준하게 문물을 정비하면서 근대화를 추진했다.
일본은 원래 지방자치가 강했다. 200개 봉건국가로 분열되어 각 지역간에 계속 전쟁상태였고 이런 상태는 일본을 오히려 발전시켰고 사회를 조직화 했다.
일본은 19세기 말까지 섬유 산업의 호황을 바탕으로 경공업이 발전하였다. 청·일 전쟁 이후에는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하여 막대한 배상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청으로부터 받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등을 해군력을 강화시키는등의 군수 산업에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추세로 인하여 20세기 초에는 군수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업을 발전시켰다. 자본주의를 토대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일본은 1903년경에 군사력을 더욱더 증강시켰는데 당시에 군사비가 예산 총액의 40%에 달할 만큼 군사력을 강화시켰고 군국주의의 길로 급속하게 다가갔다.
일본 사회는 농부를 기본 바탕으로 해서 기술자 집단이 영주의 성 주변에 거주했다. 전통적으로 무사가 강했고 무사계급이 영주를 철저하게 보좌했다.
지방의 세력이 강한 가운데 철저히 분업화 조직화 되어있었던 일본은 기술자들을 농부보다 우대했고 이러한 것이 근대화를 성공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을 했다. 동아시아의 세 국가인 청나라, 조선, 일본을 비교해 보자. 청나라나 조선은 왕 아래서 경직되게 움직이는 관료들 뿐 이었지만 영국처럼 섬나라였던 일본은 영국의 사례와 비슷하게 대륙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소화하는데 열정을 보였다. 또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편견이 없었다
일본이나 영국의 경우는 영주가 기술자들과 평생을 동고동락하는 체제인데 반하여 대륙은 경직적인 관료주의가 발달했다.
기술자를 대우하면서 사회를 발전시켰던 일본은 포루투갈 조총을 일본화 할 수 있었고 임진왜란때부터 조총을 활발하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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