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의 후예

* 도서요약본은 책한권의 핵심 줄거리와 내용을 A4 10매 내외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저자
김동리
출판사
-
출판년도
2000.07
판매자(주)북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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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설 속에 들어가 세상을 조롱한 작가
작가와 작품 속의 주인공은 어떤 관계일까? 사람들은 소설가나 시인이 무슨 특별한 사람처럼 생각하
는데, 이는 작가를 소설 속의 주인공, 시 속의 화자로 착각하는데서 생기는 재미있는 호기심일 터이
다. 엄격히 말하면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작가가 동일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설 속의 가
상인물과 현실 속의 작가가 유사한 경우도 왕왕 있다. 김동리도 자신을 소설 속에 등장시켰다.
김동리의 〈화랑의 후예〉 발단부분에서 관상쟁이가 '나'를 보고 한 말을 이렇게 쓴다.
"인당이 명료하고 미목이 수려하니 학문에 이름이 있으리라 하고, 준두와 관골이 방정해서 중정에
왕운이 있으리라 하고, 끝으로 비록 부모가 없더라도 부모에 못지 않은 삼촌이 계셔서 나의 입신출세
에 큰 도움이 되리라 하였다."
'나'라는 인물은 양 눈썹 사이가 명료하고 얼굴이 수려하니 학문으로 이름이 날 것이고, 코끝과 광
대뼈가 나무랄 데 없이 준수한 외양을 가졌다. 이 인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지만, 삼촌이 입신출
세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얼굴 생김새가 젊었을 당시의 김동리를 묘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실부모했다느니, 삼촌의 도
움이 있다느니, 학문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볼 때, 결국 '나'는 바로 김동리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
일 터이다. 입신출세한다는 말대로 김동리는 문필가로 대성공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항상 문단의
중심에 머무는 행복을 누린 문인이다.
조실부모한 김동리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맏형인 김범부였다. 김범부는 김동리보다
열여섯 살이 더 많았는데, 일본에 건너가 동양대학에서 동양철학을,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영어와 독어
를 공부한 뒤, 스물다섯 살에 우리나라로 돌아와 불교와 관련된 일을 두루했다. 김범부는 당시 김동
리는 물론 많은 문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또한 경주에서 그의 이름을 대면 척 알아들을 정도의
유지여서 '김범부'라는 이름 석 자를 대면 술집에서 술도 외상으로 먹었다고 한다.
김동리가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온 것도, 동래고보에의 진학이 좌절되었을 때 철학책을 비롯
해 무수한 고전을 섭렵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김범부 덕택이었다. 즉 김동리에게 김범부는 맏형이
자 아비였고, 동시에 나아가 민족적 우상이었다. 김동리는 김범부를 〈화랑의 후예〉에서 숙부로 만
들어놓아 인상적이다. 어찌됐든 소설을 쓰는 김동리도 한편의 소설 속에 들어가 그 주인공이 되어 세
상을 한번 조롱하고 싶은 치기가 있었던 듯하다. 더군다나 자신의 형까지도 끌어들여 함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모험까지 감행하면서 말이다.
좌익과 한판 붙는데 두려움을 모르던 선봉장의 순수주의
1913년 11월 24일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시종이다. 1935년 《중앙일보》에 단편 〈화랑
의 후예〉가 당선되어 등단한 동리는 〈무녀도〉·〈바위〉·〈황토기〉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
하면서 30년대에 이미 나름의 문학세계를 확고하게 틀어쥐었다. 중학교 4학년 중퇴라는 최종학력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세계문학전집과 동서의 철학 및 사상·종교서적 등을 섭렵하였다. 물론 김범부라
는 맏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활약이 두드러진 건 해방후다. 해방직후 좌익계문인들이 발빠르게 결성한 문학가동맹에 맞서
1946년 서정주·박두진 등과 함께 반공문학단체인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세우고 초대회장이 된다. 이
때 이러한 그의 활동은 상당한 용기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당시 웬만한 지식인이라면 조금
이라도 좌익에 경도됐고, 좌익의 숫자도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전면전을 펼치겠다고 나섰
으니 말이다. 그 후 각종 문학단체의 수뇌부로 피선이 된다.
김동리 자신이 대한민국정부와 '정신적 내지 역사적 성격'을 공유한다고 밝힌 바 있는 한국문학가협
회는 지금의 한국문인협회의 전신으로 이후 이 땅의 제도권문학을 대표하게 된다. 그 선두가 바로 김
동리였다. 그리고 김동리에 있어 중요한 사실은 이들 단체와 소속문인들의 창작의 지도원리가 되기도
한 문제적 평론을 거듭 발표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평론이 자신과 정반대에 놓인 작가·평론가들
과의 논쟁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는 대단하다.
일찍이 30년대말 유진오와 벌인 논전에서 시작해 해방 즈음에는 좌익계 소장평론가인 김동석·김병
규와, 50년대말에는 당시의 젊은 평론가인 김우종·이어령 등을 상대로 펼친 불꽃 튀는 논쟁에서 김
동리가 이룩하고 지켜낸 문학적 화두는 '구경(究境)적 삶의 형식'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구경적 삶
의 형식'이란 달리 말하면 인간의 원형적 조건 또는 운명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일제말기인 30년대 후반과 해방 즈음, 그리고 민족적 분단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많은 동료문인들이
문학과 현실의 불가분의 관련성을 강조할 때에도 김동리는 역사와 현실이 휘발해버린 어떤 민족의 원
형적 공간을 상정하고 그 안에서 운명이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힘에 맞서고자 했다. 그 대결의식은
〈역마〉·〈사반의 십자가〉·〈등신불〉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현실사회
에서는 전쟁 중의 문총구국대 부대장, 5·16민족문화상, 국정자문위원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서라벌
예술전문대 문예창작과에서 많은 제자들을 키우기도 한 김동리는 두 번째 부인이었던 작가 손소희가
먼저 세상을 뜬 뒤 30년 연하의 작가 서영은과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
어느날 숙부님께서 '조선의 심볼'이라는 황 진사를 나에게 인사시켰다. 거무스름한 두루마기에 얼굴
이 누르퉁퉁한 황진사는 나이가 육십 가량 되는 노인이었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숙부를 찾아온 황
진사는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를 약이라 우기면서 비굴하게 끼니를 해결하려 한다. 황진사는 몰
락한 양반의 자손으로 자처하며 과거의 집착과 긍지를 결코 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진사행세를 한
다. 그는 끼니를 때우기조차 힘들 만큼 가난하지만 솔잎 한 줌과 낡은 주역책을 때묻은 전대 속에 차
고 다니며 지략과 조화를 부려보고 싶어한다. 몰염치한 성격과, 시대착오적 문벌의식을 뿌리 깊이 가
지고 있는 황 진사를 그래도 불쌍히 여긴 숙모는 황 진사의 중매를 돕게 된다. 황 진사에게 중매시켜
줄 여자는 다름 아닌 젊은 과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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