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 도서요약본은 책한권의 핵심 줄거리와 내용을 A4 10매 내외로 정리한 문서입니다.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출판사
-
출판년도
2000.07
판매자(주)북코스모스
퀴즈풀이 출석이벤트

목차

영원한 자유주의자, 밀
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벤담의 친구이며 열렬한 공리주의 옹호자인 제임스 밀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적 없이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사교육을 받았으며 나중에는
벤담에게 사사했다. 네 살때 이미 희랍어를 배우고 이솝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으며 7세에 벌써 '작은 학자'
라 불렸다. 8세에는 라틴어를 배워 헤로도토스, 크세노폰, 플라톤의 저서들을 독파했고, 11세에는 미분학,
12세에는 물리학, 화학, 13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홉스에 이르는 고전논리학 역사 문학 수학 경제학
등을 배웠다. 17세가 되던 해에는 아버지를 따라서 인도 식민지를 관할했던 동인도 주식회사에 입사해 52
세에 그 회사를 은퇴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존경을
느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는 아버지와 아침에 산책하면서 나누는 학문적 대화에 많은 희열을 느꼈고
동생들의 교육에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했다. 후에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벤담의 조수이자 제자로 일하
면서 공리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공리주의 협회'라는 진보적 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벤담의
합리적 사고에 열렬한 지지자가 되지만, 후에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수정하면서 질적 공리주의를
내세우게 된다.
20세 때인 1826년 가을,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맞는데, 지나친 주지주의적 교육에서 비롯된 정서결
핍적 신경쇠약이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 시기에 그는 개인의 획일적 사고와 행동이 가져오는 폐해를
절감한다. 이는 나중에 《자유론》에서 개인의 개별성과 자율성에 대한 열렬한 지지로 나타난다.
연인이자 지적 동지였던 헬리오트
밀이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날 무렵인 1832년의 어느 날, 25세의 그는 런던의 약종상 존 테일러의 초대를
받았다. 여기서 그는 테일러의 부인인 헬리오트를 알게 됐다. 그녀는 지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여성으로 밀
의 이상형이었다. 그들은 곧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들의 친밀한 관계는 영국 상류 사회의 스캔들
이 되었다. 테일러의 양해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그들의 관계는 밀이 44세가 될 때까지, 그러니까 헬리
오트의 남편인 테일러가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밀이 46세 되던 1851년, 주위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헬리오트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혼이었지만 프랑스 여행
중에 얻은 감기와 폐렴으로 헬리오트가 갑작스레 죽게 됐다. 밀은 아내의 유해를 묻은 아비뇽 근처에 집을
마련해 그녀의 무덤을 평생 돌보는 열정적 사랑을 보여줬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유론》은 헬리오트
와 함께 내용을 공유하며 함께 수정 검토한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밝혔다. 헌사에서도 헬리오트에 대한
그의 존경과 뜨거운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에 관한 자
신의 사상 대부분이 헬리오트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60세가 되던 1865년, 밀은 웨스트민스터 선거구에 자유당 소속으로 입후보해 당선됐다. 그는 '선거운동에
돈을 쓰지 않는다, 당선이 돼도 지방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당의 의견에 구속되지 않는다....' 등
의 공약으로 내세우며 입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700표차로 당당히 당선됐다. 그후 밀은 의회에서, 비록 부
결되기는 했지만, 여성 참정권을 요청하는 등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또한 비례대표제,
선거비용삭감, 공명선거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급진적인 주장들이 당시의 실정과 맞지 않았기 때문
에 자유당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1868년 선거에서는 낙선하고 말았다.
모든 고귀하고 어진 것은 개성으로부터
'공리'를 양적으로 계산 가능한 쾌락으로 인정했던 벤담과 달리 질적 쾌락을 중시했던 밀은 남자와 여자
의 동등함을 주장하고, 여성을 변호했으며, 자유와 평등이 완전하고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신봉했다. 그는 특히 노동자의 지위향상과 여성 해방 등에 관심을 쏟았다.
《자유론》에 잘 나타나 있듯이 밀은 개성을 행복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 타인의 전통과 관습이 개
인의 행동 기준인 곳은 행복의 주요 요소 중 하나가 결여돼 있는 것이며, 개성 있는 자발적 선택이 얼마나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것인가를 역설했다. 그는 말한다. "일체의 고귀하고 어진 것은 모두 개성으로부터
싹튼다" 고.
아비뇽에 돌아와 연구에만 몰두하던 밀은 1873년 5월 7일 《곤충기》의 저자인 파브르와 소풍을 갔다가
병을 얻어 그만 3일 만에 운명하고 말았다. 67세의 나이로 진리에 대한 뛰어난 능력과 자유에 대한 열정적
마음을 가졌던 삶을 마침내 마감한 것이다. 유해는 그가 평생 사랑했던 아내 헬리오트의 묘 옆에 나란히
매장되었다.
밀은 영국의 철학자요, 사회개혁가요, 자유옹호자요, 경제학자이자 공리주의의 완성자였다. 주요 저서로
근대 민주주의의 대표적 문헌 《자유론》(1859)을 비롯해 《추론적 및 귀납적 논리학의 체계》(1843),
《경제학 원리》(1848),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
밀의《자유론》에서 개인의 인격 성장과 행복, 그리고 사회 전체의 공리와 복지 증진에 있어서 '자유'가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보장돼야 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자유가 또다른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진정한 자유의 범위와 한계를 고찰한다. 또한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관계
될 때 사회적 간섭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보여준다.

자료후기(1)

자료문의

제휴사는 별도로 자료문의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판매자 정보

나날이 책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현대인에게 책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여, 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건전한 독서 문화의 정착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북코스모스의 북다이제스트는 주요 도서의 핵심 내용을 5% 내외로 간추린 국내 최고의 도서 정보입니다.

주의사항

저작권 본 도서요약는 (주)에이전트소프트와
㈜북코스모스간의 저작권 계약을 통하여 제공되고 있습니다.
본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이용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환불정책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 다른 자료와 70% 이상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 (중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필요함)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 연구기관, 학교, 서적 등의 자료를 도용한 경우 자료의 설명과 실제 자료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여성 연관자료

우수 콘텐츠 서비스 품질인증 획득
최근 본 자료더보기
자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