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T. S. 엘리엇의 『신성한 숲』
T. S. 엘리엇은 『신성한 숲』의 1928년 판에 서문을 추가하여 자신의 과거 작품에 대한 영향력과 새로운 방향성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들이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글들에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 책의 글들이 더 어려운 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서론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다.
엘리엇에 따르면, 시는 우월한 유희(amusement)이지만, 유희의 본질이 아니다. 유희란 시의 한 가지 용도(use)를 가리킬 뿐이다. 시는 심리학적 데이터와 구분되며, 역사적 데이터와도 다르다. 시에 단순한 시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기 전에는 시를 분할할 수 없다. 시는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시의 감정과 비전은 시인의 감정과 비전과 다르다.
서론에서 엘리엇은 매슈 아놀드를 영국의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비평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또한 코울리지가 영국 비평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비평가였으며, 20세기에 비평가 아놀드와 비견될 만한 이는 아직 없다고 평가한다. 아놀드는 코울리지와 함께 영국 비평의 두 가지 큰 맥을 형성했다.
완벽한 비평가 아놀드를 제외하면, 다른 비평가들에 대해서는 엘리엇이 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비평가 사이몬즈는 인상주의적 비평의 대표자이며, 스윈번은 비평가라기보다는 감상가(appreciator)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의 소재를 완벽히 소화해서 시화하거나 평론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비평은 아니었다. 즉, 이들의 글은 인상과 감정의 표현에 그쳤을 뿐, 창조적 비평은 아니었던 것이다.인간의 재능과 전통의 관계에 대해 엘리엇은 개성과 전통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자신만의 창조적이고 비평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그가 선조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즉, 시인의 가장 개인적인 부분도 이미 선조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시인의 개성과 전통은 서로 분리될 수 없기에, 시인이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필수적이다. 역사의식이란 과거의 과거성 뿐만 아니라 과거의 현재성까지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의식을 가진 시인은 전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자신의 동시대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대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하며, 그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엘리엇은 시인의 개성과 전통, 역사의식과 동시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1. 1928년 판의 서문
엘리엇은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글들의 영향에 감사하며, 그러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의 글들이 더 어려운 주제로 가기 위한 서론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시는 우월한 유희(amusement)이다. 시의 본질은 유희가 아니다. 유희란 시의 한 가지 용도(use)를 가리킨다. 분명한 것은 시는 심리학적 데이터와는 아주 다르다. 시는 한 세기의 역사적 데이터와도 아주 다르다. 시에 단순한 시로서의 가치(a value)를 할당하기 전까지는 시는 심리학이나 역사와는 분할된다. 시는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의 감정이나 비전은 시인의 감정이나 비전과는 다르다.
1.2. 서론
서론에 따르면, T. S. 엘리엇은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글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한 영향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리고 이 책의 글들은 더 어려운 주제로 가기 위한 서론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엘리엇은 시를 단순한 "유희(amusement)"로 간주하지 않으며, 시의 본질이 유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유희는 시의 다양한 용도(use)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엘리엇은 시는 심리학적 데이터나 역사적 데이터와는 구분된다고 말한다. 시는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의 감정이나 비전은 시인의 것과 다르다고 본다.
1.3. 완벽한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영국의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비평가의 반열에 오른다. 코울리지가 영국 비평가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위대한 비평가였고, 어떤 점에서는 그는 영국에서 위대한 비평가로는 마지막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코울리지의 뒤에는 비평가 매슈 아놀드가 있다. 아놀드는 비평가라기보다는 선동가였고, 창작가라기보다는 대중작가였다는 평가가 있다. 그럼에도 아놀드의 작품들은 중요성을 지니는데, 그가 영불해협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고, 그의 작품에는 항상 상식(common sense)이 통했기 때문이다. 아놀드는 코울리지와 함께 영국 비평의 두 가지 큰 맥을 형성하였으며, 20세기에 비평 활동이나 비평의 계통화(organization)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이들에 비견될 만한 비평가는 아직 없다. 더욱이 모 신문에 기사로 게재되었던 "시는 지적 활동의 가장 고도로 조직화된 형식이다"(poetry is the most highly organised form of intellectual activity)는 주장에 빗대어서 비교할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당대 비평에 가능한 생각의 최고의 조직화된 형식과 비교해서 현대 비평은 퇴보적이기 까지 하다.
1.4. 완벽하지 못한 비평가
완벽하지 못한 비평가들은 A. C. 스윈번(A. C. Swinburne), 조지 윈담(George Wyndham), 찰스 위블리(Mr. Charles Whibley), 폴 모어(Paul More), 줄리엔 벤다(M. Julien Benda) 등을 포함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완벽한 비평가가 되지 못했다.
스윈번은 자신의 소재를 완벽히 소화해 시화하고 평론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튜더왕조와 스튜어트왕조의 극작가들에 더 매료되었고, 그들을 믿음직하게 안내하는 비평가였으며, 상대적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도 거의 항상 옳았다. 그러나 그의 글은 산문에 가까웠고 정확히 말해서 비평은 아니었다. 그의 목적이 비평가로서의 명성을 쌓기 위함도 아니었고 대중을 교육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가 칭찬하는 시인들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시적인 기록을 적어두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스윈번은 비평가라기보다는 감상가(appreciator)에 가까웠다.
조지 윈담은 낭만주의의 귀족이었던 인물로, 윈담 자신이 문학적 감정이 아마추어일지 모르지만 문학적 실천에서는 전문적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문학 생활과 시골 생활을 일치시켰고, 이것이 현실로부터 그를 멀리하고 낭만주의의 문학 훈련을 가능케 했다. 윈담은 상류사회의 일원이었고, 기사도 정신이 강했으며, 따라서 세상을 그 자신의 모험으로 여겼다. 그는 열정주의자였고 낭만주의자였으며 제국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비평은 균형감이 떨어지고 비평의 깊이나 심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찰스 위블리는 지엽적 풍미(the local flavour)를 건강하게 의식할 수 있는 일시성(temporality)의 소유자였다. 그는 당대의 문학조차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시절에 페트로니우스와 헤론다스를 읽었고, 많은 영문학 작품들을 읽었으며, 특히 16세기와 17세기 위대한 시대의 문학을 탐독했다. 그는 문학을 향유하였고, 비청교도의 입장에서 왕정복고기의 극작가들에 대해서 논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최고의 지방적 향수와 시대적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