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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복음주의의 역사와 현황
1.1. 복음주의의 정의와 발전
복음주의는 2,000년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탄생한 운동이자 사조이기 때문에, 정의 또한 여러 역사 배경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내려졌다. 복음주의는 영어로 'evangelicalism'이라고 표현한다. 이 용의의 씨앗은 그리스어 명사 'ε?αγγ?λιον'이다. 이 단어의 용례에 따르면 복음주의는 복음을 강조하고 중심에 두는 신앙 유형 및 사조를 말한다.
이 단어는 그 전에도 간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 표현을 가장 확고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차용한 인물은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였다. 루터파의 복음주의의 이해는 유럽 대륙에서 가톨릭과 반대되는 의미의 개신교 교파 혹은 전통을 지칭하는 신학적·지역적으로 제한되었다.
18세기 이래 일어난 영미권 복음주의 운동은 이미 기득권이 된 개신교 정통주의나 국교 세력, 혹은 세속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1920년대에 최정점에 달했던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기 이후 1940년대에 갱신된 신복음주의는 당대 근본주의가 주장한 복음의 핵심을 그대로 계승하되, 그들이 갖고 있던 전투성, 반지성주의, 반문화주의에 저항하고, 고립주의와 배타주의를 버리고 사회의 중심부로 진출하려던 사조를 뜻한다.
복음주의는 보편적 신앙고백 아래 묶인 느슨한 신앙 공동체이므로, 특정 교파의 신학 전통만을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데이비드 베빙턴은 이러한 복음주의의 특징을 네 가지 핵심 요소로 규정한다. '베빙턴의 사각형'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복음주의 정의는 회심주의,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행동주의가 사각형의 네 꼭지점을 차지한다."
1.2. 20세기 복음주의 주요 주제
20세기 복음주의 주요 주제는 기독교 변증과 기독교 비신앙화, 사회참여 등이다.
19세기까지는 전 세계 개신교가 전반적으로 복음주의적 성향을 띠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극변했다. 이제는 신앙의 근본을 뒤흔드는 세속주의, 무신론, 현대주의의 물결 속에서 개신교 신앙의 통일성이 급격히 무너졌다. 이러한 20세기의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지적·이성적·합리적으로 변증하고자 노력했다. 즉, 계몽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기독교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증명하고 설득하며, 이를 통해 전도의 문을 열고자 하였다.
한편, 20세기의 개신교는 세속화와 비신앙화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계몽주의와 진화론 등의 영향으로 대학과 지성계가 빠른 속도로 세속화되었고, 이에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 운동을 통해 신앙의 근본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고립주의와 반문화주의로 이어졌고, 복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야기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일련의 신복음주의자들이 사회 참여와 공공성을 강조하며 등장하였다. 신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칼 헨리와 해럴드 오켕가는 근본주의의 고립주의와 반지성주의에 반대하며, 복음주의가 학문과 지성, 문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셔우드 워트, 짐 윌리스, 데이비드 모버그 등의 학자들이 복음주의의 사회적 책임과 공정성을 주장하며 복음주의 내부에 사회 참여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복음주의의 공공성에 대한 성찰은 1974년 로잔대회를 거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로잔대회는 복음주의자들이 선교와 전도를 넘어 사회정의와 급진적 제자도로까지 관심을 확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복음주의는 서구 백인 중심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3. 영미 복음주의의 세계기독교로의 부상
영미 복음주의의 세계기독교로의 부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은 세계 정치 및 외교 역사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의 역사 전개에서도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 해였다. 이 해를 기점으로 기독교 세계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되기 시작했다.
먼저, 신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인한 절망감 때문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을 지배했던 내재적이고 희망적인 전통적 자유주의의 인간 중심적 신학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비관적인 위기 신학의 배경에는 실존주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전까지 있었던 "기독교세계"라는 관념이 1945년 이후 붕괴되는 신호가 분명해졌다.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 체계가 무너지면서, 1960년대까지 그들이 차지했던 세계 곳곳의 식민지가 차례로 독립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탈식민지 시대 시점을 기점으로 전통적인 기독교세계와 세계선교 체제는 붕괴했다. 유럽 사람들은 더 이상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규정하는 체계를 긍정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1968년을 기점으로 기독교세계는 완전히 붕괴하여 유럽에서는 더 이상 기독교가 성장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토대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유럽의 세속화와 연결된다.
한편, 1945년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는 유럽에서 일어난 변화와는 양상이 많이 달랐다. 유럽은 실제로 미국보다 세속화가 빠르지만, 그럼에도 전통을 유지한다는 면에서는 계속해서 기독교적인 색깔을 유지했다. 반면에 미국은 법과 형식에서는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기독교 국가였던 적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기원은 세속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럽보다 세속화가 늦었던 이유는 미국 역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