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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1.1.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개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우리나라 기독교 문화유산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설립된 박물관이다. 1967년 숭실대학교에 기증된 유물을 바탕으로 1976년 출범한 이 박물관은, 약 7,000여점의 귀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국보 제141호 청동거울, 국보 제231호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 보물 제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 등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의 전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1층부터 3층까지 크게 4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의 한국기독교역사실에서는 경교의 한국 전래, 천주교의 수용과 박해, 개신교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층에 위치한 숭실역사실에서는 숭실대학교의 설립과 발전, 민족운동 등 근대 한국 기독교 교육기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3층의 고고미술실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국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이처럼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우리나라 기독교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1.2. 경교의 한국 전래
경교는 빛의 종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통일신라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경교는 7세기에 비단길을 따라 중국 당나라에 전해졌으며, 당나라에서는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크게 유행하였던 종교이다. 당시 당나라와 빈번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던 통일신라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교가 한국에 전래되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로는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경교돌십자가가 있다. 경교돌십자가는 8세기 무렵 늦어도 통일신라 시대 때 경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또한 불국사의 탑이 두 개가 세워져 있는데, 이 구조는 수도사 구조와 비슷하여 불교와 기독교의 융합적 요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경교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되며, 경교돌십자가와 불국사의 구조 등을 통해 경교의 한국 전래를 확인할 수 있다.
1.3. 천주교의 성장과 발전
천주교의 성장과 발전은 봉건정부의 극심한 박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성장하였다. 초기 천주교는 한글로 간행된 관련 자료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한글의 민중문자화에도 기여하였다.
18세기 정약용 선생의 셋째 형인 정약종이 조선 최초의 천주교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천주교는 조선 내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이 늘어나자 조정에서는 이를 유학자들의 반대에 따라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하여 금지령을 내리고 박해를 가하였다. 이에 천주교도들은 지속적인 박해에도 신앙을 지켜나가며 발전하게 된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는 이러한 천주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약종의 '영세명장', 천주교 금서인 '천주실의',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참수된 성인들의 기록인 '기해일기', 척사윤음 등이 그 예이다. 이를 통해 천주교가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겪었던 극심한 탄압과 아울러 그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갔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4. 한국 개신교의 발전
한국 개신교는 자발적 수용과 전파라는 역사적 경험 위에서 민족의 운명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초기 개신교회는 조선예수장로회 총회를 조직하여 한국교회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교회조직은 정규 신학교육 및 주일학교 운동 등의 발전으로 더욱 그 토대가 강화되었다.
개신교 교단 중 최대 교단이었던 장로회는 자생적 성장을 거듭하며 한국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장로교 신학교에서는 목회자 양성이 이루어졌고, 주일학교와 부흥회 등을 통해 교육과 선교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또한 기독교 신문과 잡지의 발간, 찬송가 편찬 등을 통해 개신교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나갔다.
이와 함께 감리교회도 자체적인 조직체계를 구축하며 성장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감리교회조직인 조선감리회가 형성되었고, 신학교와 교육기관 설립, 선교 활동 등을 통해 개신교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이처럼 개신교는 교회와 교단 조직, 신학교육, 교육 및 선교 사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민족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5. 한글 성경과 찬송가 편찬
우리나라 개신교는 우리나라 천주교 만큼이나 세계 선교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성경을 번역해서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성경 번역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 천주교인들이 한문 성경을 바탕으로 1차 번역을 하였다. 그 다음 외국인 선교사 로스와 조선인 이응찬 등이 헬라어 성경을 참고하여 2차 번역을 하였다. 1차 번역자와 2차 번역자가 각각의 번역본을 참고해 수정하였고, 마지막으로 로스가 헬라어 성경과 헬라어 성구 사전, 메이어 주석 등을 참고하여 완성하였다. 식자공이 활자를 배열해 인쇄한 뒤 책으로 펴냈다.
한글로 간행된 초기 천주교 관련 자료들은 한국인들에게 신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한글의 민중문자화에도 기여하였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는 마가복음서언해, 누가복음, 찬성시, 찬양가, 부흥성가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개신교회는 기독교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최대 교단이던 장로교는 조선예수장로회 총회를 조직하여 한국교회 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교회조직은 정규 신학교육 및 주일학교 운동 등의 발전으로 더욱 그 토대가 강화되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는 장로회신학교 졸업증서, 감리교회 조례, 신학지남, 만국주일공과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한글로 된 성경과 찬송가는 한국 개신교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선교사 없이도 자발적으로 번역하여 읽고 전파했던 우리나라 개신교의 역사는 매우 독특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2. 숭실대학교 역사
2.1. 숭실대학교의 설립과 발전
숭실대학교의 설립과 발전은 다음과 같다.
숭실대학교는 1897년 평양에 설립되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