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작가 소개
1.1. 채만식의 삶
채만식(蔡萬植; 1902~1950년)은 호가 백릉(白菱), 채옹(采翁)인 작가이다. 1902년 6월 17일 전북 옥구군에서 6남 3녀 중 5남으로 출생하였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였다. 그 후 조선일보사, 동아일보사, 개벽사 등의 기자로 전전하였다가 1936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약하였다. 소설 뿐 아니라 희곡에서도 작품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채만식은 1920~1930년대에 주로 농촌의 현실, 지식인의 가난한 모습, 노동자의 갈등, 유이민 현상 등을 다룬 단편 창작을 하였다. 1934~1938년에는 현실 인식의 성숙도와 예술적 성취도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으며,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 『태평천하』, 『치숙』 등의 대표작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39년부터 광복 전까지는 친일적인 내선일체적 작품을 썼다. 광복 후 작가 스스로 작품을 통해 친일 행위를 비판하였고, 그 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는 민족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1.2. 채만식의 작품 활동
채만식의 작품 활동은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는 주로 소설과 희곡 창작에 힘썼으며, 작품 속에서 당시 농촌의 현실, 지식인의 가난한 모습, 노동자의 갈등, 유이민 현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었다. 특히 1934년부터 1938년 사이에 발표한 작품들은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 "태평천하", "치숙" 등으로, 당시 그의 현실 인식의 성숙도와 예술적 성취도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939년부터 광복 때까지는 친일적인 내선일체적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친일 행위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는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는 민족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작품들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2. 소설 『탁류』의 배경
2.1. 일제강점기 군산의 현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중요한 곡창지대 경기호남 평야가 위치한 곳이었기에 일본은 이 지역을 농업 식민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군산항은 주된 수탈의 창구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금강 유역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거점이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주요 내수 작물이었던 쌀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되어 갔다. 이로 인해 군산 지역에는 쌀을 거래하는 미두장이 성행하게 되었는데, 미두장에서는 쌀값 변동을 노린 투기가 빈번히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몰락하게 되었다. 이처럼 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 수탈정책에 의해 파괴되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정주사의 몰락과 고태수의 죽음은 당시 군산 지역의 이러한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2. 서울에 대한 동경
서울은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근대화와 부를 상징하는 장소로 인식되었다. 소설 『탁류』 속에서 서울은 "무엇이 어쩌니 좋으리라는 것은 모르겠어도, 그저 막연히 좋을 성부르다"라고 언급되며, 초봉이도 "서울! 서울! 늘 가고 싶던 서울이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서울은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울은 초봉이가 자신의 운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최후의 피난처이다. 소설에서는 "서울로만 가면 뭐든지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다고 초봉의 심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작품은 서울에도 "얽히고설킨 자신들의 운명이 고향에선 풀어질 수 없기에 그 해결지로 서울을 동경"한다는 점을 드러내며, 서울 또한 황폐해져가는 곳임을 암시한다.
요컨대 일제강점기 시대의 서울은 근대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고향이 황폐해지는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로 여겨졌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울에서 자신의 운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실상 서울 또한 탁류에 휩싸여 있음을 보여준다.
3. 등장인물 소개
3.1. 정주사
정주사는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으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없는 인물이다. 작품 내내 서술자의 조소의 대상이 되며, 가장 빈번하게 풍자의 대상이 된다.
정주사는 가부장제의 몰락과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 미두장에 빠져 가지고 있던 돈마저 탕진하는 등 경제적 무능력을 보여주며, 가족들을 책임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러한 정주사의 모습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부장제 하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지만, 정주사는 그러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작품 속에서 정주사는 서술자의 조소와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타락상을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