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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속극과 가면극
1.1. 민속극의 범위와 특징
민속극의 범위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민속극은 민간전승의 연극으로 가장한 배우가 집약적인 행위로 된 사건을 대화와 몸짓으로 표현하는 다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공연될 수 있는 예술이다. 이 세 가지 특징과 합치되는 민간 전승은 민속극에 해당하지만, 민간전승이라 하더라도 연극이 아닌 것은 민속극에서 제외된다. 이 세 가지 특징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이 가면극과 인형극이다.
민속극은 우리 대로의 전통을 가진 민중적 미의식의 산물이며, 서구 근대극의 원리로 수입된 신극과는 달리 개인적 창작물이 아닌 민중의 창조물이다. 또한 구비문학의 하나이지만 다른 구비문학에 비해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민속극이 갈래상으로는 희곡이지만 가장 민중적이라는 점이다. 민요는 설화보다도 민중적이라고 하지만 민속극은 민요보다도 철저히 민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속극의 형식과 내용이 민중의 생활과 경험을 예술적으로 집약하면서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민속극은 다른 구비문학보다 더욱 민중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극도로 전형화된 인물과 첨예한 갈등을 통해 나타내며 해학과 풍자로서 비판을 심화시킨다.
1.2. 가면극의 기원
문헌상으로 뚜렷이 나타나는 한국 가면극의 기원은 신라 때가 된다. 통일신라시대 말엽의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한시(漢詩)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首)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에 수록되었는데, 이 중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猊)》는 가면을 사용한 놀음이다. 이 가운데 《대면》 1수를 옮겨 보면 "황금탈 쓴 그 사람(方相氏, 黃金四目을 가리키는 듯하다)이, 구슬채찍 휘두르며 귀신 부리네, 빠른 걸음 조용한 모습으로 운치 있게 춤추니, 마치 태평성세에 붉은 봉황새의 춤 같구나(黃金面色是其人 手抱珠鞭役鬼神, 疾步徐?呈雅舞, 宛如丹鳳舞堯春)"라 하여 가면무(假面舞)를 간결하면서도 극명하게 묘사하였다. 이는 한국 가면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되는 셈이다. 그 밖에도 신라 때에는 '검무(劍舞)'와 '처용무(處容舞)' 등이 있으며, 이 2가지 연희(演戱)에서도 가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몇몇 고문헌(古文獻)에 나와 있다.
1.3. 한국 가면극의 주제
한국 가면극의 주제는 관념적인 사고방식보다 현실주의와 비판정신이 기조를 이룬다. 이를 주제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반에 대한 반항이다. 양반에 대한 평민의 반항의식이 주로 하인인 말뚝이의 재담을 통해 풍자와 해학으로 조롱하며 모욕한다. 이는 양반계급에 억압되어 생활하던 서민들의 잠재의식의 폭발이다.
둘째, 부부 간의 갈등이다. 황해지방의 미얄할미·영감마당, 중부지방의 신할아비·미얄할미마당, 남부지방의 할미·영감마당에서 다루어진다. 영감의 소실과 할미의 갈등을 통해 남녀차별에 대한 자각을 보여준다.
셋째, 파계승에 대한 풍자이다. 오광대·해서·산대 가면극 등에서 다루어지며, 해서·산대 가면극 계열에서 더욱 신랄하게 표출된다. 이는 종교적 권위마저 배제하려는 시대조류를 반영한 것이다.
넷째, 의식무와 벽사진경이다. 구나무와 사자무 마당은 벽사진경 사상의 표현이다. 이는 공의가 폐지된 나례의식을 계승한 것이다.
다섯째, 서민 생활의 실상이다. 서민 생활의 한 단면으로 일반민중의 생활고 등을 고발한다. 이는 특권계급의 위선과 허구에 대한 반항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가면극의 주제는 양반에 대한 반항, 부부갈등, 파계승에 대한 풍자, 의식무와 벽사진경, 서민생활의 실상 등으로, 현실주의와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1.4. 가면극사의 제문제
가면극사의 제문제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면극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어느 구비문학보다 활발하게 진척되어 왔는데, 그 논의의 초점이 기원에 관한 것이다. 가면극의 기원을 둘러싸고 기악설과 산대희설, 농경의식설로 나뉜다.
기악설에 의하면 백제인 미마지가 중국 남조 오나라에서 배워 일본에 전했다는 기악이 가면극의 기원이라고 본다. 기악은 묵극이지만 그 내용이 양주별산대놀이나 봉산탈춤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기악이 가면극으로 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대사가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가면극으로 발전했으며, 불교의 선전극인 기악이 어떻게 파계승의 이야기를 다룬 가면극으로 전화되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산대희설은 민속극의 기원 중 가장 먼저 제기되었고 널리 유포된 것으로, 산대희에서 산대극이 생기고 이것이 전파되어 가면극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산대희는 산처럼 높은 무대를 만들고 그 가무와 함께 규식지희와 소학지희를 하는 놀이였다. 가면극의 연기는 '규식지희', 대사는 '소학지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대희와 산대극의 동일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농경의식설에 의하면 고대이래로 농사가 잘되라고 농민이 거행하던 농경의식이 가면극의 기원이다. 신의 가면이 인간의 가면으로 바뀌고 자연과의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