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원시고대사회
1.1. 원시사회와 고조선
1.1.1. 원시사회의 전개
인류의 등장과 구석기 시대 도구 사용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2-3백만 년 전부터라고 한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았으며, 구석기 시대의 표지가 되는 대표적인 도구는 뗀석기이다.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뗀석기는 자갈을 망치돌로 깨뜨리거나 떼어내서 만든 것이다. 이들은 또한 자연의 불을 채취하여 인류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구석기 시대 후기가 되면 석회암이나 동물뼈, 뿔 등을 이용한 조각품과 동굴벽화 등의 예술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인류의 문화적 발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신석기 시대의 농경과 토기 사용
신석기 시대는 서기전 6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은 간석기와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와 밑이 뾰족한 토기는 주로 서해안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을 위해 돌도끼, 돌삽, 보습 등의 다양한 농경도구가 사용되었으며, 수확기에는 돌칼로 곡물 이삭을 따서 갈돌에 갈아 사용하였다. 농경과 함께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는 조개무지와 집터에서 발견되는 흔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인류는 원시무리에서 발전하여 씨족을 이루는 모계 혈연 중심의 원시공동체사회를 형성하였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는 이러한 신석기시대 움집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1.1.2. 신석기시대 원시공동체사회
신석기시대 원시공동체사회는 서기전 6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며, 신석기시대의 특징은 간석기와 토기의 출현이다. 특히 빗살무늬토기는 밑이 뾰족한 토기로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이 시기에 농경이 시작되었으며, 농경도구로는 돌도끼, 돌삽, 보습괘이 등을 사용하였다. 농경과 함께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흔적은 조개무지나 집터에서 발견된다.
신석기시대의 인류는 원시무리에서 발전하여 모계(여성) 혈연 중심의 한 원시공동체사회를 이루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움집터 흔적을 보면, 바닥을 둥글게 파서 다지고 나무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었으며 출입문이 남쪽에 있었다.
이처럼 신석기시대 원시공동체사회는 농경과 정착생활의 시작, 그리고 모계제 사회 등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이후 청동기시대로의 진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1.3. 청동기의 사용과 원시사회의 해체
청동기의 사용과 원시사회의 해체이다.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1000년경 시작되었다. 유적은 요녕성, 길림성 등의 중국 동북부에서 한반도에 걸쳐서 발견되었다. 인류가 처음 사용한 금속은 구리였다. 청동기유물로는 동검, 거울, 도끼, 끌 등의 청동기류, 반달돌칼, 별도끼, 둥근 도끼 등과 같은 석기류와 민무늬토기가 있다. 특히 동검은 비파형과 세형이 있는데 비파형동검은 요하 일대와 요동반도, 한반도에서 발견되어 초기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해 준다.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농경문청동기는 청동기시대 농사 짓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은 4개의 굄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평평한 큰 돌을 얹어 놓은 것이 전형적이며 북부지방에 많다. 청동기시대부터 무기가 발달하면서 전쟁으로 인하여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분화가 확대되었다.
1.2. 고조선과 단군신화
1.2.1.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성립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성립이다.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성립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천신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곰과 호랑이를 사람으로 변화시킨 뒤 이들 중 곰으로 변한 여인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한다. 이 단군왕검이 고조선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 단군신화의 핵심 내용이다.
비파형동검은 고조선의 존재를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이 동검은 요하 일대와 요동반도,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조선이 이 지역에 걸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요녕성의 강상무덤을 통해 고조선 사회에 엄격한 계급질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단군신화와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통해 고조선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 역사의 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들이라 할 수 있다.
1.2.2. 고조선사회와 지배체제
고조선사회는 귀족인 지배계급과 평민, 노예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민은 부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하호(下戶)라고 불렸고, 노예는 주인이 죽으면 그 무덤 속까지 끌려가야 하는 종재였으며 이를 순장(殉葬)이라 한다.
고조선사회에서 기본적인 생산을 담당하는 것은 하호(평민)와 노예계급이었다. 지배계급인 귀족들은 평민들과 노예들을 착취하면서 노동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조선사회는 8조법금이라는 법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사회구성원 간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지배체제를 유지하였다. 이는 중국 고대 법체계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사회는 엄격한 신분제도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고분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왕족과 귀족들은 크게 그려져 있고 노비나 낮은 신분의 인물은 작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사회의 신분제도가 매우 엄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고조선은 엄격한 신분제도와 계급사회를 기반으로 한 지배체제를 유지하였으며, 귀족계층이 평민과 노예들을 착취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1.3. 고조선의 멸망
고조선은 한의 침략을 받아 1년간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멸망하였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그 지역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라는 4군을 설치하고, 군밑에 현을 두고 한인 군태수와 현령을 보내 식민지통치를 실시하였다.
고조선은 초기 한의 침략을 잘 막아내었지만, 점차 군사력과 국력이 쇠퇴하면서 결국 한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한은 고조선 멸망 이후 그 지역에 4개의 군을 설치하고, 한인 관리들을 파견하여 철저한 식민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로써 고조선은 오랜 역사를 마감하고 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2. 삼국
2.1. 삼국의 성립과 발전
고구려의 건국과 성장
고구려는 처음에 압록강의 한 줄기인 동가강 유역에 자리잡았다. 고구려의 건국 시조 주몽이 처음 도읍으로 삼은 곳은 요녕성 환인에 있는 오녀산성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주몽이 건국한 졸본이라고 알려진 요새지이다.
고구려는 삼국 중 가장 먼저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삼국 간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왕 때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고구려는 중국 요동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독자적인 왕권 강화와 지방 지배체제 구축에 힘썼다. 이를 통해 가장 강력한 삼국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백제의 성립과 발전
백제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