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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지학의 정의와 발달
1.1. 서지학의 정의
서지학은 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 비평, 연구, 기술하는 학문이다. 비블리오와, 그라피아라는 용어에서 유래한 서지학은 18세기 중엽에 책을 과학적으로 기술한 의미로 변화하였다. 서지학은 19세기에 동양에 도입되었는데, 처음에는 서사학이라 불리며 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한계점이 있었다. 이후 서지학이라는 용어로 바뀌어 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 비평, 연구, 기술하는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교수학, 판본학, 목록학이라는 전통적인 명칭과 체계로 서지학 활동을 전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 및 도서관 용어집에서 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해로드와 프리처크의 도서관 사서 용어집에서는 서지학에 대한 개념이 복합적이라고 보았다. 프랑스의 라루스는 주어진 주제에 대한 출판된 도서와 그 판본에 대한 지식, 한 주제에 관련된 저술목록, 근대 저술의 정규적 알람 목록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였다.
종합하면 서지학은 문자로 이루어진 내용과 그 형태를 비교·연구하는 학문으로, 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 비평, 연구, 기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지학의 연구방법은 참신성, 경제성, 유용성, 자료 접근성이 중요하며, 원본과 이본 자료를 수집하고 인명, 지명, 시대, 판종, 활자 등을 자모순으로 배열하여 정리한다. 또한 표제지, 판권지, 판식, 장정 내용을 기술하고 분석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1.2. 동양 서지학의 발달
동양의 서지학은 중국에서 원로학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진시황 때 분서갱유로 산실된 책을 수집 교정하라는 칙명에서 시작되었다"" 한나라 때 유황이 책들을 대교하였는데 여기서 교수학이 비롯되었고, 대교자업으로 교정과 교열을 하였으며, 가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해제를 만들어 이는 가주제별 분류의 별록에서 칠략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유흠이 최초의 분류목록인 집략과 6약으로 이루어진 칠략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목록학의 시초가 되었다"" 교수학은 원본의 복원만이 아니라 학문의 연원과 학파의 유별까지 포함하여 단순 목록이 아닌, 책의 원류진위와 전래집산까지 조사하는 목록학과 동일시되었다"" 청 때에 들어 학문적인 토대가 되었고, 청 후기에 들어서 물리적 형태를 연구하는 판본학이 등장하여, 간본과 사본의 형태 변천과정과 장정, 판종, 판식 등의 물리적 형태를 연구하게 되었다""
1.3. 서양 서지학의 발달
서양의 서지학 발달은 미국에서 서지정보의 제공이라는 차원에서 통계와 컴퓨터를 이용한 실용적 차원의 학문으로 발전시켜왔다. 트리트하임이 종교필사본 이후 딥딘의 애서가의 관점에서 도서를 다룸으로써 그 범위를 확대시켰다. 19세기 브레드쇼와 프록터에 의해서 목록을 편찬하고 도서가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학문적으로 성립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동일희곡작품에 대해 판을 시대추정하고 선본을 밝히기 위해 정치 사회적인 주변상황까지 비교한 폴라드와 인쇄방법에 따라 명확한 운칙을 세우려한 매케로와 그레그에 의해서 원문과 비평서지학이라는 현대적인 관점의 서지학의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들면서 전통적인 서지학과 물리적 형태를 다룬 서지학으로 크게 구분된다는 점에서 동양의 서지학 발달과 그 원리가 같다. 동양 서지학의 체계와 마찬가지로 서양 서지학 역시 목록학, 판본학, 원문학 등으로 구분된다.
목록학은 문헌을 체계있게 편성하고 학문의 원류 및 융채, 학술의 추이를 기술하는 분야이며, 판본학은 지적소산을 담은 물리적 형태의 특징과 변천과정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이다. 원문학은 동양의 교정학에 상응하는 분야로 내용의 형태와 문자를 연구하지만 의미연구는 아니다.
이처럼 서양 서지학의 발달은 미국을 중심으로 실용적 차원에서 발전해 왔으며, 동양의 전통적인 서지학 체계와 그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우리나라의 제지술과 인쇄술
2.1. 제지기술의 역사
동양에서 종이는 약 2000년 전 중국에서 발명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에 인접하고 교류가 활발했던 우리나라도 그 즈음에 종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610년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종이와 먹, 그리고 채색하는 방법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는 이미 제지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제지기술의 특징은 좋은 품질의 닥나무를 주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중국인에 의해 '백무지', '아청지'라고 불리는 종이를 생산했는데, 백무지는 고려 종이 중 흰 광택이 나는 종이이고 아청지는 파란색의 고려 종이였다. 또한 각 지방에 전문적으로 닥나무를 키워 종이를 생산하는 '지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고려는 11세기와 13세기에 전국적인 대규모 불경의 목판인쇄를 하기도 했으며, 1234년에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제지기술과 인쇄술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중앙에 '조지서'라는 전문적으로 종이를 만드는 관청을 두고 다양한 종류의 종이를 대량생산했다. 조지서에는 고위 관리 2명이 감독자로 임명되었고, 약 200명의 기술자와 직인이 배치되어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등록된 제지기술자의 수가 698명에 달할 정도로 제지 기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조선시대에는 저주지, 저상지, 계목지, 공사지, 관교지, 대호지, 소호지, 백면지 등 다양한 종류의 종이 규격이 있었는데, 이는 사용하는 사람과 용도에 따라 구분된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통해 우수한 제지기술을 발전시켜왔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국가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