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1.1. 「신약의 배경사」 저자와 출간 배경
김희성 교수가 2006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펴낸 「신약의 배경사」 저서는 신약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구약 성경의 시대적 차이와 관계를 이해해야 하며, 중간사를 포함한 신약의 배경사를 이해해야만 신약성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신약의 배경사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본서를 통해 사람들이 신약의 배경사와 초기 종말론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하고 신약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하게 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서울신학대학교와 신촌교회의 성서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과 요세푸스의 저서, 그리고 쾨스터, 보 라이케, 에두아르트 로제 등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참고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
1.2. 신약의 배경사 탐구의 필요성
신약의 배경사 탐구의 필요성이다. 신약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구약 성경 사이의 시대적 차이와 관계를 이해하고, 중간사를 포함한 신약의 배경사를 이해해야만 한다. 신약의 배경사는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도서를 통해 신약의 배경사와 초기 종말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 나아가 신약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진리를 올바르게 분별하게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유대 민족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사상과 종교 등을 탐구하고, 헬레니즘 사회의 정치, 문화, 종교 또한 다루어야 신약 배경사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이에 「신약의 배경사」에서는 정치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 종교적 배경을 주제별로 나누어 신약의 배경사를 설명하고 있다.
1.3.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신약 배경사의 시간적 범위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신약 배경사의 시간적 범위는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의 동방정벌부터 시작하여 로마-유대전쟁(AD 66-70)을 거쳐 유대의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바르 코흐바 항쟁(AD 132-135)까지 약 450년 동안이다. 저자는 이 시기에 걸쳐 유대 민족과 그들을 둘러싸고 그 지역을 지배했던 헬레니즘 사회의 정치, 문화, 종교가 신약성서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시간적 범위를 다루고자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원정 중 열병으로 회군 후 일 년 만에 죽으면서 그의 제국이 분열되었고, B.C 301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누스 왕조와 이집트, 리비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그리고 시리아, 페르시아의 셀류키드 왕조가 이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셀류키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에 대한 강제 헬라화 정책을 펼치면서 유대 민족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하스몬 가문을 중심으로 한 유대 독립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로마가 이 지역에 개입하면서 유대는 결국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헤롯 대왕 이후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분할된 유대는 다시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 지역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저항이 이어졌다.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가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바르 코흐바 항쟁(AD 132-135)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신약 배경사의 시간적 범위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벌 이후부터 유대의 완전한 멸망에 이르는 약 450년 동안이며, 이 기간 동안 유대 민족과 그들을 둘러싼 헬레니즘 세계의 정치, 문화, 종교의 변화와 대립이 신약성서 이해에 중요한 배경이 된다.
2. 본론
2.1. 정치적 배경
2.1.1. 알렉산더 대왕과 후계자 국가들의 주도권 쟁탈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를 포함한 동방원정을 통해 지중해 일대와 인도까지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원정 중 열병에 걸려 회군하였고, 회군한 지 일 년 만에 사망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제국이 분열되었다. B.C 301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누스 왕조와 이집트, 리비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그리고 시리아, 페르시아의 셀류키드 왕조가 다스리게 되었다. 이 가운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류키드 왕조 사이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이 일어났다. 이 두 왕조는 예루살렘 종교의 업무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세금을 감면해주었으며, 유대인 산헤드린을 통하도록 하였다. 5차 전쟁에서 셀류키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가 승리하였지만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12년 동안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후 셀류키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이집트 정벌 비용을 위해 대제사장직을 매관매직하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산을 강탈하여 강제 헬라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마타디아스라는 늙은 제사장의 저항을 시작으로 저항운동이 전개되었고, 그의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베오가 대제사장 직을 오용했던 메넬라오스를 제거하고 사독의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인 알키무스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유다가 죽고 요나단이 대제사장직을 넘겨받았으나 전쟁에 패배했다. 요나단의 동생 시몬은 예루살렘의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되었다.
2.1.2. 시리아의 지배와 유대의 독립전쟁
셀레우코스 왕가의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를 자행하자, 이에 분노한 하스몬 가문의 마타디아스라는 늙은 제사장이 저항을 시작하였다. 마타디아스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베오는 대제사장직을 오용했던 메넬라오스를 제거하고 정통 대제사장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유다가 전쟁에서 죽자 그의 동생 요나단이 대제사장직을 물려받았지만 전쟁에서 패배하여 죽게 되었다. 셋째 아들 시몬은 마침내 예루살렘의 독립 국가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윗 혈통이 아니면서도 제사장이자 이스라엘 통치자가 된 하스몬 왕가에 대한 불만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고조되었고, 율법에 엄격한 유대인들은 사해 바닷가 광야로 떠나가게 되었다. 이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