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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가 종료되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북을 점령하는 분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미소군정 체제는 당초 임시적 조치로 계획되었으나,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본 연구는 미소군정이 한반도 분단에 미친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군정 시기의 정책적 차이점과 이념적 대립이 어떻게 분단을 고착화시켰는지 살펴보고, 이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변화와 정치적 갈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기원을 명확히 이해하고, 분단이 한국사에 미친 장기적 영향을 평가하고자 한다.
1.2. 연구 범위와 방법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1945년 8월 해방부터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약 3년간의 미소군정 시기로 설정한다. 공간적 범위는 38선을 경계로 분할된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하되, 미군정이 실시된 남한과 소군정이 실시된 북한의 상황을 비교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연구 방법론적으로는 당시의 공식 문서, 정책 자료, 신문 기사 등의 1차 사료를 기반으로 한 문헌 연구를 주요 방법으로 채택한다. 또한 미군정과 소군정의 정책을 비교 분석하여 양 체제의 차이점과 그것이 분단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각 영역에서 나타난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분단 과정의 복합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2. 해방 직후 한반도 상황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35년간의 일제강점기가 종료되면서 한반도에는 심각한 권력 공백 상태가 발생했다. 일제의 총독부 체제가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행정, 치안,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통치 기구가 마비되었고, 이는 사회 전반의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 일본인 관리들의 철수와 함께 기존의 행정 시스템이 공백 상태에 빠지면서, 새로운 정치 세력들이 권력 장악을 위해 경쟁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권력 공백 상황에서 가장 먼저 조직된 것은 건국준비위원회였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이 조직은 해방 직후 치안 유지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며 임시적 통치 기구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건국준비위원회는 좌익 성향이 강했고, 우익 세력의 반발을 받으면서 전국적 통합 기구로 발전하지 못했다. 동시에 각 지역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지방 행정을 담당했지만,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