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천문학의 발전 역사
1.1. 고대의 천문학
1.1.1. 천체 관측의 역사와 중요성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천체를 관측해왔다. 고대인들에게 천체 관측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방향을 알기 위해 해의 위치나 별자리를 관측했으며, 계절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해 그림자의 변화와 별자리의 위치 변화를 관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달력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졌다. 동양과 서양은 천체를 관측하는 태도에서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서양은 태양과 달뿐만 아니라 행성의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동양은 별자리의 위치 변화에 더 주목했다. 희랍 시대부터 태양과 달, 행성의 운동을 관측하여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론을 고안해냈다. 이는 이후 약 1,000년간 유일한 우주론으로 유지되다가 16세기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태양중심설이 제창되었다.
중세에는 과학 발전이 정체되었는데, 관측된 자연 현상을 종교적 가치 기준에 맞추어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접한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확인했다. 이처럼 천체 관측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1.2. 달력 개발과 천체 운동의 주기성 이해
고대인들에게 천체의 관측을 통한 천문학적 지식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특히 농경 시대에는 파종 시기나 수확 시기 등을 알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 해 그림자의 변화나 별자리의 위치 변화 등을 관찰했다. 이처럼 천체의 관측으로부터 천체 현상의 주기성을 알 수 있었고 이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이를 체계적으로 만든 것이 달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의 운동이나 태양 운동에 주기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러한 주기성이 태음력이나 태양력의 기준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천문학이 발달하였는데, 실생활에 필요한 달력을 만드는 데 필요한 태양이나 달의 운동에 대한 관측은 주나라 시대부터 있었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고조선 시대부터 일식 현상과 행성에 대해 관측했으나 독자적으로 달력을 만들 수 준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고대인들은 천체의 관측을 통해 천체 운동의 주기성을 발견하고, 이를 달력 개발에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1.1.3. 동서양 천문학의 특징
동서양 천문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서양에서는 태양이나 달뿐만 아니라 행성 등 다른 천체의 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미 희랍 시대에 달력을 만들기 위해 태양과 달의 운동 외에도 행성의 운동을 정밀하게 관측하여 행성들이 태양이나 달과 함께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론을 고안해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한 이러한 우주론은 프롤레미에 의해 정리된 후 16세기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나 행성이 돈다는 태양중심설이 제창되기까지 1,000년 이상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유일한 우주론으로 유지되었다.
반면 동양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천문학이 발달하였고, 실생활에 필요한 달력을 만드는데 필요한 태양이나 달의 운동에 대한 관측을 주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조선 시대부터 일식 현상과 행성에 대해 관측했으나 독자적으로 달력을 만들 수준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것은 고려 시대에 이루어진 흑점 관측이며, 이 관측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 중 가장 체계적인 것으로 태양 활동의 변화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천체의 운동보다는 하늘에 어떤 별이 어느 자리에 나타나는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1.2. 중세 천문학의 암흑기
1.2.1.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지배
중세 천문학의 암흑기 동안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이 지배적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태양과 달, 그리고 5개의 행성이 지구 주위를 원운동한다는 체계였다. 이는 당시 천문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약 1,000년 동안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관측된 천체들의 복잡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각종 복잡한 가정들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원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원(epicycle)을 그리며 그 중심이 다시 큰 원(deferent)을 그리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이러한 복잡한 가정들은 천문학자들이 관측된 천체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실제 우주의 구조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지배는 중세 시대 동안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되었다. 당시 교회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신의 창조에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새로운 우주론의 제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제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이 오랫동안 수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천문학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였다. 관측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가정들을 도입해야 했고, 이는 우주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 중세 천문학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근대 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1.2.2.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태양중심설 대두
중세 시대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지배적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