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사회] 태국의 근대화 과정
- 최초 등록일
- 2005.07.09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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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국의 근대화 과정에 대해 쓴 글입니다. 이 리포트로 과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나름대로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신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내용과 자료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태국의 근대화 부분을 5가지로 나눠서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목차
1. 근대화로 나아가는 첫 걸음
(1) 문호개방정책과 태국사회
(2) 태국의 개혁과 영향
2. 분야별 근대화 과정
(1) 교육
(2) 사회
(3) 문학
(4) 외교
(5) 정치
3. 결론
4. 느낀 점
본문내용
라마 4세는 즉위하자마자 강경노선의 외교정책을 바꾸어 서양 강대국에 대하여 유화정책을 채택하고 자발적으로 서양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는 태국인과 직접 자유무역을 원하는 강대한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원활한 언어의 소통이 필수적임을 깨달은 라마 4세는 출가시절부터 영어를 스스로로 배웠고 당시의 왕족과 고위관료의 젊은 자제들도 이에 호응했다. 또한 라마 4세는 각국의 문화와 예법을 상호 존중한다는 원칙위에서 서양인들이 혐오하는 태국의 풍습과 의전에 대해 수정을 가했다. 서양인 사절단은 서양식 예법에 따라 인사하도록 하였고 태국인 관료들도 왕을 알현하는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상의와 하의를 갖추어 입도록 하였다. 이외에 배의 갑판 크기에 따라 내는 통행세(약 2m당 1,700바트)를 1,000바트로 낮췄고, 쌀의 수출을 허용하였다. 서양 선박에 한해 반드시 태국정부와만 거래한다는 조건으로 아편의 태국 내 반입을 허용하였다. 그리고 외국이 태국에 영사관을 설치하는 것을 허가하였다. 이러한 일련이 조치는 곧 있을 태국의 대대적인 문호개방에 대한 예방조치이자 충격완화조치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1856년 드디어 태국은 영국과 최초의 우호통상조약(바우링 조약)을 맺는다. 이는 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불평등 조약으로 영사재판권과 무역권의 상실 내지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조약의 체결로 인해 태국과 영국의 관계는 밀접한 우호관계로 전환되었으며 기존의 무역독점권과 재판권의 포기 대신 태국의 정치적 독립을 공고히 해 주었다. 또한 태국은 이 후 미국,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러시아,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등과도 이와 같은 내용의 조약을 맺게 된다. 이 조약의 체결은 태국 내에 정치적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참고 자료
http://www.thaistudies.or.kr/histiry/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