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의 흐름
- 최초 등록일
- 2002.11.05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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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원시 시대
삼국시대
저고리
남자저고리
여자저고리
바지
남자바지
여자바지
치 마
두루마기
머리모양과 관모
건
책
건귁
금관
절풍
조우관
화, 이
대(帶)
버 선
고려의 복식
남자복식
여자복식
조선시대
역사적배경과 복식의 특징
의복의 종류
남자복식
왕복
면복
원유관. 강사포
익선관.곤룡포
답호
첩리
평상복
서민복
남삼,심의
수복
관모
여자복식
저고리
치마
속옷
궁중예복
수복
머리쓰개
근세의 복식
남자 복식
백관의 복식
일반인의 복식
양복의 도입
여자복식
일반여성의 복식
양장의 착용
본문내용
조선시대
역사적배경과 복식의 특징
조선왕조의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 4년 무혈혁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고려와조와 조선왕조의 교차는 전반적인 사회체제의 변혁이 아니었고 다만, 왕조의 혁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사회체제와 구성에 고려시대와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고 , 그 문화도 고려사회가 나아가던 방향으로 나갔다.
조선시대는 모화사대주의가 철저하여 복식도 중국 명나라의 제도를 본받깅 급급하였다. 즉 백년 가까이 원의 복속국이었던 고려는 명이 중국에 새로 서게 되자 공민왕대에 관복사여를 청하여 이등체강의 원칙아래 면복과 원유관을 사여받은 이후 조복,공복, 편복등 많은 관복사여를 청하여 모방과 연구 끝에 세종 8년에 관복이 완성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의 황태자복과 우리의 왕복이 같았으며 우리나라 왕은 황제의 칭호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황색 옷도 입지 못하였다. 사여받은 관복이 크다해도 고치지 아니하고 착용하는 것을 예로 생각하였다 하니 그 때당시 왕조는 사대주의적 사상이 골수에 파묻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역시 모든 문물제도는 명의 풍속을 따랐으며 국왕이 즉위할 때마다 명의 사여를 통해서 제복,조복, 공복, 상복등을 습용하여 왔다. 백관복도 제복, 조복, 공복, 상복이 있었다. 관의 종류에는 관,립,건으로 대별할 수 있고, 관모에 속하는 두식에는 망건, 탕건, 관자가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