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헤이안시대
- 최초 등록일
- 2002.10.21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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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라 ·고려와의 교류】
【헤이안 시대의 외교적 특징】
【헤이안 시대의 문화적 특징】
【헤이안 시대의 정치적 상황】
【헤이안 시대의 중요연표】
* 자료출처 *
본문내용
【헤이안 시대의 정치적 상황】
헤이안시대가 되자 쇼우엔(莊園:나라시대-헤이안시대에 걸쳐 있었던 귀족, 신사, 절의 사유지)은 더욱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다이카개신으로 공적을 쌓은 후지와라(藤原)씨는 특히 많은 莊園을 차지하여 가장 유력한 귀족이 되었다. 후지와라씨는 딸을 천황과 결혼시키고, 그 천황의 아들이 후일 다시 천황으로 등극할 때, 천황이 어리면 섭정을 했고, 성인이 되어도 관백(關白)이라는 최고 중직을 맡아 정치를 했다. 후지와라씨가 수도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지방에서는 무사(武士)들이 세력을 넓혀 갔다. 무사라고 하는 것은 지방에서 자신이 소유한 많은 토지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무사는 유력한 호족을 중심으로 하여 무리를 이루었으나 그 중에서 특히 힘이 강했던 것이 겐지(源氏)와 다이라(平氏)였다. 11세기 중반이 지나, 후지와라씨의 독점적인 힘이 약해지게 되었고, 시라카와(白河)천황은, 천황의 자리에서 내려와서도 상황(上皇)이 되어, 원(院)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원정(院政)을 계속하며, 정치의 실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섭정이나 관백은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다. 12세기 중엽, 상황과 천황의 대립이 일어나고, 그것이 후지와라씨 일족의 싸움과 연결되어, 각각 겐지씨와 다이라씨의 무사를 자기 편으로 하여 수도를 중심으로 싸우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