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후기 여항인의 교육양상과 그것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 고찰하는 것 을 목적으로 하였다. 조선후기 여항인들은 사대부가의 자제들을 비롯하여 여항인 과 하층민 등 광범위한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형태는 여항 인에게는 書堂방식의 강학이, 사대부를 ..
▷위항문학인 정래교는 어떤 인물일까? 정래교는 중인의 신분으로 낙하시사(洛下詩社)활동을 했던 위항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위항문학의 형성과 전개 -정래교를 중심으로 1.들어가며... ... 따라서 피지배층인 민은 항상 경제적으로 궁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래교의 논리다.
정래교 역시,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가 천기를 얻어서 당시(唐詩)와 같이 맑고 곱게 되었다고 평했다. ... 특히 정래교와 임광택은 하층민의 궁핍한 생활을 작품화하여, 사대부 시인의 현실주의적 시풍에 육박하는 문학적 성취를 거두었다. ... 그러나 그 저변에 깔린 의식과 실제 창작에는 사족층의 시와 차별되는 관심사와 감성이 담겼다. 17세기의 홍세태에 이어 18세기 전·중반의 여항시인으로는 정래교, 임광택, 이언진이 명성이
정래교 (鄭來僑, 1681~1759) ① 생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윤경(潤卿), 호는 완암(浣巖). ... 또한 정래교는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서문을 지었으며, 傳을 통해서 여항인들의 한시와 시조가 사대부들의 한시와 시조와 동등한 가치를 입증하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정래교는 그의 「墓誌銘」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숙종 임술년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다. ... 이와 같은 정래교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洪禹載는 「東?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書僧 朝三과 진사 성완창작에 동참하는 것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의도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