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되어 귀양을 가게 되면서 일어남 그 일 때문에 추사 자신도 일시 관직에서 밀려났으나 순조의 배려로 다시 복귀 그러나 풍양 조씨의 득세에 다시 반격을 가한 안동 김씨가 10 년 만에 윤상도 ... 옥사를 다시 거론하여 이번에는 그 자신이 연행길은 커녕 9 년에 걸친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게 됨 추사 개인으로서는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일이었지만 이 귀양으로 하여 우리가 오늘날 ... 현감 등의 치적을 평가하여 상과 벌을 내리도록 건의 김정희의 사회적 몰락 학문과 벼슬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추사에게 닥친 최초의 좌절은 1830 년에 그의 아버지 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자신의 아버지가 낀 과거의 윤상도 옥사건이 조정을 뒤 흔든 것은 그 당시 집권하게 된 안동 김씨 세력 때문이었다. ... 그 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헌종이 즉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과거 윤상도의 옥사 사건이 재론이 되었다. ... 그러다 1830년 그의 아버지인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에 배후조종혐의로 고금도에 유배되게 되는데, 순조의 각별한 배려로 곧 귀양살이에서 벗어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복직이 되고,
그러나 헌종이 즉위하자 다시 윤상도 사건으로 인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 하지만 18 30년 생부 김노경이 윤상도의 옥사의 배후조정혐의로 위기가 왔지만 순조의 특별배려로 김노경이 귀양에서 풀려나고 1836년에는 김정희가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옛날 해서(海西)의 처녀가 사람을 죽인 것이 이 옥사와 같았는데 감사가 사유(赦宥)하기를 청하니, 선왕께서 포양하여 하유하시고 곧 그대로 따르시었다. ... 지난날에 장흥(長興)의 신여척(申汝倜)을 석방한 것은 대개 윤상(倫常)을 돈독하게 하고 기절(氣節)을 중하게 여기는 데에서 나왔는데 지금 은애를 용서하는 것이 또 이와 같다.
윤상도옥사로 쉰다섯 살에 제주에 위리안치, 예순세 살에 방면, 예순여섯 살에 진종조예론의 배후조정자로 다시 북청에 유배되어 예순일곱 살에 방면, 과천 과지초당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일흔한 ... 추사는 그의 나이 55세가 되던 1840년, 헌종 6년 경주김씨 세력을 견제한 안동김씨의 시기로 인해 윤상도의 옥사 재론에 연루되어 역모 죄로 몰려 제주도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예를 들어 “블랙홀보다 검은의 완당이 정쟁에 휘말리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윤상도(尹尙度) 옥사사건이다. 1830년 대관을 지내던 윤상도와 그의 아들 윤한모가 상소문을 올린 일이 있었다 ...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 하여 완당의 부친 김노경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된 것이다. 10년이 지난 후, 안동김씨 김홍근이 윤상도 부자의 죄를 다시 논할 것을 상소했다. ... 추사 선생은 윤상도 부자의 상소문을 초안하였다는 허위진술로 목숨만을 겨우 건진 채 제주도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온갖지지 않았고 따라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으로 유배되었다.(5운데 기둥이 되는 획은 거칠어야 하고, 나머지는 고와야 한다. ... 의정부 검상이 되었고, 51세 때 성균관 대가성을 거쳐 7월에 병조참판이 되었다.헌종5년(1839년) 을축년 5월에는 형조참판으로 임명되어 순조롭게 벼슬길에 오르다가 헌종 6년에 윤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