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琢은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이자 관료였다. 그는 이황에게서 心學의 요체를 배워 스승을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던 조선 유학의 心學化 현상 의 한 가운데에서 활동하였다. 조식으로부터는 壁立千仞의 기상을 배워 불굴의 절의를 실천하였다. 그의 정신 세계의 원천은 ..
약포(藥圃) 정탁(鄭琢) 21조=술한잔하조 목 차 1.정탁은 누구인가? ... -역사적 평가 1 약포(藥圃) 정탁(鄭琢)은 누구인가? ... 2.가족 관계와 성장 과정 -정탁의 조상에 대한 조사(청주 정씨) -가족관계 및 성장과정 -자녀에 대한 조사(청풍자 정윤목) 3.공부와 학문 -사제관계 -저서
류성룡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나 제자는 모두 남인으로 이어진다. 368인의 문인 가운데 정유일과 매암 이숙량, 약포정탁 그리고 김취려도 그의 문인이었으며, 한강 정구는 조식의 문하에서 ... 이황의 학풍을 따른 사람들은 당대의 유성룡과 정구, 김성일, 이덕홍, 조목, 기대승, 김부륜 그리고 금응협, 구봉령, 이산해, 정탁, 정유일, 조호익 등을 위시한 260여 인에 이르렀다
이 노래는 약포정탁(1526~1605)이 권호문에게 은거를 청산하고 “겸제”할 것은 청하는 글을 보냈을 때 답변을 대신하여 보낸 것으로 “은거구지” “독선기신”의 가치와 보람을 선언 ... 즉 송암은 벼슬을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학문을 하였던 자장을 혐오하지만, 가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를 추구했던 원헌은 적극 따르겠다고 하여 정탁의 천거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있다. ... 「독락팔곡병서」에 나타난 권호문의 뜻 최현재는 의 서문을 근거로 하여 과 함께 그 서문은 정탁의 벼슬 천거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여 지어진 것이며, 그 내용 역시 벼슬 천거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