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결정적인 항전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승장 김윤후(金允候)였다. ... 민족의 저항 역사에 기록된 승장 김윤후(金允候) 목차 서론-침략과 저항의 역사 본론 1.무인정군의 미몽(迷夢) 2.절규하는 농민과 노비들 3.처인성(處仁城)의 활시위 4.충주성(忠州城 ... 따라서 이는 김윤후(金允候)가 용감한 장군이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고려 때 처인성이 위치했던 경기 용인시 이곳 처인성에서 몽골군 총사령관인 살리타의 목숨을 노리던 인물이 있었는데 이가 바로 고려 후기의 승장(僧將)이었던 김윤후이다. ... 고려 대몽항쟁의 영웅 김윤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김윤후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 이 의병들에 뇌리에는 고려 영웅의 김윤후와 처인성 승전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김윤후, 그는 위기의 순간 조선의 의병들이 기억하고 있까?
즉, 고려시대 승장(僧張)이었던 김윤후의 호국정신이 조선시대로 이어져있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김윤후가 승장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 전투로 인해 김윤후는 고려정부로부터 섭랑장(攝郎將)을 제수 받게 된다. 왕이 김윤후의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을 제수하였다. ...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김윤후는 고종 때의 사람으로 일찍이 중이 되어 백현원(白峴院)에 있었다.
고려사의 기록으로는 천 하무적 몽고 대장이 충주를 함락하지 못하고 퇴각하자, 승리의 땅이라고 해서 충주를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시켰던 곳인데, 당시의 승장이 김윤후 승병대장이란 기록이다 ... 만약 고려사에 나타나는 충주산성에 이 성이라면 몽고군을 물리치고 이곳을 사수한 김윤호 승장과 충주백성들의 우국충정이 이곳을 수호하여 충주성 이남의 국토를 수호한 장엄한 유적지라고 생각하게
처인성 전투의 경과 살리타이 , 광주성 공격 실패 , 용인 지역 공격 개시 처인성은 승장 김윤후를 중심으로 승병 100 여명 , 피난민 1000 여명이 방어 살리타이가 전장 탐색 중에 ... ‘활’을 아이템화 주역을 이용한 마법 구성 역사 속의 처인성 전투 (1232) 선악 대결구도를 위한 과장 터키군을 괴물 ( 오크 ) 처럼 묘사한 그림 김윤후의 ‘ 활 ’ 에 스토리 ... 부여 645 양만춘의 활이 발해의 국보로 남아 전승됨 926 백두산 폭발과 함께 발해 멸망 1107 1231 김윤후가 습득 윤관이 여진정벌 중 입수 주역을 이용한 마법 구성 8X8
한편, 승장 김윤후는 처인성 동문 밖 300m 지점 언덕(속칭, 살장터)에 저격병 수십 명을 매복시켜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었다. ... 살리타이를 죽인 공고려 조정에서는 살리타이를 사살하는 데에 큰 공로를 세운 승장 김윤후의 공로를 표창하여 그에게 상장군의 직위를 수여하였다. ... 따라서 승려인 김윤후의 공을 높이 세운다면 국가 이념인 유교보다 불교를 치켜세워주는 격이 되어 김윤후에 대한 언급을 꺼렸을 것이다.
이때 처인성에는 용인을 비롯한 인근 각 고을에서 피난온 피난민 1000여명과 승장 김윤후를 비롯한 100여명의 승병이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 한편, 이와는 별도로 궁술을 기반으로 하여 김윤후를 캐릭터화 한 콘텐츠도 있었는데, 네오그라프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이 그것이었다. ... 여기에는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격살한 그의 ‘활’을 매개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활에 수백년간의 스토리를 집어넣어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진 무기로 형상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1104년에는 승군이 항마군이라는 명칭으로 관군에 편입되고, 1232년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승장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이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010년에 거란이 침략했을 때 승장(僧將) 법언이 9,000여명의 승병을 이끌고 서경전투에 참가하여 승리하였다.
김윤후가 처인성(=용인)에서 살리타 사살 ⓒ 3차 침입(1235년) 문화재 손실(대구 부인사 대장경, 황룡사 9층 목탑) ⓓ 4·5·6차 침입 인명의 손실과 국토의 황폐화 ㉢ 몽고의 ... 내정간섭을 위해 다루가치를 설치함 ⓑ 2차 침입(고종, 1232년) ㉧ 강화 이후 무리한 조공 요구 ㉧ 최우는 수도를 강화로 옮기고 몽고와 전쟁에 대비함 ㉧ 살리타 재차 침입함 ㉧ 승장
없이 물러감 이후 무리한 조공 요구와 간섭에 집권자 최우는 장기 항전을 결심하고 수전에 약한 몽고족의 약점을 이용해 강화도로 천도했으며, 이어 2차로 침입한 몽고의 장수 살리타를 승장 ... 김윤후가 사살하는 등 고려의 대몽항쟁은 성과를 거둠 일반 민중, 특히 일반 군현보다 천대받던 부곡지역의 주민 그리고 천민인 노비까지 용감히 싸워 충주등지에서 승리 그러나 전후 7차에
고려 고종 19년 (1282)에는 몽고의 제 2차 칩입이 있었는데 그때 처인성(지금의 용인)에서 승장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이를 맞아 싸운 전투인 처인성 전투 그림과 사진도 있었다. ... 집에 와서 찾아본 내용에 의하면 이분은 영규 의승장 분이셨는데 그 옆쪽의 전시실 바닥에는 전사자 명단이 있었다.
다음으로 처인성 전투의 기록화가 있었는데, 이 전투는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제2차 침입 때 처인성에서 승장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이를 맞아 크게 격퇴시킨 전투로 특히, ... 몽고군이 처인성을 포위하여 공격하자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향해 화살을 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