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1936년 북방의 군벌장학량이, 공산당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찾아온 장개석을 감금했다가 극적으로 석방한 서안사건이 발생한다. ... 장개석 군대를 피해 장정의 길에 오른 중국공산당은 1935년 8.1선언을 통하여 민주사변 후 극심해진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한 항일민족통일전선을 제창하였다. ... 하지만 국민당의 개조를 통해 그들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중공당의 방침은 손문의 생존시에는 실현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의 국민당의 실권이 장개석을 비롯한 우파에 의해 장학되면서 난관에
서안사변?을 일으켰다. 주은래는 중국공산당 전권 대표에 임명되어 진방헌, 엽검영 등과 함께 서안으로 가서 장개석과 협상을 벌였다. 마침내 장개석으로부터 ? ... 4운동으로 불리는 학생시위가 베이징에서 크게 일어나자 천진으로 돌아와 1920년 체포될 때까지 학생 시위에 적극 가담한다. 1920년 가을에 석방되어 근로장학생제도의 일환으로 떠난 ... 없는 부하에 불과했던 모택동을 홍군 사령관으로 추천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그는 이후 자청해서 2인자의 길을 걸었다. ★ 주은래와 국공합작 ★ 1936년 12월, 당시 섬서성 서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