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의 큰 줄기 박동실 명창이 김소희, 박귀희, 한애순 등 쟁쟁한 명창들을 길러낸 곳이다. 박동실 명창의 월북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리꾼들의 풍류가 넘치던 곳이다. ... 아주 적은 자료이지만 명창 박동실 님에 대한 기록이 있어 비문과 함께 짧게 나마 적어본다. ... 명창 박동실의 기념비(A Memorial of Master Singer Park Dong Sil) 를 둘러보고...
박동실에 의해 창작된 열사가는 1950년대 이후 한국전쟁 당시 박동실이 월북하면서 전승이 잠시 약화되었다가, 그의 제자인 한승호, 장월중선에 의해 계승되었고 장월중선 명창의 딸인 정순임 ... ‘유관순 열사가’는 해방을 전후한 시점에 박동실에 의해 창작되었다. ... 박동실이 열사가의 사설까지 창작했는지는 많은 이설들이 있으나, 작곡을 한 것은 분명해보이며 열사가를 주도적으로 창작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박동실은 김채만의 소리를 이으면서, 동편소리를 섞어 독특한 맛을 냈다. ... 하지만 박동실․공기남 등 광주소리권 출신 명창들이 월북한 뒤 광주소리의 전승기반이 매우 약화됐다. ... 광주소리는 ‘광주소리’, 서편제 ‘광주판’, ‘광주판 서편제’로 불려왔으며, 이날치-김채만-박동실로 전해진 소리를 일컫는다.
박동실은 1950년 전쟁이 일어나자 안기옥의 예를 월북의 길을 선택하였다. 박동실의 월북은 여러 정황을 볼 때 자발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 이는 이미 박동실 등의 월북 연장자들에 의해 시도된 것이어서 창극이 가지고 있는 극술과 상당한 정도 맞닿아 있다. ... 그러나 이것이 1950년대 중반까지는 창극의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1950년대 들어 북한의 창극 변화에 있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는 조상선과 박동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