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주(李胄)·신광한(申光漢)·김정(金淨)·나식(羅湜)·김인후(金麟厚)·임억령(林億齡) 등은 수준 높은 당법(唐法)으로써 당시의 시단을 다채롭게 하였다. ... 김창흡(金昌翕)·이광려(李匡呂)·신광수(申光洙) 등이 각각 서로 다른 처지에서 자기 시를 썼으며, 후사가(後四家) 가운데에서 이덕무(李자수·구수 등에 모두 엄격한 규정이 있다. ... 고려시대의 김극기(金克己)와 이규보(李奎報) ·홍간(洪侃) ·이숭인(李崇仁) 등의 칠언고시와 한말(韓末)의 황현(黃玹)의 작품도 대작으로 꼽힌다. (2) 근체시 절구의 경우 오언절구
그리고 이주(李胄)·신광한(申光漢)·김정(金淨)·나식(羅湜)·김인후(金麟厚)·임억령(林億齡) 등은 수준 높은 당법(唐法)으로써 당시의 시단을 다채롭게 하였다. ... 김창흡(金昌翕)·이광려(李匡呂)·신광수(申光洙) 등이 각각 서로 다른 처지에서 자기 시를 썼으며, 후사가(後四家) 가운데에서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4언(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자겸과 척준경은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척준경이 일이 급하므로 앉아서 기다릴 수만 없다고 하면서, 시랑(侍郞) 최식(崔湜) 등 수십 명을 거느리고 궁성(宮城)을 ... 합병할 수 있을 것이요 금국(金國)이 폐백을 가지고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36국(國)이 다 신첩(臣妾 신하(臣下))이 될 것입니다. ... 이때 묘청 일파가 칭제건원(稱帝建元)과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종도 소극적이고 신하들의 반대도 많아 진척이 없었다.
오식吳湜 : 제주의 지방행정구역 개편 요청(중앙 정부의 지배권 강화) a. 소송이 끊이지 않음 b. 산남 백성의 관아 왕래 불편 발생 c. 관아 왕래를 위해 많은 시일 소요 d. ... 사장蛇場(말의 수효 파악 장치) 표현 - 김녕관굴金寧觀窟 : 김녕에서 말을 희 정부의 파랑도 탐사 - 이승만 정부의 파랑도 탐사 A. ... 김만희(김해 김金씨 좌정승공파)?이미(경주 이李씨 익제공파)? 변세청(원주 변邊씨)?허손(양천 허許씨) C. 조선 초 왕자의 난 : 전라감사 강영(신천 강康씨) D.
이행(李荇)·박은(朴誾)·정사룡(鄭士龍) 등 이른바 해동(海東)의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출현을 보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며, 다른 한편 신광한(申光漢)·나식(羅湜)·김인후(金麟厚) ... ·김부식(金富軾)·정습명(鄭襲明)·김부의(金富儀)·고조기(高兆基)·최유청(崔惟淸)·정지상(鄭知常) 등을 들 수 있다. ... 때문에 통경명사(通經明史)와 같은 유자들의 일상적인 글공부는 곧 문학수)·김시습(金時習)에 이르러 조선왕조 시단의 터전이 굳혀진다.
鄭士龍 중심으로 하는 강서시파가 등장하는 시기로 申光漢, 羅湜, 金麟厚 등이 활동하였다. 선조 시대를 지나면서 정치의 혼란 속에도 시단은 더욱 다채롭게 이어졌다. ... 유방선에 이어 서거정, 金宗直, 金時習 등이 조선 초기 시단을 이끌어 나갔다. 宣祖때에 이르러 한시가 다양하면서도 한층 더 빛을 발하던 시기이다. ... 그리고 김존중, 정함등 으로부터 비방을 받자 그로 인해 병을 얻게 되었고 金存中이 대신 직책을 맡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申千湜, 1998 ?李齊賢의 學問과 思想? 明知史論 9. 馬宗樂, 2000 ?元 干涉期 益齋 李齊賢의 儒學思想? 한국중세사연구 8. 김인호, 2001 ? ... 아울러 이제현은 行軍記 에서 김취려가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은 점을 君子의 마음씀이라 하고, 또한 당시 몽고에게만 절을 하고 金에는 하지 않아 尊王의 義를 밝혔다고 평가하였다.
이상과 같은 절차에 따라 1519년 4월 13일 천보된 120인의 후보자들을 근정전에 모아 시험한 결과, 장령(掌令) 김식(金湜), 지평 박훈(朴薰) 등 28인이 선발되었다. ... 그밖에 김구(金絿), 박세희(朴世熹), 박훈(朴薰), 홍언필(洪彦弼), 이자(李자), 유인숙(柳仁淑) 등 수십명은 귀양가게 되고, 이들을 두둔한 안당과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소월(素月)은 필명이다. - 1915년에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5월 오산(五山)학교에 입학하였다. ... 당시 조만식이 오산학교의 교장이었으며, 은사 가운데 김억(金億)이 있었다. 이때 한시민요서구 시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며 시작(詩作)수업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특히 김억(金億)은 소월의 시에 많은 영향을 준 스승이다. - 1916년 15세 때 홍실단과 결혼하였고, 이후 2남 4녀를 낳았다. - 1920년 19세 3월 《창조》에 〈낭인(浪人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全湜, 以戶曹言啓曰, 天使求請雜物中, 虎皮二十張, 豹皮一百張, 啓下矣。 ... )·김경의(金京儀)와 그 아내 기질이(其叱伊)와 봉산(鳳山) 사람 이실(李實)과 수안(遂安) 사람 이실(李實)을 체포하여 왔다. ... 그 례를 들 만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면, 사료5) 성종 236권, 21년(1490 경술 / 명 홍치(弘治) 3년) 1월 4일(정사) 금제사(擒制使) 이계동(李季仝)이 김막동(金莫同
그리고 조광조의 세력이었던 김정(金淨), 기준(奇遵), 한충(韓忠), 김식(金湜) 등도 귀양을 간 후 사약을 받고 죽거나 자결하였다. ... 정책과 세조 때의 정책을 이어받아 조선을 이끌어 가게 된다. ② 사림파의 형성 사림파는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에 반대한 길재(吉再), 정몽주(鄭夢周),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김숙자(金叔滋 ... 그리고 윤임의 세력이었던 이휘(李煇), 나숙(羅淑), 나식(羅湜), 정희등(鄭希登), 박광우(朴光佑), 곽순(郭珣), 이중열(李中悅), 이문건(李文), 이덕응(李德應) 등이 사형이나
所贈金玉, 分毫不受。 소증금옥 분호불수 分毫 [f?nhao]:1) 극히 적은 분량 2) 아주 미세한 양 3) 아주 미세하다 준 금과 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 :唐 皇甫湜 空? [k?ngguo]:헛되이 지내다 ?? [ch?tan]:1) 한담하다 2) 잡담하다 3) 쓸데없는 말을 하다 능공자가 웃으면서 말한다. “좋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