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본신사후당 내부촉후 전미지상 곡위효력 가비가탄 조계량은 본래 신하로 후당을 섬기다 촉에 이른 뒤로 오로지 맹지상에게 아부하여 굽혀 힘을 쓰니 비루하고 비탄스럽다. ... 지상내명초정제제 택일등위 국호촉 개원명덕 帝制: 제왕이 정한 제도 맹지상은 처음 황제제칙을 정해 날짜를 선택해 황위에 오르며 국호를 촉이라고 하며 명덕으로 개원했다.
望蜀;농 땅을 얻으면 촉나라까지 갖고 싶다 다음해에 당나라 조정에서 상서인 노문기와 예부낭중인 여기를 파견하여 맹지상을 동서천절도사 촉왕에 책봉하니 이로부터 맹지상은 등롱망촉으로 더 ... 力上言 다음해는 당나라 군주의 장흥 원년으로 맹지상은 다시, 令張公鐸上前救應。 ... 공탁부하 양족예기 일경지상지휘 취마돌출 대호이진 장공탁 부하는 예기를 충분히 길러 한번 맹지상의 지휘를 받아 갑을 갑자기 돌파해 나와 크게 호통치며 진격했다.
맹지상을 촉왕으로 봉하였고 다음 해 맹지상은 황제라 칭하며, 국호를 촉이라 하였다. ... . - 후촉(後蜀) : 전촉 멸망 후, 후당은 맹지상(孟知祥)을 서천절도사로 임명하였다. ... 맹지상은 관리의 공무집행 체계를 정리하고 과세를 감소하여 사회를 안정시킴으로써 국력이 커졌다. 923년에는 동천절도사를 죽이고, 동천 지역까지 겸하여 관할하였다. 933년, 후당은
후촉(後蜀) [925-965] 맹지상(孟知祥)이 건립하였다. 맹지상은 하북 형주(邢州) 출신으로 후당 이극용의 조카딸의 남편이었다. ... 전촉이 멸망하자 후당은 맹지상을 파견하여 서천(西川)절도사에 임명하였다. ... 맹지상은 촉에 들어간 후 사람을 잘 선택하고 사졸의 훈련에 주력하여 세력이 점차 커갔다. 932년 동천절도사 동장(董璋)을 살해하고 전촉의 관할 지역을 회위민정책과 폐단제거조치를 취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