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論 儒學은 '사람에게 필요한 學文으로서 實學을 뜻하기도 한다. 학문이란 무릇 그것이 理論的인 사상체계 일지라도 사람을 실질적으로 이롭게 하는 사상인 實學일 때 意義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학문 사상은 보다 實質日用的인 것에 중점을 두어야 된다는 意味이기도 ..
아는 것[知]과 실천하는 것[行]은 과연 별개의 문제인가, 아니면 동일한 문제인가?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동서양 철학사에서 끊임없이다뤄온 문제이다. 동양철학에 있어서 지행 개념에 대해 가장 많은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은 양명의 ‘지행합일설’이다. 양명은 주..
이 때 들어온 양명의 글은 그의 어록을 서애가 기록한 『전습록』이다. ... 이후, 주자학의 회의를 느끼고 양명학으로 전향한 미와 싯사이가 『표주전습록』을 지으면서 일본양명학의 중흥을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1550년에는 조선의 지배적인 유학사상인 주학의 전성기를 맞았고, 1556년에는 학계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이 양명학설을 배척하는 논변을 하자,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의 저술 가운데 천명도설과 천명도설후서, 고봉 기대승과의 8년 간에 걸친 사단칠정논변, 주자서절요, 자성록, 전습록논변, 무진육조소, 성학십도 등은 한국유학사상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 이러한 풍토를 깬 것이 사단 칠정 논변이다. ... 논변이 시작될 무렵 퇴계는 대사성까지 지낸 59세의 대가였던 데 비하여 고봉은 갓 과거에 급제한 33세의 소장학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황은 양명학을 반대하기 위하여 특별히 전습록논변(傳習錄論辨)을 저술하였다. 이 황은 전습록논변에서 네 개 부분에 걸쳐 왕 양명을 비판하였다. ... (퇴계집 권41 전습록논변) 이 황은 둘째 부분에서 사물의 이를 개개 사물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심에서 찾으려고 한 왕 양명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 (퇴계집 권41 전습록논변) 이 황은 셋째 부분에서 진리를 사물에 대한 궁리(窮理)에서 찾는 것이 아니목표는 실천도학과 착한 사람을 만들어 인간의 도덕과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데 있다
대한 「전습록논변(傳習錄錄辨)」등이 그것이다. ... 퇴계 이황의 유학사상 -사단칠정 논변과 퇴계의 성리설(리기론 및 심성론)- 1) 생애와 저술 이황(李滉;1501~1570)은 이이(李理)와 함께 한국 성리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기대승과의 사칠논변, 화담(花潭) 徐敬德)에 대한 「비이기위일물변증(非理氣爲一物辨證)」, 연방(蓮坊) 이구(李球)에 대한 「심무체용변(心無體用辯)」,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