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각은 오행의 정영(精英)한 것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이치는 인의예지가 되며 지각의 발현은 인의예지의 작용이 된다(한원진, 남당집 권29, 논성동이변 ). ... 이는 한원진의 『남당집』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 ... 인물성동이론의 대표 학자인 한원진은 이들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인물성 동론의 대표 학자인 이간은 그와 반대로 같다고 주장함을 시작으로 성리학계의 주요 논쟁이 되었다.
-10주차 발표 자료- 한국철학사 - 주 제 - 인물성동이 논쟁 - 이간, 한원진 - 순 서 - 1.동론과 이론의 논리구조 2.외암 이간의 인물성론(人物性論) 3.남당 한원진의 인물성이론 ... 인물오상지성이론(人物五常之性異論) 남당의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에 관한 견해는 남당의 존재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 그런데 남당은 이 인기질(因氣質)한 ‘성’은 본연지성이라 할 수도 있고 기질지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로 불리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외암 이간(1677~1727)이 가장 뛰어나 江門爭論의 장본인이 ... 이간과 한원진의 未發心體善惡論 비교 Ⅲ. 人物性同異論의 비교를 통한 현실 긍정의 이론----- 16 1. 巍巖 李柬의 사상에서 보는 현실 긍정의 이론 2. ... 이간과 한원진 양측의 性槪念 자체가 相異하게 규정되었고, 어느 쪽에서도 상대측의 개념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고 있음을 비추어 볼 때, 이 논쟁은 전혀 합의 될 수 없는 논쟁은 아니었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로 불리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외암 이간(1677∼1727)이 가장 뛰어나 강문쟁론(江門爭論)의 ... 조선후기 노론계통의 학자들사이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性)이 같은가 다른가를 놓고 벌였던 논쟁(人物性同異)으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1682~1751)의 ... 그러나 나중에 남당이 찾아와서 자기의 의견을 자세히 설명하자 수암은 이번에는 남당의 설을 인정하였다.
정사 뒤쪽에는 1906년(광무 10)에 세운 후성영당(後聖影堂)이 있는데 주자(朱子),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한원진(韓元震)의 모사본 에게 글을 배웠고 11세 때에 남당( ... 南塘) 한원진(韓元震))의 학통을 계승한 어당(? ... (1682~1751)은 조선의 학자이며,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이다.
율곡 이이가 견지한 리의 균형을 남당 한원진은 한발 더 나아가 ‘기는 유위(有爲)’, ‘리는 무위’ 라는 전제를 고수하여 리=기에 의해 실질적인 제약과 제한을 받는 존재로서 기에 따라 ... 성리학이 발달한 명나라는 우리가 존중해야 하나, 우리를 짓밟은 오랑캐는 인간 이하의 동물과 같다는 사상에 따라 남당 한원진 과 외암 이 간 으로 대표되는 논쟁이 시작되었으나 실제로 ... 이간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하고, 한원진은 다르다고 함으로써 서로 공박하였다.
한원진은 이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시작하였다. ...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불리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 서도 남당 한원진과 외암 이간이 가장 뛰어나 강문쟁론(江門爭論)의 장본인이 된다.) ...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人性과 物性의 규정문제로 확대되었다. 18세기 초엽 조선조가 후반기에 접어들 무렵 율곡 계통의 학자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제자인 외암 이간과 남당
이러한 수암의 인물성 이론의 대답을 가지고 그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호락 논쟁이 전개되는데,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 (南塘) 한원진(韓元震)과 그들을 지지했던 인물들이 충정도 지방에 살았던 데서 연유한다. ... 남당은 이 기질지성을 본연지성으로 보고, 이는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본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로 불리우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외암 이간(1677~1727)이 가장 뛰어나 江門爭論의 장본인이 ... 人性과 物性이 같은가 다른가의 보편논쟁에서 동일한 본성을 놓고 남당은 다르다고 하고 외암은 같다고 한다. 3. ... 한원진이 지은 (시동지성)에서 인물성 외암이나 남당은 모두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 있는 사람들로서 기호지방인 충정도 사람이다.
그 중에서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은 특히 유명한데 이들이 사람과 다른 생물의 본성이 같은가? 다른가? 그리고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선한 것인가? ... 또한 본연지심(本然之心)과 기질지심(氣質之心)은 서로 자리가 다르고 때가 다르다고 하여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 남당집 卷11 ?의답이공거? ... 이간은 사람과 다른 생물의 본성은 같고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 선하다고 하는 주장을 하였고 한원진은 본성은 다르고 또한 선악이 모두 있다고 하였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불리는 8인의 학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외암 이간(1677∼1727)이 가장 뛰어났다. ... 본격적인 토론은 1712년 이간이 스승인 권상하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未發)의 마음이 순선(純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이를 수긍하면서 미발에 선악이 있다고 하는 남당 한원진의 ... 따라서 기를 달리하는정통과 성질에 따른 것으로 기의 차이에 따른 외양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2) 한원진의 기본입장 한원진은 성삼층설(性三層說)로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였다
하여튼 이 두 학자는 급기야 그들의 스승인 수암 권상하에게 이 문제의 해결을 청하기에 이르렀는데 수암은 율곡학파의 본래설대로 남당 한원진의 설이 옳다고 결론을 내렸다. ... 이간과 한원진의 대립은 이간이 인물성의 상동과 미발의 심체가 순수하게 선하다는 입장인데 대해서 한원진은 인물성의 상이와 미발심체 역시 선악이 함께 한다는 입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 이에 대해 인물성상이를 주장했던 권상하 한원진을 비롯해서 이들의 입장을 지지했던 병계 윤봉구, 매봉 최징후등은 모두 충청도에 거주하였으므로 - 이들은 지방에 거주하면서 강학에 힘썼던
그 중에서도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과 외암 이간(巍巖 李柬)이 가장 널리 알려진 학자들로서 이 두 학자들이 논변을 야기한 주인공이다. ... 당시 남당은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 데 반하여 외암은 서로 같다고 주장함으로써 견해의 대립을 보였다. ... ◎ 한원진의 견해 - 기질지성도 역시 性이며, 性은 ‘표현되기 이전’(未發)에 존재 - 情은 ‘표현된 이후’(已發 - 이발)에 존재 ?
송시열의 철학은 조선조 멸망에 이르기까지 봉건 착취계급, 집권 계층의 정통적 사상이었으며 이 외의 사상은 모두 탄압을 받았다. 2) 한원진(韓元震) 한원진(호는 남당 1682~1750 ... 『남당집』 6권, 경연설하 여기서 그는 이의 일차성을 승인하였다. 결국 한원진의 이원론적 견해는 이를 보다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존재로 보는 객관적 관념론이다. ... 저작으로서 대표적으로『남당집(南塘集)』38권이 있으며 그 밖에『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주서동이고(朱書同異考)』,『퇴계집차의(退溪集箚疑)』등의 방대한 저작이 있다.
요컨대, 이 논쟁에서 외암 이간의 논리는 남당 한원진의 반론을 고려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였다. ... 남당은 이 기질지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으로 보고 인성과 물성이 다르며 사람과 사람의 성품은 같지만 사람과 사물의 성품은 각각 다르다고 보았다. ... 남당의 성의 개념은 기질 속에 부여된 이후의 기질지성을 말하는 것이며 기질 속에 부여되기 이전의 상태를 이(理)라 하여 성과는 뚜렷이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