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暴君)의 대명사로불리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에 대하여 독부(獨夫)라고불렀다. 성군(聖君) 덕치(德治)를 한 임금에대하여는 ‘성군(聖君)’이라는이름으로 예찬하였다. ... 본래의 형-의가 가려지기 쉬운 부수의 경우 대(大)-사람모양을 상형했음. 인(人)자가 측면 상형임에 대하여 대(大)자는 사지를벌린 사람을 정면에서 본뜬 것임. ... →부(夫)[대(大)+일(一]: 비녀 같은머리 장식품을 뜻함] 분(奔)[대(大)+훼(卉): 본래 세 개의발로 빠름을 표시] 시(尸)-①본래 인체가 가로 놓인 모양에서 특히 하반신이 강조된
暴君幸矣, 民絶望矣. 폭군은 다행이나 백성이 바랄바가 끊어지게 된다. 故當今之世, 有仁人在焉, 不可而不此務, 有賢主不可而不此事. ... 彊令之爲道也, 可以成小, 而不可以成大. 억지로 시킨 방도는 작은 것을 완성할 수 있어도 큰 것을 완성할 수 없다. 缶醯黃, ?聚之, 有酸, 徒水則必不可. ... 是月之末, 擇吉日, 大合樂, 天子乃率三公九卿諸侯大夫親往視之. 이 계춘의 끝에 길일을 택하고 크게 6악에 화합하고, 천자는 3공과 9경의 제후와 대부를 인솔하고 친히 가서 본다.
中國의 暴君의 代名詞를 얘기하라면 夏桀殷紂라고 말하는데 夏의 桀王과 殷의 紂王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아들 隋의 煬帝가 二代 皇帝가 되면서 隋의 國運은 기울게 되는데 大運河事業과 東都의 建設, 龍船의 建造 등 수百萬의 인부가 用役에 動員되었고 3번에 걸친 高句麗 遠征의
孟子와는 달리 孔子는 결코 暴君을 죽여야 한다거나 제왕과 농민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直線的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 그것은 이 時代 前半期 大部分의 歷史가 『춘추(春秋)』라는 年代記에 , 後半期에 활약했던 外交家들의 言論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전국책(戰國策)』이라는 書籍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때마침 멸망을 맞게된 발해의 세자 大光顯을 비롯한 왕족을 포용하여 민족의 통일까지 이루게 되었다. ... 태조 왕건은 궁예의 폭정을 천지가 不容하고 神人이 共怒할 일이므로 暴君을 폐하고 明君을 세우는 것이 천하의 대의인 바 湯武의 일을 행할 것을 건의한 신하들의 放伐論的 혁명론을 명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