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9.03.25
- 최종 저작일
- 2009.03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려시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사상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이다. 개념 위주로 작성을 하였으며, 그의 주요 저서에 대한 간략한 정리를 병행하였다.
목차
1. 지눌의 생애
2. 지눌의 불교사상
(1) 돈오점수(頓悟漸修)
(2) 정혜쌍수(定慧雙修)
(3) 선교융회(禪敎融會)
(4) 무심(無心)의 진수(眞修)
3.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4. 권수정혜결사문(權修定慧結社文)
5. 수심결(修心訣)
6. 진심직설(眞心直說)
본문내용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고려 의종 12년(1158) 황해도 서흥군(瑞興郡)에서 당시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인 정광우(鄭光遇)와 개흥군부인(開興郡夫人)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이 잦아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자 부친은 불전에 기도를 올려 병만 낳으면 자식을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이후 아이의 병은 깨끗이 나았고, 이리하여 지눌은 겨우 8살 되던 해에 조계(曹溪)의 운손(雲孫)인 종휘(宗暉) 선사에게 몸을 맡기게 되었다. ...중략
1210년, 3월 26일 지눌은 선법당의 설법을 마지막으로 앉은 채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나이 속수(俗壽) 53세, 법랍(法臘) 46세였다. 희종왕은 지눌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못내 슬퍼하며 시호를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 하고, 탑호를 감로(甘露)라 하였다. 불일보조국사비명(佛日普照國師碑銘)에 의하면 그는 타계하던 날 새벽 목욕을 재계하고 법당에 올라 향을 사르고 큰 북을 쳐 송광사 내 대중을 법당에 운집시켰다. 그리고는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법상에 올라 제자들과 일문일답으로 자상하게 진리에 대한 대담을 계속하였다. 마지막으로 한 제자가 “옛날에는 유마거사(維摩居師)가 병을 보이었고 오늘은 스님께서 병을 보이시니 이것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고 물었다. 같은가, 다른가 하는 질문은 선가(禪家)에서 진리를 시험해 보는 질문이다. 임종이 가까운 스승께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의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지눌은 육환장을 높이 들어 법상에 두어 번 내리친 다음 “일체의 모든 진리가 이 가운데 있느니라”하고는 법상에 앉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자료
1. 원효 ․ 의상 ․ 지눌/이기영 역,《한국의 불교사상》, 삼성출판사, 1988.
2.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3. 박종홍 지음, 《한국사상사》, 서문당, 1985.
4.조현규 지음,《한국의 윤리사상》, 중문, 2001.
5. 조현규 저,《동양윤리 사상의 이해》, 새문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