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토지제도사
- 최초 등록일
- 2009.02.16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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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고대(삼국시대)의 토지제도사에 대한 정리 레포트입니다.
목차
<한국 고대 토지제도사>
1.삼국기 토지제도의 발달
1)농업증진과 신분제의 재편
2)토지소유의 집권왕조국가적 구성과 농민의 처지
3)조세제도의 제민성과 결부제의 조정
4)녹읍제의 시행과 식읍제의 정리
본문내용
1.삼국기 토지제도의 발달
1)농업증진과 신분제의 재편
삼국기 국가체제의 정비는 크게 두 방향에서 추진되어 나갔다. 하나는 중앙권력조직을 연맹제적 전통에서 더 진전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추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방통치조직을 후국적인 전통과 기반에서 군현제적으로 전화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가의 통주하에 있던 읍락 및 읍락민을 국왕·국가의 군현 및 민인으로 파악하여 갈 수 있었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수습하면서 이 방향 위에서 국가의 집권력을 강화해 가려면 생산과 농민을 민생안정의 차원에서 보호하며 제가층·귀족층을 관료제하의 신료로 전환시키는 절차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국가체제의 정비는 영토확장과 인구확대를 추구하면서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대내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을 동반하고 이 장기화하는 전쟁에서 패퇴하지 않고 승리하려면 물력과 인력의 원활한 공급과 육성 또한 절대적이었다. 삼국기 토지제도는 이와 같이 농업생산의 증진, 관료제와 신분제의 조정과 긴밀히 상관하여 성립된 것이었다. 삼국기의 토지소유의 구성과 토지제도의 특징·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농업증진이 도모되고 신분제가 조정되는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국기 삼국이 등장하면서 철제 생산용구의 사용확대는 농경지의 개척, 개간 등 경영규모와 소유규모의 확장을 계속 촉진하고 농업생산의 증가를 동반하였다. 이 시기의 이러한 농업발전을 특징짓는 대표적 사항은 쟁기의 개량과 그 사용법의 발달이었다. 삼국 모두 일찍부터 우경이 시행되고 있었으며 완전한 철제 쟁기에 경우를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우여경은 기존 농지의 심경작업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개간을 통한 농경지의 조성과 확대를 훨씬 수월하게 하였고, 이를 이용하는 농민가족들은 농업경영에서 개별화 독립화를 더욱 현저히 촉진시킬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생산자 농민층의 사회적 성장도 크게 진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여경은 쇠스랑·낫의 보급이 가져오는 농작업의 효율성·능률성과 결부되어 치전법과 수확법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수전과 육전으로 두루 겸하여 경종하는 회환식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을 유족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치전과 경종이 대단히 뛰어났음을 전한다.
참고 자료
사회경제사1 강의 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