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한 곳, 톨레도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9.01.23
- 최종 저작일
-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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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페인 문화사/ 스페인의 문화와예술/스페인사 수강생에게 유용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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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안개가 자욱한 17일 아침, 우리는 Juan Martin을 타고 마드리드에서 67킬로미터 떨어진 톨레도 BC 193년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에게 정복된 후 로마의 주요 식민지이자 중심지가 된 이곳은 6세기에는 서고트 왕국의 왕궁 소재 도시였다. 이곳에서 유명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기도 했는데, 특히 제3차 공의회는 레카레드 왕 아리우스계 ‘야만족’들의 지도자들 중에 니케아 정통을 받아들인 서고트족의 왕
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선언한 중요한 공의회였다. 8세기 중반 바누잔눈족 11세기 톨레도에 있었던 이슬람왕조인 두안눈 왕조의 선조들
은 톨레도의 북동부에 정착하여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했다. 톨레도인들로부터 그들의 통치를 위임받았던 아브드 알 라흐만 이븐 두 안 눈과 그의 아들 이스마일 앗 자피르는 스페인의 우마이야 왕조가 분열되는 내전 시기에 코르도바를 휘두르던 우마이야 칼리프의 중앙권위를 부인한 최초의 지방통치자였다. 앗 자피르는 톨레도에 스스로 독립왕국을 세우고 그리스도교도와 계속 전투를 벌이면서 1043년까지 통치했다. 그의 아들 야흐야 알 마문은 이슬람 적대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여러 번 그리스도교도와 동맹을 맺었고 자신의 궁전으로 카스티야와 레온의 알폰소 6세를 초대하기까지 했다. 1065년 알 마문은 아미르 가문의 수도 발렌시아를 점령하고 1074~75년에는 우마이야 왕조의 옛 도읍지였던 코르도바를 손에 넣었으나 그의 손자 야흐야 알 카디르는 곧 발렌시아와 코르도바를 모두 잃게되고, 알폰소 6세와의 동맹은 두 안 눈 왕조의 멸망을 재촉했다. 알 카디르는 잠시 동안 톨레도를 되찾았지만 왕조의 수도인 이 도시를 발렌시아와의 교환조건으로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넘겨준다. 그는 발렌시아에서 암살당했고, 이들의 점령기간 동안 중요한 모자라브 공동체의 본거지로서 ‘툴라이툴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085년 알폰소 6세에게 점령당한 후 카스티야 왕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리스도교·아랍·유대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도시이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13세기에 현명왕 알폰소 10세에 의해 설립된 통역사학교인 에스쿠엘라데트라둑토레스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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