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시기 천황제에 대한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8.12.15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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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근현대 수업 레포트 입니다.
국회도서관, 여러 책자를 참고하여 근대 천황제는 정치적 목적 하에
신도로 추앙받았다는 관점에서 썼습니다.
메이지 유신 시기 행사, 시대적 배경을 고찰하며
정치적 색깔을 찾아냈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막부시대의 천황
2) 메이지 시대의 천황제
(1)가공된 천황의 이미지: 신비주의
- 근대 천황의 이원성
- 궁중삼전
- 국민 통합을 이끌어낼 수단
(2) 새로 만들어진 의례.
㉠ 의례화 되는 국가정치
㉡ 국경일(1878년 6월~ 1927년 까지 지켜진 10개의 국경일)
㉢ 일본 황실 및 천황과 관련된 공식의례.
3) 결론.
본문내용
이를 통해 보면, 막부시대의 천황제는 민중수준의 국가적 정체성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도 겨우 의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 정부의 지도자들이 천황복고를 선언했을 때 상당수의 일반 민중은 새로운 정부에 쇄신된 세계가 도래하리라고 기대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국가나 천황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신념을 뜻하지는 않았다.
(2) 메이지 시대의 천황제.
① 가공된 천황의 이미지: 신비주의
- 근대 천황의 이원성
근대 천황의 이원성은 통치와 군사계획에 깊숙이 관여하는 동시에 이를 초월하는 듯한 이미지를 구성하는 작업에서 중심을 이루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구성되었던 만큼, 근대 일본의 “왕위”는 적어도 두 개의 “신체”, 즉 국민공동체의 세속적이고 가변적인 번영을 나타내는 부분과 그것을 초월하는 영속성을 나타내는 부분을 가졌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1880년대 말부터 일본의 지배엘리트는 점차 그들의 근대 군주를 수도의 중심에 있는 새 궁성 안에 가두었다. 그럼으로써 군주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신성을 강조했다. 또한 국신들 중 가장 중요한 신은 천황의 선조들이라고 했다. 시공을 초월하는 황실제도의 구현으로서 천황은 신성함, 영속성, 그리고 국민공동체 전체의 통합을 표상했을 것이다.
- 궁중삼전.
근대 군주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천황과 정도는 약하지만 황족의 다른 구성원의 이 신비한 측면을 조장한 의례공간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궁중삼전이었다. 궁중삼전이란 현소, 황령전, 신전으로 옮기는 의식인데 이중에서 태양신을 뜻하는 신기인 야타 거울을 모신다는 현소만이 도쿠가와 시대에 교코 어소에 있었다. 1871년에는 2200명의 황실 조상들의 신주를 모셨고 천황과 그의 의례 담당관들은 성스러운 황실의례를 거행했다. 허나, 황령전과 신전은 모두 새로 만들어진 성소이고 그곳에서 거행된 의식은 대부분 근래에 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그들은 중요한 것은 신사와 의식이 고풍으로 보이고, 일상사로부터 동떨어진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지배엘리트가 천황을 일상의 인간사와 동떨어진 아득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가 국민공동체의 통합적 상징이자 당시의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존재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서적
화려한 군주, 1996, 다카시 후지타니, 이산.
일본 근대철학사, 2001, 미야카와 토루, 생각의 나무
현대 일본의 역사, 2005. 앤드루 고든, 이산
근대 일본 형성기의 국가와 민중 : 근대천황상의 형성과 민중, 2004,박진우
논문
근대 천황제와 일본 군국주의, 2000, 박진우.
일본 천황제의 군부파시즘의 형성, 2002 ,정임수,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일본 천황제에 관한 연구 :천황 위상의 역사적 변화를 중심으로,2001, 김용민 ,경희대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