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인권 영화제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8.12.14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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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주 인권 영화제를 다녀와서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영화제에 들어가면서
2. 인권영화제 관람
3. 영화제를 나오면서
본문내용
1. 영화제에 들어가면서
개인적신상문제로 생략하였습니다. (개인적 서론을 쓰세요.)
2. 인권영화제 관람
내가 선택한 영화는 15일 마지막상영영화로 ‘무 죄’(김희철 작. 다큐. 2006)이었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감독과의 대화의 장’이 있어서였는데, 관람 후에도 나의 선택이 탁월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1981년 진도조작간첩사건의 당사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일가친척이 하루아침에 고정간첩단이 되버림 사건을 조사하면서, 상처와 분노 그리고 회환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주었다. 그저 평범한 농민이었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왜 스스로 간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낱낱이 이야기한다. 6∙25 이후 행방불명되어 만난 적도 없는 아버지를 만났다는 중앙정보부의 주장에서 시작된 의혹은 고문으로, 그 고문은 거짓 진실이 되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그 사건의 주인공인 ‘박동운’씨가 직접 나레이션을 맡았는데, 그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렸다. 박동운씨가 18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고향 진도로 내려왔을 때는, 주위 사람들은 빨갱이라며 수군거렸고 그때부터 산속에서 혼자 벌을 키우면서 지낸다고 한다.
이렇듯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의혹투성인 간첩 조작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반공’을 사회의 지배적 가치로 내세워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다. 선거를 앞둔 시기, 민주화 운동이 불붙던 시기 등에는 이른바 간첩사건은 어김없이 언론을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간첩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밀실 형태로 운영되는 수사기관이 무자비한 대공수사를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장 없이 불법 체포와 장기 구금, 고문 등 가혹행위가 일어났고 허위자백을 통해 간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조작간첩은 ‘진도조작간첩사건’외에 100여사건에 이른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