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나라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12.13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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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상(은)나라에 관해 쓴 레포트입니다. 건국부터 시작하여 종교등 여러가지 상나라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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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상나라의 건국
상(商)나라(기원전 1600년경 - 1046년)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여겨지는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주(周)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은(殷)이라고 불렀으므로 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19대왕 반경은 하남성 서북지역인 은(殷)으로 수도를 옮김. 이때부터 나라 이름이 은이 되었다)스스로의 나라 이름을 칭할 때는 은나라를 세운 부족 이름인 상(商)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상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다. 상나라는 전설상의 신인 황제(黃帝)의 후손인 탕왕(湯王)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마지막 왕은 무희 달기와 함께 국민을 잔혹하게 다룬 31대 주왕(紂王)이며, 주나라 시조인 무왕(武王)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전설상의 왕조로만 취급되었으나 20세기 초에 은허(상나라의 수도 유적)가 발굴되고 고고학적 증거물이 나타나 실재하는 왕조였음이 확인되었다.
상나라의 건국과정
탕(湯)은 성이 자(子), 이름이 리(履)이며, 무탕(武湯), 무왕(武王), 천을(天乙), 성탕(成湯), 성당(成唐)이라고도
그림 탕왕의 모습
칭한다. 갑골문 속에서는 당대을(唐大乙), 고조을(高祖乙)이라고 일컬었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상(商) 부락의 장으로 하(夏)를 멸망시키고 상을 건국했으며 13년간 재위하다가 100세 때 병으로 죽었다. 장지는 6곳이 있다고 전해오는데 그 중에서 박(亳: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商丘縣> 북쪽)에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탕은 제곡의 후손 설(契)의 자손으로 상(商) 부락의 장이었다. 하(夏)왕조 말기에 상족(商族)이 점점 강성해지고 하의 걸왕(桀)이 폭정으로 민심을 잃자 탕은 하를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였다. 강대해진 탕의 세력에 위협을 느낀 걸왕이 그를 하대(夏台)에 가두자, 상족은 걸왕에게 황금을 바치고 측신들을 뇌물로 매수하여 탕을 석방시켰다.
탕의 아내에게는 시집올 때 데려온 이윤(伊尹)이라는 몸종이 있었다. 탕은 그를 주방에서 일하게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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