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 최초 등록일
- 2008.12.10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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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 김구에 대한 조사
목차
1. 서론
2. 본론
(1) ‘상거지’ 노릇 속의 임시정부 문지기
(2) 좌우 연합전선 정부를 향해
(3) 반탁 투쟁의 선봉에 서다
(4) 백범 노선의 대반전
(5) 남북협상, 그 고난의 행군
(6) 백범의 암살
(7) 백범의 사상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최근 10만원권 지폐의 인물 초상화에 백범 김구가 선택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말들이 많이 있었다. 백범 김구를 반대하는 단체 가운데 대표적인 단체가 뉴라이트라고 불리우는 단체이다. 뉴라이트는 김구를 반탁대열에서 이탈하여 김일성 정권에 협조하면서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 방해하고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은 변절자이고 배신자라고 하며,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10만원권 화폐에 대한민국을 배신하고 인정하지 않은 김구의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정부가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김구를 반대하고 이승만을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가 찬양하는 이승만은 4.19 이후 이승만의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바로 그 자리에 백범의 우람한 동상이 세워졌다. 많은 한국인들도 존경하는 인물 중 김구를 첫 손가락으로 꼽고 있다. 김구는 김일성을 만나 1948년 남북한 통일 정부를 추구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배신했다고 몰아칠 수는 없다.
오히려 백범은 해방 정국을 통해 임시정부의 구심체로서 우익 진영을 지도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범은 일제하에서 좌우의 협동은 견인했으며, 해방 정국에서는 남북의 협상에 앞장섰다. 특히 해방을 맞아서 백범은 민족 통일을 가로 막는 외세, 또 외세와 유착하여 민족의 분단을 서슴지 않은 우익 단정 세력과 맞섰다. 그리하여 1948년 자주 적인 민족 통일을 위해 남북협상 길에 올랐다가 이듬해 암살자의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죽기 전 마지막 1년여의 활동만으로도 백범은 존경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이 글에는 백범 김구를 대한민국을 배신한 빨갱이가 아닌, 대한민국의 독립과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던 인물로 서술해 보고자 한다.
2. 본론
(1) ‘상거지’ 노릇 속의 임시정부 문지기
백범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상민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양반이 되고자 과거 시험을 치렀지만 번번이 실패한 뒤 동학에 가담하여 강렬한 민족 자주 사상과 평등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참고 자료
『백범 김구 평전』 김상웅 , 시대의 창, 2004
『앞서 걸은 민족 통일의 발자취, 백범 김구』윤무한 , 내일을 여는 역사 제26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