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의 세계관과 생애, 그리고 시세계
- 최초 등록일
- 2008.12.02
- 최종 저작일
- 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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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문학 교양과목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언
Ⅱ. 미당 서정주의 생애
Ⅲ. 작품세계
Ⅳ. 친일행적
Ⅴ. 결언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서언
미당 서정주는 한국 현대시에 깊고 넓은 영향을 그리웠다. 일제강점기이던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서정주는 2000년 타계할 때까지 천여 편의 서정시를 발표했다. 정력적인 작품 활동과 함께 그는 후배시인들의 선발과 양성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는데, 『문예』와 『현대문학』의 시 부문 추천위원으로 수십 년 간 활동하면서, 현재는 중견의 반열에 오른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을 문단에 데뷔시켰다. 그러는 한편 동국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에서의 후학의 양성에도 힘썼으며, 이른반 문단정치학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문인협회의 임원으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미당 서정주 시인의 이름을 들어봤고 그의 서정적인 표현에 경이를 표하고,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시인이며 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인물이라 기억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논리적 파탄에서 비롯된 그의 친일과 군사독재시절 친독재적 입장 표명 등의 생애 최대 오점 등으로 인해, 그는 그의 제자들이나 그가 문단에 추천했던 시인들조차 등을 돌리는 등 끊임없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런 극단적인 양면의 평가를 받는 이유에 대해서 작가의 생애에 대해 또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시집과 주요 작품을 통해 서정주의 시와 시 정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알아보려 한다.
Ⅱ. 서정주의 생애
미당 서정주는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향 마을 질마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장수강 너머 선운산에 위치해 있고, 변산 반도가 보이는 자연에서 그는 유년기와 ‘꽃처럼 붉은 울음’ 을 울어댄 청년기를 보냈다.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광주 학생 운동을 계기로 학교에서 데모를 주동해 자퇴당하고 고창 고등학교에 편입학하나 자퇴를 강요당하는 등 그의 학교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그 이후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부립도서관 종로분관에 처박혀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지냈다. 1933년 가을에는 빈민구제 활동에 참여하여 톨스토이즘을 실현시킨다며 넝마주이로 떠돌았고 그해 겨울 개운사 대원암에서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들어가 불경을 배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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