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쟁과 잔다르크
- 최초 등록일
- 2008.11.29
- 최종 저작일
-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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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00년 전쟁에 관한 조사
잔다르크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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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영국은 1066년 노르만 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는 오랫동안 분쟁이 계속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 왕의 프랑스 내 영토가 프랑스 왕보다 더 많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중세 봉건제도 하에서 영국 왕은 영국의 왕이면서 동시에 프랑스 왕의 신하라는 이중 지위를 갖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중세 봉건 제도의 특징 상,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의 봉토를 결혼 지참금으로 넘겼기 때문이었다. 노르만 왕조 성립 이후 영국 왕은 역시 애초 프랑스 왕의 봉신이었던 노르망디 공국의 영주였고, 노르만 왕조의 뒤를 이은 플란타지네트 왕조(1154년 ~ 1399년) 역시 본래 프랑스의 앙쥬백이었다. 플란타지네트 왕조는 영국 왕으로서 노르망디도 당연히 계승하게 되었고, 이렇게 되자 프랑스 내에서 영국 왕의 입김은 프랑스 왕보다 더욱 셌지만, 법률 상으로는 영국 왕은 프랑스 왕의 신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영향력은 현재의 파리 시를 중심으로 한 일-드-프랑스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영국 국왕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재위:1328년 ~ 1350년)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여자가 직접 왕위계승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만일 그녀의 아들에게 계승시킬 수 있다면 영국 왕 에드워드 2세의 왕비 이사벨라(마지막 카페 왕조의 국왕이었던 샤를 4세의 누이)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재위:1327년~1377년)가 왕위 계승자가 된다는 주장도 성립되었다. 이것을 핑계로 삼아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위를 자신이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이 참에 영국과 프랑스를 하나로 한 거대한 왕국을 세울 욕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필리프 6세 입장에서도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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