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여왕과 골품제
- 최초 등록일
- 2008.11.19
- 최종 저작일
- 2008.06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우리나라에서 보기힘들게 역사상으로 3명의 여왕이 존재하였던 신라.
그 신라 역사의 여왕들과 골품제의 관계에 대해 쓴 레포트 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신라시대의 여왕들
Ⅲ) 신라에만 여왕이 있던 이유
Ⅳ) 골품제란?
Ⅴ) 마무리
Ⅵ) 참고도서
본문내용
Ⅰ) 머리말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 여왕이 존재했던 나라는 신라뿐이었다. 3명의 여왕인 선덕(善德), 진덕(眞德), 진성여왕(眞聖女王)에 대해 알아보고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여왕이 존재한 신라의 여성상도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Ⅱ) 신라의 여왕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여성 가운데 정치,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국가적으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과업도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여성으로 신라의 세 여왕이었던 선덕왕(善德王), 진덕왕(眞德王), 진성왕(眞聖王)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전 역사시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여왕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되지만 각자의 개성과 특징을 잘 살려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하는 왕으로서의 역할을 누구보다도 잘 수행해 낸 이라는 점에서 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인물들이다.
Ⅲ)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
우리나라 역대 왕조 중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왕 즉위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학계에선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은 신라의 독특한 신분제도였던 골품(骨品)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견해이다. 골품제는 ‘골의 품계’를 이르는 말로 골(骨)이 무엇이냐에 따라 성골(聖骨)과 진골(眞骨)로 나뉘는데 이에 따라 왕이 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정해졌다. 성골은 왕과 그 형제의 가족으로 구성되었고 그 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신성시 되는 신분이었다. 때문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많은 진골남성이 있다 하더라고 그들이 성골의 여성을 제치고 왕이 될 수는 없었다. 성골 남성이 있다면야 당연히 성골남성이 왕이 되겠지만 성골남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진골남성이 아닌 성골여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그들의 정서상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왕력(王曆)편의 제 27대 선덕여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상 중고(中古)는 성골이고 이하 하고(下古)는 진골’
이라고 하였다. 중고는 23대 법흥왕 (法興王)에서 28대 진덕왕까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중고시대의 왕들은 성골 신분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또한 『삼국유사』왕력편에는
‘聖骨男盡故女王立’
이것을 통해서 26대 진평왕(眞平王)을 마지막으로 성골남자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여자이지만 성골신분이었던 27대 선덕왕, 28대 진덕왕이 즉위하였다.
참고 자료
이종욱, 「신라의 역사」, 김영사, 2002
이종욱,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이야기」, 김영사, 2000
길태숙․윤혜신․최선경, 「삼국유사와 여성」, 이회, 2003,
김부식,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2005, p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