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에 대한 재해석과 인물 평가
- 최초 등록일
- 2008.11.09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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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조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그의 리더쉽에 대한 새로운 평가
고사를 인용한 내용전개. 그의 성격으로 알아보는 그의 일생.
목차
Ⅰ. 서 론 (緖 論) - 새로운 만남
- 조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Ⅱ. 본 론 (本 論) - 인간 조조와 리더 조조
1. 인재를 아낀 리더, 조조
2. 명확한 결단력의 소유자, 조조
3. 조조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Ⅲ. 결 론 (結 論) - 조조가 남기고간 군주론
- 조조를 통해본 리더쉽(Leader ship)
본문내용
Ⅰ. 서 론 (緖 論) - 새로운 만남
- 조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조조(曹操)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곱지 않았다. 항상 그와 함께하는 “난세의 간웅(奸雄)”이라는 닉네임조차, 그를 도덕적 측면에서는 형평 없는 이로 꼬집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조조는 인간적이었으며 문학적이었고, 나약한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 다만, 사람들은 그동안 인간적인 면보다는 비인간적인 면을, 문학에 심취하여 창을 끼고 시를 읊는 문학전인 면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학살을 일삼는 면을 조조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역사적 기술(記述)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라는 나관중의 소설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 한번쯤은 다 읽어 보았을 서적에서의 삼국지는 나관중의 것에 기초한 것으로서, 조조에 대한 평가는 악인(惡人)중에 악인(惡人)으로 밖에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曺嵩)은 조등(曺騰)의 양자였다. 조숭과 조등 사이에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조조가 조참의 후손일 수 있겠는가? 사실 당시에는 조숭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수수께끼였다.”처럼 조조는 한(漢)나라의 중신의 집안이었으나, 내관의 양자였다. 이것은 유교(儒敎)적 사관에서 후일 역사가들에게는 출생이 불분명한 정통성이 없는 혈통으로 비추어 졌을 것이다. 특히 원나라 말기와 명나라 초기를 살았던 나관중에게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 이후, 한족(漢族)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 왕이 출신도 불분명한 조조 였음이 불쾌하였을 것이다. 좀 더 정통성이 있는 유비(劉備)를 진정한 덕장이요, 하늘이 내려준 재목(材木)으로 추앙하고 그에 반하는 인물로 조조를 선택한 소설을 쓴 까닭은 나관중이 살던 시대적 배경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조에 대한 평가는 근래에 들어서 재평가 되고 있는데, 특히 자본주의 시대의 현 시점에서 기업 및 각종매체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로써 조조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 모리야히로시, 『삼국지 인물여행: 三國志 역사인물 바로보기』 (하나미디어,1993)
- Yi, Zhongtian, 『품인록: 중국 역사를 뒤흔든 5인의 독불장군: 항우·조조·무측천·해서·옹정제』 (에버리 치홀딩스,2007)
- 나채훈, 『(카리스마 리더) 조조』 (서울:북폴리오, 2004)
- Han, Zhongliang, 『영웅조조』 (신원문화사, 2008)